아직, 복약 중입니다

이유 없음

by 능선오름

분명 처음에 '우울증'이라는 ,

생전 생각도 안 해본 병이라 부르면 뭔가 성격에 문제가 있을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났었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그 이전의 삶을 돌아보고 다시 곱씹어봐도 우울증에 걸릴만함 이유들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에 갖는 편견을 나 또한 갖고 있었기에 특히 더 당황스러웠다.

정신적으로 멘털이 약하고, 나약한 성격이며, 늘 우수에 찬 눈빛으로 가득한 비관주의자 같은 것.

그것들이 나와는 거리가 상당히 먼 것으로 스스로 생각해 왔었기에 더더욱 당혹스러웠다.

내가? 왜? 난 그보다 더 한 곤욕도 치러 가며 살아왔었는데?

나 자신이 우울증이란 것을 인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밴드에서 읽은 한 사람의 독백은 그러고도 남겠다 싶게 동질성에서 공감이 되었었다.

성년이 된 딸이 코인 투기에 빠져 억대의 빚을 지고, 그걸 부모가 감당해 주었는데도 수년간 같은 투기를 반복하다가 뒤늦게 정신 차리고 딸이 할 수 있는 전공 일을 무리하게 진행하였는데.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갑자기 심정지가 와서 하늘로 보냈다는 이야기.

그 충격으로 시골로 이사를 했는데 아내가 3년 만에 병에 걸려 하늘로 가버렸다는 이야기.

그런 사람이면 당연히 우울증에 걸릴 것 같은데 적어도 온라인에 올리는 글은 꽤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그 사람 나름의 발버둥 치기 일거라고 짐작한다.

필자 자신도 우울증에 걸려있으나 나름대로 이겨내려고 애쓰는 과정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전국적으로 누가 누가 불행한가 경연대회가 벌어진다면 나 또한 그 예선 정도는 가볍게 넘어설 자신이 있다.

그만큼 '불행함'의 척도를 따져본다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불행'이 뭔가.

보편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상으로 구조적, 태생적, 운명적 나쁜 상황들이 반복해서 일어날수록 불행하다고 할 수도 있고,

태어나기를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또 다른 환경적인 요인으로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게 보면 불행함은 지극히 주관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의 불행함을 토로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나는 저 사람에 비하면 덜 불행한 거구나 하고 생각을 할 수 있다.

인간의 사회적 인식체계는 대개 '비교'에 의해 달라진다.

비교하는 삶이 결코 행복과는 거리가 멀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불행을 주제로 한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 빠지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나 자신은 그런 지독한 불행의 늪에서 비교적 떨어져 있어서 살 만하구나라고 안도하게 만드는 것도 비교의 효용성 중 한 가지다.


그렇게 따지고 들다 보면 흔하게 '불행'이라 부를 수 있는 상황, 사건, 운명 같은 것을 다양하게 갖추면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불행하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한편으로는, 객관적으로 타인이 보기에 엄청나게 불행할 요소란 요소는 다 갖춘 사람도 정작 그 상황에 살아가고 있는 본인은 불행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오체불만족'의 저자도 그런 식으로 주장하며 책을 낸 거니까.

누가 봐도 '불행'해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더 긍정적이고 더 활발한 성격을 보일 때는 차라리 측은함을 느낀다.

정말 본인은 불행을 못 느낄 수 있지만, 적어도 객관적으로는 일방적인 정신승리로 보이기도 하니까.


우울증이란 건 분명히 처음에는 뭔가 시발점이 있긴 하겠지만, 때로는 개개인의 기질에 따라 화창한 봄날 한가로운 벤치에 앉아서도 생길 수는 있겠지만, 그냥 감기처럼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성향과 타고난 기질, 후천적 환경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누구나 '현타'가 올 수 있고 누구라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는 말이다.

긍정적인 삶을 강연하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유명인이 있다.

어느 강연에서 정작 본인은 그런 강연으로 먹고살면서 한편으로 심한 우울증에 빠져 치료를 받고 있다고도 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우울한데 청중들에게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강연한다는 딜레마에 괴롭다고도 했다.


그런 것이다.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논리적이지 않고 보편타당하지 않은 과정이다.

그러하니 우울하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비록 그 병원에서 잘 나아지지 않는다면 다른 병원을 찾아 순례를 하는 결과가 있더라도.

매일 엄습하는 원인불명의 무인폭격기처럼 공포스러운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그렇다.

시도하고, 찾고, 망설임 없이 의사를 찾아야 한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삶의 질을 되찾으려면 방법이 없다.

물론 의사와 약물이 모든 것을 되돌려주진 않을 거다.

일단은 나 자신이 현재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도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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