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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음 Jun 07. 2023

독자를 기다리는 나의 글

글쓰기 처녀작

지난달이었던가? 작년 겨울에 지인에게 선물 받은 펭수 다이어리가 책장 구석에 꽂혀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다이어리를 매일매일 써보면 어떨까?’ 문득 든 생각이다. 잠시 생각만 했을 뿐 실천은 못 했으나 대신 지역 문화 센터에서 열리는 글쓰기 강좌가 있는지 검색을 해보았다. 도보로 이동 가능한 가까운 지역으로 대상을 한정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내가 들을 수 있는 글쓰기 강좌는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글쓰기가 정말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단순히 여유 시간에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건지 정확히 판단조차 서지 않은 채로 12월을 맞이하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한다. 12살의 나는 왼쪽에 굵은 스프링이 빙글빙글 말려있는 갱지의 무지 종합장에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고맹이’라는 이름의 또래 여자아이가 겪는 생활 속 짤막한 에피소드였는데 매 에피소드마다 1화, 2화... 이런 식으로 번호를 매겼던 것 같다. 제법 맹랑하게도 매 에피소드를 끝낸 후에는 친구들에게 공개를 하기도 했다. 분명 어설프기 짝이 없었을텐데 친구들은 고맙게도 나의 고맹이 시리즈를 먼저 읽겠다고 줄을 서며 기다려줬고 재밌게 읽어줬다. 게다가 ‘맹이 맹이 맹이 맹이 고맹이~ 고맹이가 위험에 빠졌다♬'(지금까지 리듬이 기억난다) 라는 주제가까지 만들었는데 이를 여러 친구들이 호응해주며 따라 불러주기까지 했었다. 그 때 나의 독자가 몇 명이나 됐는지, 누구누구였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그렇지만 나를 ’글 잘 쓰던 친구‘로 기억해 준 동창을 나중에 만난 걸 보면 초등학생 때의 나는 글쓰기를 상당히 좋아했고 또래보다 능숙하게 글을 썼던 것 같다.



20~30대 때의 나는 싸이월드나 카카오스토리에 사진과 함께 일상의 추억을 자주 글로 남겼다. 일촌 또는 친구라는 관계 맺기를 통해 나의 글을 볼 수 있는 독자들이 생겨났다. 또한 나의 글을 읽었는지 여부는 ’조회수‘를 통해, 독자들의 반응과 감상평은 ’댓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인이 된 후의 나의 글도 독자를 기다리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일상의 사진이나 추억들은 ’기록, 훗날 꺼내 보기‘ 위한 보관의 용도로만 남겨졌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내 글을 읽을 지인들의 반응을 철저하게 의식했었고 매일 SNS에 접속해서 늘어나는 조회수나 새로 생겨나는 댓글을 확인하며 일희일비했었다.



5학년 때 시작된 거창한 글쓰기에 비해 지금의 글쓰기는 매우 부끄러운 수준이다. 주 2회 학급 아이들 글에 달아주는 1~2줄의 짧은 코멘트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다른 글들에 비해 철저하게 독자가 제한적이다. 글쓰기 공책 검사를 끝낸 후 주인에게 나눠주면 아이들은 빛의 속도로 공책을 펼쳐서 나의 글을 읽어본다. 호기심이 가득 담긴 시선이 글쓰기 공책을 훑고 지나가면 1~2초간 아이들의 입꼬리에 미소가 스친다. 담임 선생님은 코멘트를 통해 틀린 문장을 바로잡아주기보다는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따뜻하게 읽어주고 있으니까.



펭수 다이어리에 매일의 일상을 남겨 혼자 고이 간직할까 하던 잠깐의 망설임은 나의 진심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읽히는 것을 원했으며 독자와 즐거움, 일상, 정보 따위를 공유하기를 좋아했다. 혼자 쓰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쓴 글을 누군가와 나누고 그 글을 통해 소통하고 싶었던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이 글쓰기 강좌를 수강한 것은 아주 적절하고도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글과 마찬가지로 과제로 쓰여질 내 글들 또한 독자를 만나볼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아이들이나 지인들이 아닌 낯선 독자이지만 글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에 지성까지 겸비한 독자를 확보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하다. 본 강좌에서 만나게 될 독자들의 반응과 코멘트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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