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매니아 28

임무종결

by 능선오름

28


뭔가 출발 전에 신체검사를 한답시고 내시경까지 넣고 요란을 떨 때는 몰랐지만,

뭔지 모르게 뱃속이 가득 찬 느낌이 이놈들이 뱃속에 뭔가를 넣었다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총 한 자루 안 주고 나를 보낼 때는 이놈들은 내가 잡히면 어떨 거란 생각도 않나 싶긴 했었지만.

사전에 훈련받은 장소와 똑같이 생긴 복도를 따라 목표지점을 갈 때마다,

보초병이 나타날 때마다,

그저 나도 모르게 트림이 터져 나오고 그 트림이 터질 때마다 경비병들이 픽픽 쓰러지는걸 보고서야,

놈들이 뱃속에 뭔지 모를 독가스 같은걸 넣어놓고 원격조정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놈들이 내 암호명을 하필 ‘트랩’이라고 붙인 건가.


경비병들은 아마 죽은 거겠지만, 배운 대로 하다 보니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곤 역시 숙련된 대로, 최종 목적지 계기반의 버튼과 다이얼을 누르고,

돌리고 절차대로 진행을 했다.

설명대로 라면 곧 냉각수가 오버히트 될 것이고,

원자로가 고온 상태가 되면서 용융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문자 그대로 이곳은 체르노빌 같은 죽음의 발전소로 변할 것이었다.

걸치고 온 조끼에는 뭔지 모를 물건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사전에 질리도록 훈련받은 대로 나는 여기저기 지정된 장소에 그 덩어리들을 나눠 붙이고,

매뉴얼대로 자그마한 기폭장치들을 꽂아 넣었다.

그 이후가 어떻다는 지시를 받지 못했지만 아마도 원격장치로 뭐 폭발시키거나 하겠지.

영화처럼.


이내 다음 절차로 탈출로를 되짚어가려던 나는 당황했다.

내게 교육을 시킨 자 들이 모르고 있던 것 인지,

절차가 진행되자 방사능 유출을 감지한 각종 장치들이 작동되면서,

내가 타고 온 공기 순환 배관을 비롯한 통제실과 외부를 연결하는 모든 곳이 잠겨 버렸다.

이렇게 이중 잠금장치가 있다는 말을 듣진 못했다.

나는 졸지에 폐쇄되어 버린 핵발전소 한복판에 강제 구금이 된 모양새가 되었다.

외부를 볼 수 있는 창문들은 숫자도 드물었지만 의자를 집어던져도 깨지지 않았다.

게다가 모든 통로에는 들어올 땐 안보이던 철제문들이 닫혀있고,

벽 위에 붙은 붉은색 불빛이 첩보영화처럼 번쩍이며 요란한 경보음이 모든 통로를 가득 채웠다.

아마도 당연히,

이곳을 감시하는 체제는 침입자를 감지했겠지.

두터운 콘크리트 벽 너머로도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창밖을 힐끔 내다보니 군용 트럭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발전소 앞으로 모여드는 게 보인다.

모든 장소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귀청을 찢는 사이렌 소리가 줄달음친다.

다시 통제실로 돌아와 보니 깊은 통제실 내부에서도 느껴질 만큼 이곳저곳에서 진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 나는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 일까.

문득 나는,

나를 이곳에 보낸 저들이 이럴 수 있는 상황을 몰라서가 아니라,

애초부터 이들의 무모한 작전에 나의 ‘복귀’따위는 계산되지도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하면서 나를 보낼 때 임묘한의 얼굴에 떠돌던 엷은 미소가 떠오르고,

그간 하루도 쉬지 못하게 정신없던 훈련 동안 생각도 잘 안 나던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났다.

이곳에서조차 내가 살아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이제 여기쯤에서 사라지는 게 좀 편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교차했다.

그리고 눈부신 빛, 바로 이어서 엄청난 굉음이 바닥에서부터 나를 감싸 올랐다.


“ 긴급 잠항! ”

“ 긴급 잠항! ”

“ 진입각 최대! 심도 해저! ”

‘ 진입각 최대! 심도 해저! “


트랩에 부착된 카메라로부터 어딘가가 터져 나오는 불빛을 목격하자마자 군복이 함장에게 수신호를 보냈고,

함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고함치듯 명령을 내리자 고요하던 함교는 순식간에 분주해졌다.

이윽고 급격한 하강에 대비해 모든 승조원이 주변의 손잡이들을 붙들었고,

잠수함은 급격한 기울기로 해저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함장은 그 와중에도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군복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인물을 흘깃 살폈다.


’대체 무슨 작전을 한 거야?

원자력발전소를 폭발이라도 시킨 거야?

맙소사! 지금 우리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되는 건가?

우리 배가 괜찮을까?

아니, 저 트랩이라는 요원이 빠져나올 시간도 없지 않았나? ‘


순간적으로 온갖 생각이 함장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리고 한참 후,

잠수함이 가장 깊은 바닷속 해저에 내려앉는 낮은 울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또 이어서 바닷속 답지 않은 층격파가 선체를 두드렸다.

아주 멀리 동굴에서 울리는 소리 같은 낮은 저주파의 울림.

또 이어지는 커다란 진동의 반복.

함장은 잠수함을 다시 부상시킨다는 게 두려워졌다.


그 시각 한반도 상공을 지나가던 각국의 군사위성들이 한반도 북쪽 동해에 인접한 지형에서 거대한 섬광이 일어나는 것을 관측했다.

그것이 화산 분화 같은 자연재해인지 무엇인지 각국의 분석가들이 바쁘게 촬영된 위성영상을 기준으로 분광 분석을 했다.

미 애리조나의 우주군 사령부 상황실.

긴급 보고가 타전되었다.

’ 북한 핵발전소 폭발. 원인 분석 중 ’


요한계시록 ( 8장 10절 )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거죽이 일어서고,

서서히 밝아오는 동해의 아침노을을 집어삼키는 밝은 빛이 한반도의 북쪽 해안에서 일어났다.

충격파는 대단히 커서 멀리 떨어진 일본 북해도의 지진 경보소에서도 감지되었다.

당시 북한지역을 감시하고 있던 인공위성들은 일제히 강한 열 폭풍과 방사능을 탐지했고,

충격적인 소식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방호 장비도 갖추지 못한 인민군들이 각종 트럭에 흙 따위를 싣고 삽을 들고 폭심으로 달려갔다.

주변 국가들 에서는 해양오염 문제로 북한에 지원을 자청하고 나섰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로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원전사고라고 뉴스에 대서특필이 되면서,

한국과 주변 국가들의 긴급 비상대책 정상 회담이 추진되었다.

북한의 공영 방송에서는 미제와 남조선의 음모라며 소리 높여 비난을 했다.

하지만 낙후된 원전시설을 굳이 운영하고 있던 북한의 실상이 이미 많이 거론되었던 터라,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는 입장이 달라지진 않았다.

수많은 이재민과 더불어, 초기 방재 작업에 투입되었던 군인들 수만 명이 죽어갔다.


주변국 들에서는, 이 사고로 인한 피해가 너무 커서, 북한 인민의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보도들을 했다.

북한 정권의 자연스러운 몰락이 거론되고, 대한민국의 흡수통일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가장 큰 피해 당사국이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일본, 한국 3개국이 사고 해당 지역권 반경 500km에 대하여 사고 조사 및 수습 지원을 분담하는 특별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원자력 전문가들의 긴급화 상회에서도 원자로가 용융되는 형태가 아닌,

급작스럽게 원자폭탄처럼 폭발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는 아무도 의견을 내지 못했다.

작전명 ‘울트라맨’ 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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