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감 4(조지아, 카타르)

by 김선생

<아테네 공항-트빌리시 숙소>

공항이 작아서 바로 체크인 카운터 찾았다. 가서 체크인을 하려는데, 승무원 분이 짐 무게는 하나도 신경 안 썼다. 그냥 여권만 보고 실물 표를 주셨다. 근데 마지막에 여행자 보험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조지아는 2026년부터 입국할 때 여행자보험 가입 필수로 바뀌었다고 한다. 몰랐다. 그래서 가입하면 다시 와서 증명하라고 했다. 바로 쪼그리고 앉아가지고 현대해상 여행자보험 가입했다. 이선생은 폰이 고장나서 공기계를 쓰는 상황이니까 거들고 싶어도, 뭘 새로 인증해야 하는게 많아서 내가 가입해줘야 했다. 뭔가 평소대로 느긋하게, 저렴한데다 대충 하면 이선생 불안핑 올라올까봐 빨리 쳐리해 줬다. 원래 한국 출발자만 폰으로 가입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시스템 같은데 뭐, 그냥 영어 가입 증명 승무원이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을 건데 대충 결제만 빨리 하면 될 것 같아서 그냥 가입했다. 그리고 나중에 문자로 공항-공항 이름 입력하라고 왔는데, 그냥 무시했다. 근데 어쩌다가 조지아가 여행자보험 가입 필수 나라가 됐을까? 사람들이 자꾸 산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다가 사고를 많이 쳤을까? 우리도 카즈베기에 가는 일정이 있었다. 거기 요즘 lynxlynx가 많이 나오나, 유라시아 늑대, 곰 이런 것 때문인가? 과격한 친러파들 때문인가? 여튼 들어갔다.

공항 안에서 면세점을 좀 둘러봤다. 전에 기름을 샀던 곳과 같은 브랜드 올리브유 매장이 있었는데 모든 제품, 시장보다 20%씩 비싼 것 같다. 음식점들이 비쌌다. 물이 5천원씩 했다. 물 하나 샀는데, 매장 직원이 나한테 "아테네 오어 아일랜드" 이랬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일랜드들만 보고 떠나는 것인지.. 그래서 "테살로니끼" 해줬다. 그러니까 "으으으으음. 에에에에. 아테네 이즈 비거" 이럼. 역시 찐퉁 아티카, 테살리아, 펠로폰네소스, 에페이로스 이런 동네 출신들한테 마케도니아는 야만인 취급인 것일까..

아무튼 이륙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탔다. 약간 그리스-정교회 다른 국가, 이런 노선은 대부분 가족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부분 가족 단위로 이동했고, 노부부도 많았고, 나이 많은 사람들도 다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이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착륙할 때까지 옆자리 승객하고 떠들었다. 착륙하고는 정교회 성호를 다들 그을 줄 알았는데, 일동 박수침.

새벽 2시? 3시? 아니나 다를까 입국할 때 아무도 여행자 보험 신경 안썼다. 조지아에 내리니까 여기가 추운 가나인 것인지, Bolt 기사들이 '어디가냐?, 우리차 타라' 이런다. 가나랑 다른 거는 이 나라 사람들은 담배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숨만 쉬어도 담배냄새가 나는 것 같다. 굳. 아 근데 여기서부터는 벌써 명품관 모델같은 외모를 가진 여성들이 많이 보였다. 약간 옷도 모델처럼 입는 것 같다. 장원영이 뮤직비디오에서 쓸 것 같은 하얀색 근위대 털모자 같은 그 러시아모자 그거 쓰고 계신 분들 많았다. 다들 정말 잘어울렸고, 키도 크고, 머리도 작고, 꿈에 나올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계셨다.

일단 유심부터 구했다. 유심 사는 직원이 이선생 어디서 왔냐고 쓰라고 한다. 이선생은 그래도 엄청 똘똘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디 나가서 서울사람이라고 쓴다. 서울이라고 쓰니까 직원이. "와우 잇즈 마이 드림 씨티."이런다. 아이돌 누구 좋아한다고 했더라. 이선생이 알아들을 정도면 옛날 아이돌인데. 약간 비스트 이쪽임. 그다음에 숙소까지 택시를 타야 했는데, 내가 가나에서부터, 볼트랑 볼트푸드를 애용했어가지고 바로 잡아서 숙소로 갔다.

