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신체는 야하지 않다, 그저 존재할 뿐
최근 이슬람계 국가인 말레이시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국교는 이슬람이지만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곳이라 모스크를 포함해 힌두 사원 등 다양한 종교 건축물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각 사원은 아름답고 독특한 미감을 뽐내며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었는데 관광사업에 한껏 개방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공통으로 방문객들의 의상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모든 사원에서 히잡이나 차도르를 (대체로 돈을 받고) 빌려주었기 때문에 숙소를 나서면서부터 의상에 신경 쓰지는 않아도 되었지만, 남성 관광객들과 노골적으로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에 기분이 미묘해졌다. 남성들에게도 반바지는 금지된다는 약간의 기준 정도는 있지만, 여성들은 보통 머리카락까지 가려야 했다. 말라카 해상 모스크에서 가운이 아닌 완전한 히잡 형태의 의상을 빌려주었는데, 히잡은 처음 써 보는 것이라 의상 체험 같아서 재미있기도 했지만 덥고 답답한 옷을 입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바투 동굴의 힌두교 사원에서는 남성들은 웃옷을 완전히 벗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왜 성별에 따라 이렇게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것일까?
히잡을 쓰는 이유는 육체적 욕망을 죄악시하는 종교 특성상 여성의 머리카락이 남성을 유혹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머리카락은 그저 존재하고 자라는 것이고, 가만히 있는 사람과 그 사람을 보고 성적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후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맞지 않나, 그런 불합리함에 대해 생각하다가 내가 차고 있는 가슴 가리개를 보았다. 사실 이 의복도 비슷할지도?
물론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브래지어에는 다양한 기능적 효과가 있다. 운동을 할 때는 가슴 흔들림으로 인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쪽이 압도적으로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나 어쨌든 기본적으로 브래지어는 갑갑한 옷이다. 나의 경우 중고등학생 때까지는 집에서나 잠잘 때도 브래지어를 착용하다가, 한 번 벗으면 편하다는 걸 깨달은 이후에는 집에 발만 들이면 브라부터 벗어재끼고 외출할 때도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니플패치를 애용하는 사람이 되었다. 요즘은 니플패치만 쓰는 여성들도 늘어났지만, 우리 사회에서 남자의 가슴과 여자의 가슴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각자의 맨가슴을 생각해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상의를 완전히 탈의한 남성이 있다. 일상생활에서라면 이상한 눈총을 좀 받겠지만, 수영장에서라면 아주 자연스러울 것이고 러닝 같은 운동 중이라면 땀이 나고 더우니까 그러려니 할 것이다. 상의를 완전히 탈의한 여성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무시무시하다. 엄청난 눈총과 수군거림은 물론이고, 불법 촬영이나 성희롱 등 성폭력 피해가 발생할 확률도 높을 것 같다. 수영장에서 아무리 아찔한 비키니를 입는다고 해도 '여성의 유두는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가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생각이다. 반면 남성의 유두는 비교적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것은 좀 이상하다. 굳이 따지자면 집 바깥에서 유두를 노출할 필요성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은 수유를 할 수 있는 여성 쪽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만 유두를 노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 야해 보인다는 이유, 즉 남성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히잡과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강도만 다를 뿐 사실상 여성의 신체를 억압하고 가리는 의복을 적어도 하나는 일상적으로 착용하고 있다. 히잡을 쓴 여성들을 볼 때 우리는 스스로 그것이 답답하고 이상하다고 깨닫지 않는지 의아해하지만, 브래지어에 대해 제기되는 의문의 목소리가 크지 않은 걸 보면 문화적으로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길러졌을 때 그냥 그렇게 살게 되는 모양이다. 서구권 등 일부 지역에서는 해변에서 여성이 상의를 탈의하고 있어도 크게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곳도 있고, 탈브래지어 운동도 존재하긴 하지만 사회적으로 가슴을 노출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대상화와 폭력적 시선이 사라지 않는다면 그것을 개개인이 실천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그저 존재하는 사람과 그 사람을 보고 성적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후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맞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