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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그린 Aug 06. 2024

하객설움

아 결혼식 또 가기 싫다

결혼식은 한국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잔치 중 객이 가장 푸대접받는 행사다. 생각해 보면 돈 싸 들고 가서 이만큼 소외당하는 행사는 별로 없다. 일단, 누군가 청첩장을 내밀면 그때부터 머리가 아프다. 축의금은 얼마를 해야 하지? 덜 친하면 5만 원, 조금 친하면 10만 원 정도가 '국룰' 이었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식대가 올라 참여까지 해 놓고 5만 원을 내면 민폐라는 말도 있어 봉투에 얼마를 담아야 할지 골머리가 썩는다. 최저점을 10만 원으로 설정하자니 기존의 2배나 되어 부담스럽고, 2만 원 정도만 더 넣어 7만 원을 하자니 왠지 10만 원에서 일부러 몇 장 뺀 것 같은 쪼잔한 액수라 면이 안 산다. 5만 원을 그냥 송금하고 직접 참여를 안 하면 괜찮다고도 하는데, 이것도 좀 웃기는 일이다. 초대받은 잔치에 참여하는 게 고마운지 아닌지가 돈의 액수로 정해지다니?  


고민이 담긴 액수가 든 봉투를 제출하면 결혼식장에서 밥 먹을 권리로 교환해 준다. 일단 잘 챙겨두고 식장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이 많다. 결혼식장은 항상 사람으로 넘친다. 요즘 정시에 도착했다가는 앉을 자리는 어림도 없다. 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애매하게 친한 사람의 식이면 더 가까운 사람들이 많을까 봐 앉아 있는 것도 괜히 눈치 보인다. 차려입는다고 굽 높은 신발을 신었는데 1시간 정도를 서서 있으려니 금세 지친다. 이미 대충 알고 있는 루틴화된 식순을 발을 까딱거리며 버티다가 안내에 따라 무거운 발걸음으로 식당으로 향한다.


하객들이 결혼식에서 제일 기대해 볼 만한 것은 역시 식사다. 뷔페 식인 경우가 많은데, 식장마다 조금씩 다른 음식 스타일은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앞선 행사에서 지쳤다면 밥을 먹으면서 충전해 보자.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댔으니까, 마음 편하게…. 사실 그마저도 쉽지 않다. 식순이 끝나는 타이밍쯤에 손님들이 한 번에 식당으로 가기 때문에 특히 뷔페식이라면 줄을 서서 음식을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간신히 받아서 좀 먹어 보려고 하는데, 아직 다 먹지도 못했을 때 다음 결혼식 진행해야 한다고 쫓겨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내가 특별히 식탐이 있는 사람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직도 조금만 있다 먹으려다 놓쳐버린 마카롱이 억울하다. 세상 어떤 잔치가 먹고 있는 손님을 쫓아내나 싶다.


나는 결혼식이라곤 그렇게 많이 가보지도 않은 주제에 벌써 질려버린 모양이다. 앞으로도 가야 할 결혼식이 많을 텐데 큰일이다. 주위에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도 즐겁고 행복하기보다는 못지않게 피곤해 보인다. 호스트와 게스트 모두를 달달 볶으며 나오는 단물은 웨딩업계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비혼이 흔해지고 더 이상 결혼 문화가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으니 언젠가는 결혼식도 과거의 문화가 되지 않으려나 생각해 본다. 물론,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스스로 선택한 용감한 사람들을 모두 응원합니다.


사진: Unsplash의 Luk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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