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의 에세이 <아내 대신 엄마가 되었습니다>
최근 SNS에서 방송인 사유리와 아들 젠의 한복 사진을 보았다. '어머, 너무 곱다' 라고 감탄하며 처음 그가 비혼 출산 소식을 세상에 전했던 때를 떠올렸다. 2020년에 사유리의 아들 젠이 태어났고, 그 어느 때보다 비혼 출산에 대한 화두가 뜨거웠지만 약 4년이 지난 지금도 비혼모가 되고 싶은 여성은 한국에서 시술을 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것을 해내는 사람들이 드물게 있고, 사유리도 그중 하나이다. 젠과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 태생이었다면 나의 비혼 출산이 이렇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유리는 어떠한 숭고한 비전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아이는 갖겠지만 가부장제는 거부하겠다는 운동가도 아니고, 출생률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애국자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만난 남자 친구가 있었지만 상대는 '아직' 결혼과 출산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고, 사유리는 아이가 있는 가정을 꾸리고 싶은 사람이었다. 주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스토리다. 다만 사유리는 가임기의 끝자락에서, 흔하지 않은 선택을 했다.
한국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체외 수정 시술을 받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불법은 아니다. 산부인과학회의 내부 규정에 따라 각 병원에서 시술을 거부하고 있을 뿐. 한국에는 공공 정자은행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개인적으로 기증받은 정자로 시술을 하면 추후 생물학적 친부가 추후 권리를 주장하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애초에 여성이 임신을 위해 정자를 기증받으려면 법적 남편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유리는 한국에서 미리 냉동해 놓았던 난자도 포기하고 일본으로 향했다.
배란 유도제를 맞고 매일 배에 주삿바늘을 꽂아야 하는 체외수정은 아주 힘든 과정이다. 그리고 비혼 출산은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큰 파장을 일으킬 만한 엄청난 일이다. 신체적 부담, 그리고 방송인으로서 이슈화될 심리적 부담을 양쪽으로 안고서 사유리는 한국에서 <이웃집 찰스>를 찍으면서 일본에서 시술을 받는 이중고를 해냈다. 임신 준비와 방송 촬영 모두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녹화가 끝나고 곧장 공항으로 가서 일본에 내린 후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적적으로 한 번의 시도 만에 임신을 성공한 후에도 어떻게든 만삭까지 임신 사실을 숨겼다.
출산하고도 그는 어떻게 이 소식을 알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긍정적인 결과가 상상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다 하룻밤을 보낸 남자의 아이라고 할까? 짧게 만난 남자 친구의 아이라고 할까? 어느 쪽이 평범해 보일지 고민하다가, 거짓말을 덮기 위해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되는 상황을 상상했고, 아이에게 당당해지기 위해 결국은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실제로 2020년 말 그의 출산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공교롭게도 당시 낙태죄 비범죄화 이슈가 일고 있었고, 낙태죄 폐지에 대해 찬성하는 측도 반대하는 측도 자신들의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사유리의 스토리를 인용하며 이슈를 키웠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사유리는 아들 젠과 너무나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지만, 대신 사유리에게는 양육을 도와주는 부모님과,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 최근 정자 기증으로 아이를 낳은 동성 부부의 이야기도 화제가 되었는데, 동성이든 싱글이든 남편 없이 출산한 여성의 뉴스에는 어김없이 악성 댓글이 달린다. '아이가 불쌍하다.', '이기적이다.' 등…. 그들의 삶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저 평범하게 행복한 하나의 가정이 보인다. 여전히 존재하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새로운 생명과 만나기로 선택한 사람들. 아이에게 당당하게 정말 원했기 때문에 너와 만났다고 말해줄 수 있는 엄마가 있다면 아이도 행복할 것 같다.
세상에는 아이를 낳기 싫어하는 여성도 있고, 낳고 싶어 하는 여성도 있다. 그 모두가 각자가 선택하고 싶은 삶의 방식이며 존중받아야 한다. 출산율 0.7대 쇼크를 언급하며 국가는 후자의 소망만이 더 커지고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마음은 남편이 없는 순간 너무나 이루기 어려운 것이 된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가정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사회 전체적인 출생률도, 행복도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모든 여성은 자신의 삶을 위해 필사적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때 그 선택에 법이나 규정이 짐을 더하지 않으면 좋겠다.
*해당 콘텐츠는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