숙소로 가는데 막 충북 단양, 그 여자중학교 있는 그런 곳 느낌이 나는 거리에 그냥 내려줬다. 충북 단양 느낌이라는 거는 강이 있고 건너에 절벽이 있고, 우리 쪽에는 마을이 있고 뭐 이랬단 거다. 거기 내려준 이유는 거기부터 숙소까지는 유황온천 온천장이어서 차 들어갈 길도 없고, 비탈을 계단으로 올라가야 숙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계단으로 진입하는 길에 엄청 큰 개가 있었다. 고양이보다 개가 많은 나라인가. 개가 따라왔다. 그리스 개랑은 다르게 좀 멍청한데 착하게 생겼다. 막 쓰다듬어 주니까, 엄청 좋아하고 부비부비 한다. 그래도 내가 얼어 죽을 것 같으니까. 개를 그냥 놔두고 숙소쪽으로 갔다. 개가 계속 따라올려다가 어느 순간부터 안 따라왔는데, 알고 보니까 골목쪽에 비슷한 사이즈의 비슷하게 생긴 흰개가 있었다. 조지아에서 개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 볼 때, 길거리 개들도 자기들끼리 영역 규칙을 엄격하게 지켜서 자기 영역 밖으로는 사람을 따라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인간한테 구걸을 하든, 심술을 부리든 다 약속된 영역 안에서 하는 것 같았다. 이 개들이 사람한테 훈련은 안 받았어도, 똑똑한 것인지, 경험으로 지식을 얻는 것 같다. 조지아 여행 중 어느날은, 개가 신호등을 사용하는 것도 봤다. 길거리 주인없는 개라는 표식이 귀에 붙어 있었는데, 횡단보도를 빨간불에는 안 건너고, 초록불에 건너는 걸 봤다. 아무튼 숙소에 들어가니까, 종업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는지, 종업원은 우리한테 카드키 주고는 불 다 끄고 문 잠그고 소파에 누워서 잤다.

<트빌리시1>

이 날은 오후 2시까지 잤다. 일어나서 밥 먹으려고 보니, 이선생이 찾아보니까 웬디스가 있다고 했다. 이선생 이양반이 자기가 미국에 있을 때 웬디스를 먹었다면서 옛날이 그리워 웬디스를 먹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안 그리웠지만, 궁금하기는 해서 웬디스로 갔다. 웬디스가 자유광장에 있었는데, 호텔에서 자유광장으로 가려면 이스라엘인 지구를 지나쳐야 했다. 이스라엘 지구인데, 파키스탄 사람도 많고, 다른 아시아 이민자들도 많았는데, 돈 번다고 상점을 열어 놨는데, 지나가면 니하오 이랬다. 이런 점은 추운 가나 같달까? 아니, 그래도 가나랑은 급이 다름. 여튼 자유광장에 왔는데, 금으로 만든 용을 죽이는 성 게오르기오스 조각이 있었다. 광장 뒤쪽 산에 어머니 조지아도 보였다. 그리고 오십자가기가 군데군데. 조지아 국기도 그리스처럼 국기 디자인이 진짜 잘 뽑힌 나라라고 본다. 클래식한 레드 화이트 조합, 호불호 없고 안정감 있는 성 게오르기오스 십자가, 성 게오르기오스 십자가로 4개로 나눠진 면 중앙에 근본력 넘치는 예루살렘십자가 있는 개멋있는 디자인이다. 근데 얼마나 국민들이 EU에 가입하고 싶어 하는지 관공서, 일반 매장 할 것 없이 조지아 국기 옆에는 유럽연합 별그려진 깃발 항상 있다. 약간 태극기 집회에 성조기 들고 나오는 느낌인가? 이러고 있는데, 어느날 조지아를 산책하다가 대법원에서 정치범들 풀어주라고 길막 텐트집회하고 있는 사람들이 성조기 달아놓고 영어로 "정치범들 풀어주세요." 적어놓은 것 봤다.

뭐 어쨌든 웬디스에 들어가서 이선생은 신나게 뭘 시켜서 먹었는데, 그냥 그냥 햄버거일 것 같아서 안 먹었다. 콜라는 맛있더라.

그러고, 광장 옆에 엄청 큰 쇼핑몰이 있어서 구경을 좀 했다. 판도라가 있었는데, 판도라 직원한테, 조지아에서만 살 수 있는 참이 뭐냐고 하니까. 역시 와인 원조 답게 와인병 모양 참이 있다고 한다. 그게 안 예뻤는데, 그것밖에 없다고 해서 그냥 나왔다. 이선생은 여기서도 축구 유니폼을 살려고 매장을 둘러봤다. 조지아 국가대표 유니폼을 구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선생이 스포츠 매장에서 국대 유니폼 없냐고 물어보니까, 그걸 사려면 국가대표 경기장으로 가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이선생은 그날 국가대표 경기장에 갈거라고 했다.

