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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그린 Aug 27. 2024

이제는 '디지털 치안'을 생각할 때

또 텔레그램 딥페이크 사건이 터졌다

또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이다. 이번에는 더 은밀하고 교묘하게 AI를 활용한 딥페이크 기술이 사용됐다.  '지인능욕방'은 SNS 등에서 아는 여성의 얼굴 사진을 저장한 후 나체, 포르노 등에 합성해 피해 여성의 지인들끼리 텔레그램에서 돌려 보는 단체방으로 그 존재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한 엑스(트위터) 계정에서 피해 사례를 제보받았는데, 피해 규모가 전국구의 대다수 학교인 데다가 그 대상이 중학교, 초등학교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성 착취 텔레그램의 이용자 수는 22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75% 이상이 10대, 95% 이상이 10·20대이다. 대충 계산해 봐도 국내 인구 5,177만 5,000명 중 십 대 인구는 8.79%인 455만 1,023명, 이 중 남성 인구는 성비 106.6이므로 대략 234만 8,184명이다. 성 착취물 이용자 22만 명의 75%는 16만 5천명인데, 이 숫자를 10대 남성 인구와 비교하면 대략 7%다. 참고로 우리가 살면서 박 씨를 만날 확률이 8.4%, 최 씨를 만날 확률이 4.7% 정도 된다. (물론 이는 아주 대략적이고 단편적으로 계산해 본 수치다. 또한 인당 중복 계정이 얼마나 집계되었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그래도 여전히 많다. 2만 명이어도 많다. 2천 명, 2백 명이어도 많다.)


 이처럼 주위 어디에 성 착취자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나 SNS에 게시한 얼굴 사진을 내려야 한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자신의 개인적인 소셜 네트워크 공간에조차 자기 사진을 마음 편하게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몇 년 전 불법 촬영 이슈가 대두되어 화장실이나 샤워실에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는 범죄자들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후 여성들은 밖에서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마음 편하게 할 수 없게 되었다. 불법 촬영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완전히 근절하기는 힘든 현실이라 밖에서 화장실을 갈 때면 '지금 어딘가에서 나를 촬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 몸 사진이 어딘가에 올라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이제는 어디 가서 옷을 조금도 벗지 않아도 나체사진이 인터넷에 떠돌 수도 있다니 이 땅의 여성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 기술 사회가 우려스럽다.


  흔히 우리나라를 가장 치안이 좋은 국가 중 하나라고 한다. 이는 일면 맞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적어도 길을 걷다가 총을 맞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고 늦은 시간에도 비교적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치안이 좋은 나라에 있을 때의 특징은 내가 스스로 위험한 일에 뛰어들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신변의 위협 없이 있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고 그렇기에 자유롭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리적 치안이 괜찮은 (물론 여성에게는 남성보다 다소 덜 괜찮은) 나라다. 그러나 한국의 디지털 치안은 어떠한가? 자신의 공간에 사진 한 장을 올릴 때도 고심해서 얼굴을 가려야 하고, 화장실이나 숙박업소를 갈 때 실체 없는 불안에 떨어야 하고, 과거에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이미지 하나로 '페미'로 낙인찍혀 사이버불링을 당할지 모른다면?


 나는 한국이 물리적 치안과 디지털 치안의 간극이 큰 나라라고 느낀다. 중범죄를 당할 확률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늘 어떠한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여성들의 마음에 존재한다. 디지털 치안이 나쁜 사회의 악질적인 점은 그 독성이 한쪽 성별에 편향되어 작용하기 때문에 사회적 거대 담론을 형성하거나 법 제정을 촉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지금은 여성들뿐만 아니라 모든 성과 국가의 연대와 협력이 필요한 때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들은 자신을 착취하는 22만이 속한 진영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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