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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는 어디서 왔을까

그래서 화이트가 누군데

by 최그린

나는 화이트데이가 싫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로맨틱한 기념일에 대한 내 기억을 열심히 되짚어보자면, 아주 어릴 때는 발렌타인 데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발렌타인은 여자가 남자에게 주는 날이래! 라며 화이트데이라는 날에 대해 인지하게 되고 여자가 받는 날은 그 때라고 했다. 그리고 발렌타인데이때 주고받는 것은 초콜릿, 화이트데이 때 주고받는 것은 사탕이라는 것도.

일단 여기부터 마음에 안 든다. 난 초콜릿이 좋고 사탕은 별로라고. 요즘에는 화이트데이에도 그냥 초콜릿을 주거나 마카롱 등 다양한 간식류를 주고받는 것 같지만 초중학생 땐 이 룰이 좀 더 잘 지켜져서 내가 뿌린 초콜릿의 50% 이상이 사탕으로 돌아오는 것이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화이트데이라는 것 자체가 좀 짜치는 느낌이 들지 않나. 발렌타인데이의 부수적인 것 같고... 서양에서 가져오면서 남자에게 주는 날로 둔갑시켜 놓고 여자는 못 받으면 억울하니 옛다 하고 던져준 느낌이고...


발렌타인데이는 성 발렌티노 축일이라는 나름의 유래가 있는 것과 달리 화이트데이의 유래를 찾아보면 일본의 제과 회사들에서 마시멜로와 사탕 재고 소진을 촉진하기 위해 만든 날이라고 나온다. (성 화이트란 사람이 있지는 않고 마시멜로 색깔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남자에게 주는 날이 먼저 존재했고, 판매량 촉진 겸사겸사 여자에게 주는 날도 만들자! 라고 기획된 것이다.

서양에서는 발렌타인데이가 성별 무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마음을 주고받는 날인 반면 아시아에서는 왜 이런 식으로 변형되었나 찾아보니, 발렌타인데이를 수입한 것 또한 일본이다. 당시 여성들이 마음을 고백하는 일이 흔치 않았기에 "여성이 적극적으로 표현할 기회를 갖자"라는 의미로 홍보된 캠페인이었다고 한다. 1950년대에는 여성들이 주체성을 갖고 행동할 수 있는 나름의 기회가 되었을 수 있었을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내가 대체로 성별이분법적인 모든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화이트데이는 발렌타인데이에 비해 더 부수적이고 상업적인 게 별로다. 화이트데이 때 선물을 받아도 그런 찝찝한 기분에 100% 기뻐하기가 어려워 이번부터는 발렌타인데이때 서로 간식을 주고받는 체제로 애인과 합의를 보았다.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인데, 화이트데이 때는 여행을 가 있을 예정이라 그 핑계로 신나게 또 간식을 사 먹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사진 : unsplash의 Joanna Kosin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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