그래도 일단 볼 건 봐야 하니까. 무슨 대성당으로 갔다. 성삼위일체대성당이였던가. 빈민가 같은 아주 정리 안 된 마을 제일 위에 있었다. 들어가려고 하는데, 주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많았고, 경찰들도 몇몇 보이는 것 같았다. 근데 내가 발이 아파서 언제가부터 슬리퍼를 끌고 다니고 있었는데, 슬리퍼도 들어가도 될라는지 몰라서, 그냥 스텔스 모드 키고 안 보이게 다녔다. 건물 디자인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잘 표현하는 것 같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봐도 강렬한 패턴이 있어서 굳. 그리고 이 조지아 오소독스를 상징하는 성 니노 십자가 상징물도 있었다. 내부는 빽빽한 그림에서 나오는 웅장함도 있지만 꾸며지지 않은 높은 돌기둥이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느낌. 굳 본당이 그렇다는 거고. 사실 이 성당은 지하 공간이 큰 성당이었는데 지하에 지역 신자들이 자주 쓰는 홀이나 비품실 같은 쪽에는 넓은데 천정이 낮아서 진짜 동네 목욕탕 에코이펙트랑 동네 목욕탕 비치는 자연광 조명 효과가 있었다.

성당을 나와서 조지아 음식을 하는 아주 인테리어가 좋은 식당에 갔다. 근데 이동네 사람? 모든 유럽 사람이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건물의 외관에는 하나도 신경을 안 쓰고 내부 인테리어에는 엄청 손을 많이 쓰는 것 같았다. 다 쓰러질 것 같은 외관을 가진 식당이었는데, 내부는 분위기가 엄청 고급스럽고 좋았다. 이 식당 뿐만 아니라, "저런 건물에 누가 사나" 하고 창을 들여다보면, 촛대 만드는 공방이고, 수공예품 파는 예쁜 집이고, 막 그랬다. 거기 고양이랑 같이 살면서 고양이 마케팅도 하고, 장사도 하고 그렇는 것 같았다. 나는 갈비찜인데 소스를 메시드 포테이토와 섞어 먹는, 근데 라즈베리를 살짝 곁들인 음식을 시켰고, 이선생 이양반은 조지아는 호두가 중요한 식재료라며 이상한 거를 또 시켰다. 두 음식 다 맛있었다. 이선생은 또 자기는 사실 조지아에 와인 마시러 왔다면서 와인 한 병을 시켰다. 맛있다면서 맛있게 먹었다. 나는 술 안 먹는 사람이라 향만 맡아 봤는데, 근데 와인은 다 향이 좋던데? 뭐가 더 좋은지 뭐가 덜 좋은지 무슨 기준으로 따지는 건데?? 그리고 디저트는 판나코타, 참깨케이크를 시켰다. 처음에 내가 디저트를 시키려고 하니까 이선생은 안 먹을 것처럼 하더니, 내가 판나코타를 시키려고 하니까, 지가 참깨케이크 먹고 싶다고 참깨케이크를 시켰다. 그래? 그럼 판나코타 하나 더 시키면 되지. 둘다 맛있게 잘 먹었는데, 내 취향은 판나코타. 이거 진짜 맛있더라. 내가 먹은 디저트 중에 2~3위??

배 터지게 먹고 이선생은 유니폼사러 가고, 나는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거리가 예뻤다. 이선생은 한참 뒤에 돌아왔는데, 조지아 국가대표 유니폼을 사는데 성공했다. 아니 조지아에 무슨 유명한 선수가 있다고 거기까지 갔느냐 했는데, 흐비차가 조지아 사람이었다. 흐비차면 지금 세상에서 제일 축구를 잘한다는 선수인데. 이런 촌동네 나라에서 흐비차같은 대선수가 나오다니 신기하다. 근데 국가대표 팀 자체는 안 유명한지, 큰 경기 출전권이 없는지, 동네 조기축구 유니폼 공급업체 같은 중소 브랜드에서 유니폼을 만들고 있었다. 동네가 온천장에 호텔촌이라 호텔 앞에 술집이 있었는데, 이선생은 이 날부터 조지아 3번째날 밤까지, 나를 방에 혼자 두고 매일 여기가서 술을 마시다 들어와서 잤다.

