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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Dec 08. 2021

너를 밟게 해 줘서 고마워!

숲 품앗이 육아

태풍이 지나고 숲에 가보면 어김없이 나무들이 몇 그루 쓰러져있다.

다가가서 살펴보면 대부분 아까시나무들이다. 

아까시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고 옆으로 옆으로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다. 온 산을 다 덮을 것 같은 기세다.  수 천 개 콩주머니 씨앗으로 번식하고 뿌리로도 번식하니 번식 속도가 어마 무시하다. 대신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고 키만 키우니 바람에  흔들리다가 태풍이라도 불라치면 쉽게 무너져 뿌리가 뽑힌다.


 밀원 식물로 우리에게 달콤한 꿀을 주고 포도송이 같은 하얀 꽃송이는 얼마나 탐스러운지! 

5월이 되면 아이들과 아까시 꽃송이를 한송이 따서 꼭 맛을 본다. '으웩'하며 내뱉는 녀석들이 꼭 한둘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잘 받아먹는다.' 꿀맛이나요!'' 비려요! '달콤해요!''심심해요!'

느끼는 입맛도 가지가지다.

한때 녹화사업의 주역으로 우리 숲을 푸르게 푸르게 하는데 한 몫했지만 숲이 들어찬 지금은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오히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공원 숲에는 수 십 년 된 아까시나무가 뿌리에 흙을 주렁주렁 매달고 거대하게  누워있다. 숲에 오자마자 바로 아이들 눈에 띄었다. 손에 막대기를 들고 나무 주위를 탐색한다. 한 녀석이 나무를 툭툭 쳐보기도 하고 뿌리 속을 쑤셔보기도 한다. 그러더니 아이들을 부른다. ' 야 여기 재밌는 것 있어! 하면 '어디! 어디!' 하며 아이들이 졸래졸래 모여든다. 아이들은 오전 내내 나무뿌리 하고 논다. 처음에는 나무 둥치를 탁탁 치며 놀다가 관심이 뿌리로 이어지며 뿌리를  탐색에 들어갔다. 나무를 늘 서 있는 나무만 보았지 누워있는 나무는 처음인 것이다.  넘어진 나무 가지고 이렇게 잘 놀 수 있다니!  아이들의 탐색은 하루 종일 이어진다.


"너 왜 이렇게 넘어졌어? 내가 일으켜줄까? 끙차끙차! 산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할까?

야! 하얀 벌레가 나왔어. 우와! 움직여. 눈도 달려있어. 에이그 징그러워. 다시 묻어주자.

이 하얀 벌레는 풍뎅이 애벌레인 굼벵이다.

'내가 만졌더니 공처럼 변신했어. 데굴데굴 굴러가 히히. 재밌어."

사람 손길에 놀라 움츠러든 공벌레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신기한 듯 굴려본다.

"우리 나무 타고 기차놀이할까? 

다섯 아이들이 쪼르르 앉아 '칙칙폭폭' 기차놀이를 한다. 아까시나무 기차! 타세요. 출발!~

아이들의 놀이 창조는 끝이 없다. 숲에 있는 어떤 사물을 만나도 다 놀잇감이 된다. 


작은 아이 다섯 살 무렵, 2년 동안 동네 네집 아이들이 모여서 숲에서 놀았다. 오늘은 이 집 엄마와 산에 오르고 내일은 저 집 엄마와 공원숲으로 놀러갔다. 4단짜리 찬합에 김밥이며 과일을 싸고 어미닭이 되어 병아리들을 몰고 힘든 줄도 모르고 산을 오르내렸다.

아이들은 그때그때 놀이를 만들어서 잘도 놀았다. 집에서 노는 날에는  나무블록으로 집을 짓고  뜰채로 지붕 위에 밀가루를 뿌렸다. 신기하게도 밀가루 몇 줌이 눈 오는 마을 풍경을 금방 만들어낸다. 추운 겨울날에는  식탁 위에 밀가루 반죽을 뿌리고 밀대를 굴려서 모양 쿠키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만든 모양 쿠키를 찾아먹으며 뿌듯해한다. 엄마 갖다 줄 것도 챙기고. 어떤 날은 치자, 비트, 시금치물을 내서 색색깔의 만두를 빚어 만둣국을 끓여 나눠먹었다. 아이들이 가고 나면 폭탄 맞은 집을 치우느라 헉헉대지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만드는 그 모습들을 보면 중독된 것처럼  다음에 또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겨울 숲에서는 주로 나뭇가지를 가지고 논다." 우리 추운데 장작불 피울까?" 하면 "야호!"소리를 지르며 다리가 떨어져라 왔다 갔다 하면서 나뭇가지를 주워 나른다. 손을 모아서 나뭇가지를 장작불처럼 둥글게 만들고 집에서 가져온 두꺼운 양초를 가운데 놓으면  바로 장작불이 된다. 산불 위험이 있으니 양초에 절대 불을 붙이면 안 된다. 우리는 장작불을 가운데 놓고 '헨리에타의 겨울' 동화책을 읽었다. 아이들은 다람쥐먀냥 귀를 쫑긋 세우고 눈망울을 굴리며 책 속으로 빠져든다. 모두 순식간에 다람쥐 헨리에타가 되어 겨울잠에 빠져든다. 잠시 후 "야휴, 잘 잤다." 하며 기지개를 켜고 일어선다.


장사바위를 오를 때 서진이가 가쁜 숨을 고르며 혼잣말하듯 "고봉산아 너를 밟게 해 줘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산이 살아있는 존재로 느껴진다. 무수히 밝고 또 밟으면서 당연히 내 발밑에 있는 것으로 무심히 생각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산이라는 존재의 고마움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나를 일깨운다... 아이들은 모든 사물을 대상이 아니라 존제 그 자체로 느끼는 것 같다. 사물과 한 몸이 되어버린다. 영혼이 맑아서 사물과 물아일체가 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숲에 오면 먼저 햇빛과 바람과 한 덩어리가 되면서 존재가 커지는 것 같다. 부드럽고 너그럽고 사랑스러운 존재... 숲에 온 아이들은 일상의 아이들하고 영혼의 상태가 다르다고 느꼈다. 아이들의 맑은 영혼이 바람을 만나면  바람을  사랑으로 느낀다. 바람 명상을 하면서 아이들은 바람이 직선으로 오는지 동그랗게 오는지 온몸으로 느끼며 즐거워했다. 바람은 우주의 사랑이다.


숲이 아이들을 키운다. 뭇 생명을 키우듯이...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자라야 한다. 

자연과 함께했던 유년의 기억들이 

어른이 된 먼 훗날 따끈한 군고구마통처럼 따스한 온기로 내면을 가득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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