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 혹은 살아있는 것
서점에 서서 빨려 들어갈 듯이 앞부분을 읽었던 책이다. 다리가 아파서 아쉬운 맘을 뒤로하고 서점을 나왔었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그날 빌리려던 책 리스트 10권은 모두 없었는데 이 책이 눈에 띄는 거다. 운명처럼 집어 들었다. 서점에서 이 책을 읽었던 때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앞부분을 다시 읽다 보니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어느 날 갑자기 샤워를 하지 않는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를 남편으로 둔 화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남편도, 아내도 단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책이다. 속이 단단할수록 껍데기가 두꺼워져 그것을 뚫고 타인에게 말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둘 다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남편은 거의 속이야기를 하지 않아 왜 샤워를 하지 않는지 조차 지레짐작할 뿐 마지막장까지 알지 못한다. 화자 또한 떠오르는 말 중 절반은 내뱉지 않고 삼킨다. 단단한 사람들.
남편 겐지 씨가 강물에 들어가서 행복해하는 순간에는 나 또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자유를 넘어 황홀함까지 나를 휘감았다.
뜬금없는 구절에서 울컥하곤 했는데, 모두 다이후짱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거 왜 살아 있는 거지? 하고 엄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고기니까 물과 먹이가 있으면 살아갈 수 있겠지"라고 아빠가 말했다. "소중히 하고 안 하고는 상관없나 보다"
왜 살아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나와, 다이 후.
미친다는 것은 감정이 폭발한 다음에 있는 걸까. 괴로움으로 가득 차거나 슬픔에 빠져 견딜 수 없거나 하면, 머릿속이 오로지 그것에 지배되어 감정을 떨쳐낼 수 있는 걸까. 남편은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감정이 폭발하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남편 겐지 씨는 회사에서 아마 얕보이고 사내 괴롭힘을 당했던 것 같다. 며칠 전 동작구에서 사내 괴롭힘을 당하다가 투신자살을 한 맥도날드 배달원이 오버랩된다. 그 동네에 꽤 살았기에, 장소가 생생히 떠올랐다. 옥상에서 괴롭힘 당한 사실을 알리는 전단지를 뿌리고, 그 전단지를 줍는 동료들 사이로 몸을 던질 땐 어떤 감정이었을까.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복수였을까 혹은 억울함과 고통을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소망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평안과 자유를 향한 날갯짓이었을까.
이쓰미는 남편이 인생의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쓰미는 남편이 있어준다면 그걸로 됐다는 생각은 한다. 그 두 가지는 비슷한 듯 다르다. 남편에게도 자신이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
힘들 때 내 옆을 지켜주는 M을 보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다면 그걸로 됐다. 내가 나일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노력이 필요한 일이란 것을 그땐 몰랐다. 상대가 모든 것을 받아주어 그 신뢰로 내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 나 역시도 그 신뢰를 바탕으로 용기 있게 벌거벗은 나 자신을 내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정말 몰랐다.
다이후짱이라고 이름 붙인 물고기는 별반 돌보지도 않았는데, 이쓰미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살아 있었다.
"살아 있었다"라는 말에 어찌나 울컥하던지. 마치.. 내가 다이후가 된 것만 같았다. 다이후짱과 다르게 나는 나를 돌보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내가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억지로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서있기에. 위 구절을 읽으며 나 역시 "사는"게 아니라 "살아 있는"게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자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