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에 대한 생각
미국의 재판을 보면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에 관한 사안이 아주 심도있게 다루어집니다. 절대적 진실을 알기 어려운 현실의 법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법은 범죄를 응징하는 단순한 수단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를 설정하고, 그 행사가 정당하다고 평가될 수 있는 경계선을 그어 주어 '법에 의한 지배'를 실현한다. 형벌권은 국가가 가진 권한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면서, 동시에 남용의 위험이 큰 권력이다. 그러므로 형사소송법이 규율하는 절차는 단순한 기술적 규칙의 나열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의 자유와 생명을 재단한다는 구조적 한계에 대한 제도적 응답이다. 이 한계는 필연적으로 오류 가능성과 권력의 편향성을 내포하기에, 형사절차의 존재 이유는 바로 이러한 위험을 통제하는 데 있다.
이 위험은 구체적으로 국가와 개인 사이의 비대칭적 권력 관계에서 드러난다. 국가는 수사기관·검찰·법원을 통해 강제력과 정보, 재정적 자원을 독점하는 반면, 피의자나 피고인은 제한된 시간과 수단 속에서 방어해야 한다. 이러한 불균형이 그대로 방치된다면 형사절차는 권력의 일방적 행사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이에 법은 진술거부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자백 배제법칙 등의 제도를 두어 이 비대칭을 완화한다. 이는 부속적인 절차가 아니라 형벌권을 법의 통제 아래 두고 절차적 정당성을 보장하는 법치 체계의 핵심 장치다.
이러한 원리는 미국 수정헌법 제5조와 제14조에 명문화된 '정당한 법절차(due process of law)' 개념 속에서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형사피의자에게 공정한 절차를 보장하지 않고는, 국가는 결코 생명이나 신체,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헌법적 명령이다. 그리고 그 실질은 권력의 행사를 절차라는 장치 속에 가두어, 그 과정이 공정하다는 전제 없이는 어떠한 처벌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 원칙의 실제 적용은 판례를 통해 생생히 구현되었다. '미란다 대 애리조나 사건(Miranda v. Arizona, 1966)'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경찰이 피의자의 자백을 받기 전에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을 명확히 고지하지 않았다면 그 진술은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는 경찰의 권리 고지 누락을 단순한 절차상의 하자가 아니라, 국가가 피의자를 존엄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은 중대한 헌법 위반으로 본 것이다. 이 판결을 통해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심문하기 전 반드시 권리를 고지해야 한다는 ‘미란다 원칙’이 확립되었다. 또 다른 사례인 '파웰 대 앨라배마 사건(Powell v. Alabama, 1932)'에서는, 흑인 청소년 피고인들이 변호인의 충분한 조력을 받지 못한 채 급속히 사형을 선고받았다. 연방방대법원은 피고인에게 변호인을 선임하고 방어를 준비할 실질적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재판은 본질적으로 부정의라고 판시하였다. 재판의 형식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실질적 공정성이 결여된다면, 그것은 국가가 법의 외관을 빌려 개인을 억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확인한 판례였다.
적법절차는 겉보기의 공정함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존재임을 전제로, 권력 남용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법의 자기제한 원리다. 이러한 사상은 근대 헌법과 인권 규범의 산물일 뿐 아니라, 자연법의 기초가 된 성경의 가르침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산상수훈 중 마태복음 7장 1~2절은 “비판(판단)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판단)하지 말라”라고 명한다. 이는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최종적 판단의 주체는 오직 신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를 근거로 할 때 세속 법정이 다루는 것은 절대적 진실이 아니라, 증거와 절차에 의해 형성된 제한된 진실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판단이 오류와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이상, 이 제한된 진실을 올바르게 다루는 유일한 길은 절차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다. 절차는 신적 절대 판단에 이를 수 없는 인간 재판이 그 한계를 자각하고 스스로를 제어하는 방식이자, ‘사람에 의한 지배’를 억제하는 장치인 것이다.
형벌의 정당성은 절차적 정당성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형벌은 대중의 분노를 달래거나, 특정인을 징벌하여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론, 감정, 권력자의 재량이 형벌의 기준이 되는 순간, 법은 법치가 아니라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다. 법은 본질적으로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을 제한하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권력의 남용을 제한하는 적법한 절차는 권력에 대한 권리의 선차성을 천명하는 것이며, 절차가 무너지는 순간 권력은 권리 위에 군림하게 되고 ‘사람에 의한 지배’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절차 준수란 사람의 지배에서 벗어나 ‘법의 지배(rule of law)’를 구현하겠다는 실천적 약속이자, 형벌국가가 넘지 말아야 할 최후의 경계이며 인간 존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법이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법이 정당한 절차를 따른다는 사회적 신뢰와 도덕적 정당성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 법은 더 이상 정의의 언어가 아니라 폭력의 외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