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매니아 27

목표 도착

by 능선오름

27

생각보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좁은 어뢰의 탄두 부분에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엎드려진 우 부장은 어둠 속 물결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다만 관성을 느끼다 보니 앞으로 제법 빠른 속도로 조용히 나아가고 있음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뢰의 솎도가 서서히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어뢰의 투명하게 밀폐된 공간은 이미 바닷물이 가득했다.

아무리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우 부장이지만,

어뢰가 사출 되자마자 바닷물이 스며들어오는 데는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물이 가득 차고 어뢰가 방향을 바꿔 나가기 시작하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어뢰가 거의 멈추자 우 부장은 사저에 교육받은 대로 앞으로 뻗쳐진 손 끝에 걸리는 레버를 잡아당겼다.

어뢰의 투명한 뚜껑이 스르르 풀리고 우 부장은 약간의 부력을 느끼면서 물속으로 나아갔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지루할 정도로 배운 잠수 수영.

왼손 팔목에 채운 커다란 손목시계의 화면에 희미하게 가리키는 화살표가 보였다.

우 부장은 화살표 방향을 향하여 어두운 바닷속을 서서히 헤엄쳤다.

몸은 자유로웠지만 전에 회사에서 오수처리장 속에 갇혔을 때와 같은 공포심이 솟아올랐다.

빨리 빛을 보고 싶었다.


군복들은 함교에서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들이 내보낸 ‘트랩’이 목표지점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는 게 반짝이는 점으로 보였다.

군복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함장에게 말했다.


” 이제 공해이니 부상하죠. 트랩이 물속에서 나오는 대로 신호를 받아야 하니까. “


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관에게 명령했다.


” 부상. 완속으로. “


우 부장은 여전히 어두운 배관을 천천히 기어올랐다.

바닷속으로 뻗쳐 나온 파이프를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파이프에 들어가 머리에 두르고 있는 헤드렌턴을 켜자 앞이 보여서 좀 살만했다.

물속에서 숨을 쉬는 게 어렵진 않았지만 과거 오수처리장의 기억 때문인지 어둠은 무섭다.

의외로 배관은 좀 넓었고, 생각보다 기어오르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군복들은 이제 자신들이 가지고 온 장비를 통해 우 부장이 파이프 속을 기어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마치 1인칭 전투게임의 영상처럼 어둡고 녹슨 배관이 화면 가득 보였다.


” 생각보단 잘하고 있네. “


군복 중 하나가 웅얼거렸다.


배관 중간중간은 굵은 철심 혹은 파이프로 막혀 있었지만,

휴대하고 온 절단 토치로 충분히 잘려나갈 정도였다.

이들이 이렇게 엉성하게? 배관관리를 하고 있단 말 인가?

라고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때때로 엄청난 고열이 배관을 가득 채우고 있거나,

아니면 고온의 냉각수가 간헐적으로 뿜어 나오기도 했다.

엄청난 소리를 내며 뜨거운 증기가 훅하니 내려오기도 했다.

물론 내게는 아무 영향을 주진 못하지만.

만약, 내 불사의 몸이 아니라면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조건은 아니었다.


나는 몇 달간 숙련된 대로 경로를 되짚어 올라갔다.

외부 방비가 워낙 엄중해서 인지 발전소 내부의 경비태세는 의외로 헐거웠고,

마침내 그들이 원자로의 냉각수를 배출하는 근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설명 들은 대로라면 원자로의 냉각수는 계속 순환되는 구조라 외부에 배출이 안 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중간중간 유출되는 냉각수가 있었고,

그 냉각수들은 제대로 처리도 하지 않은 채 저수조 같은 곳에 모였다가 일정 수위가 차게 되면 간헐적으로 근해로 방출된다.

때문에 이 배관은 방사능이 가득하고 열기도 대단했다.

이런 환경을 견디고 이 경로를 통해 침투할 수 있는 인간은 아마 나 말곤 없을 거니까.

그들이 이 배관에 경계를 전혀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야 하는 최종 목적지는 그들 발전소의 핵심 조정실이니 이제 겨우 문턱에 온 꼴이다.

훈련과정에서 온몸에 총도 맞아보고 유탄도 맞아봤지만 실제 전투를 겪어본 게 아닌 내 마음을 두근거렸다.

게다가, 적지라면서 내게는 총 한 자루가 없지 않은가.


물밖으로 나온 내 귓가에 가느다랗게 소리가 들렸다.


” 거기에서 보이는 건물 중 제일 높은 건물. 거기로 가라.

그 입구에 경비초소가 있으니까 최대한 은폐해서. “


군복들이 잠수함에서 내 귀에 심어놓은 보청기 같은 것에서 옹알옹알 소리가 난다.

나는 어둠 속 여기저기 비치는 가로등을 피해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그들이 말한 건물을 향해 나아갔다.

나는 그간의 훈련으로 날렵해진 몸을 이용하여 당초의 목표지점에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건물의 정문에는 두 명의 기관총을 든 군인이 보였다.

아무리 격투 훈련을 받았다곤 하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귓속에서는 계속 옹알대는 소리가 났다.


” 신경 쓰지 말고, 우리도 다 보고 있으니까.

거기 보초 앞으로 나서면 한 명이 총을 겨눌 거다. 그자 앞으로 두 팔을 들고 가봐.

별일 없을 거니까. “

에라 모르겠다.

내가 시킨 대로 두 손을 들고 어둠 속에서 건물의 불빛이 비치는 곳으로 나서자,

현관 좌우에 서있던 두 군인 중 한 명은 나를 겨누고 한 명이 재빨리 앞으로 총을 겨누곤 뛰어나와 소리쳤다.

그 이후 벌어진 일들은 사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살기등등하게 다가온 군인이 두 팔을 든 내 앞에 와서 명치에 소총 끝을 들이댔고,

나는 귓속에서 들리는 대로 항복한다고 말하려 입을 벌렸다.

순간 뱃속에서 뭔가 움찔하는 느낌이 났고 내 입에서 트림 비슷한 게 나왔다.

그리고 내 앞에 있던 병사는 갑자기 헉 소리를 내더니 총을 떨구고 바로 쓰러져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난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는데,

그 광경을 보던 또 한 명의 군인은 어쩐 일인지 내게 손짓을 하며 가까이 오라는 시늉을 했다.


” 트랩이죠?

잘 오셨소, 여기 건물 출입 보안카드가 있으니 사전에 받은 경로로 침투하시오.

내 임무는 여기까지요. 성공하시길 바라겠소. 동지. “


무슨 독립투사 같은 말을 하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병사.

아, 이제 다 온건가.


” 저게 되는군요? 기가 막힙니다. “


군복 한 명이 어이없다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화면에 클로즈업으로 다가오던 인민군 병사가 나오고, 뭔가 트림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나자 갑자기 그 병사가 흰자위를 보이면서 쓰러져 버리는 장면을 보고 나온 말이다.


” 출발 전에 트랩 위장 속에 신경가스 캡슐을 잔뜩 넣어놨잖아.

물론 우리 원격 조정으로 터지게끔 되어 있지만.

한 개 가지고 야외인데 저 정도 위력이니 저놈 뱃속 캡슐 다 터트리면 아마,

저 안에 있는 놈들 모조리 몰살할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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