이선생이 술마시고 돌아와서는 다음 날 여행 예약이 필요하다고 했다. 택시 투어를 할 건데, 므츠헤타 어디, 어디, 어디, 포인트를 돌고 조지아 연대기를 보고 호텔로 돌아오자고 했다. 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예약을 내가 해줬다. 예약이 끝나고는, 오랫만에 볼트 푸드가 되는 곳에 와서, 야식이나 먹자고 했던 것 같다. 다음 날일 수도 있고.. 처음에 이 선생이 안 먹는다길래, 혼자 쇼유라멘 하나 먹었다. 일식집에서 먹는 맛은 아니었는데, 버섯향 많이 나고 구수하고 따뜻하니 좋았다. 근데 이선생은 어디서 그런 못된 버릇을 배웠는지, 지가 안 먹겠다 했으면 끝까지 안 먹어야지, 한 젓가락 달라고 하노. 그래 내 26살 먹고, 한 젓가락 달라는데 못 줄 것도 없다 해서 한 젓가락 줬더니 엄청 많이 먹는다. 국물도 맛있게 먹고. 그래서 내가 아쉬워서 kfc나 시키려고 하니까, 또 이선생 이양반이 애매하게 대답을 한다. 그런식으로 하면 나는 본때를 보여줄 수 밖에 없다. 나는 이런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애매하게 말해 버리면 바로 주문을 시켜버린다. "결정 못하면 따르기나 해라" 이런 거다. 이선생 이양반은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방해만 해놓고는 맛있게 먹더라. 치킨 잘 먹는거 보니까 보기 좋았다.

<므츠헤타>

옛날 수도란다. 오래된 마을.. 오래된 대성당이 있었다. 어제 성당이랑 비슷했다. 예쁜 마을인데, 서유럽이나 남유럽이랑은 다르게 좀 쓸쓸한, 우중충한 멋이 있었다. 여기도 개가 많았는데, 애교 많은 애들은 전부다 주인없는 스트릿 출신일 줄 알고 막 만졌는데, 개가 너무 안기려고 드니까 한참 흐뭇하게 보면 개 주인이 개 이름 불러서 깜짝 놀랐다. 나는 코커 스패니얼을 코카서스패니얼로 잘못 알고 있었는데, 코커스패니얼처럼 생긴 애들은 고향이 다 이쪽 코카서스 산맥 쪽인 줄 알았다. 코커 스패니얼, 원산지 영국임.. 여튼 그 개가 코커 스패니얼이었다. 아님 말구..

므츠헤타가 잘 보이는 수도원도 갔는데, 진짜 시골, 도시 상관없이 개 진짜 많았다. 여긴 말도 있었다. 조지아가 참 상남자 국가 같은 것이 아무 안전 장치가 없었다. 난간 같은 것도 그렇고. 그래서 좋았다. 잘못 까불다 죽는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뭐 위험할 수도 있는데 뭐.. 그래서 여행자 보험 필수로 만들어 놨잖아. 보험금 받으면 되지... 멀리서 보니까 세 물길이 만나는 곳이다. 이런 경우를 이선생은 두물머리라고 하고, 나는 삼랑진이라고 한다. 똑똑한척 하노.

므츠헤타

그리고 조지아 연대기. 뭐 조지아 국민들이 존경하는 수호성인들이, 그 스토리에 맞게 조각 돼 있는데, 그 스토리를 알면 감동적인 곳이고, 몰라도 뭐 볼만한 곳이다. 성경 장면 묘사된 부분도 많고. 성녀 니노 정도는 그래도 알고 가야 할 것 같다. 난 몰라도 된다. 알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 택시 여행을 마치고 숙소에서 좀 쉬다가 와인 박물관 가서, 박물관 영어 해설 투어 + 시음을 했다. 이선생은 박물관 와인 전문가한테 와인 추천 받아서 와인을 4병 샀다. 나는 와인 가격 모르는데, 아주 싸게 샀다고 했다. 와인 박물관 끝나고, 시민이 기증한 유물로 만들어진 무기 박물관에 갔다 왔다. 머스켓, 뭔가 이베리아 시절 썼을 것 같은 중세 칼, 중세 도끼, 전투복, 다 자유롭게 가지고 놀아도 되는데, 요금은 팁 형식으로만 받아서 잘 가지고 놀다가, 사진 몇장 찍고 나왔다. 역시 총이 있으니까 신이 나네.

그 다음은, 어머니 조지아를 보기 위해서 케이블카를 탔던 것 같다. 캐이블카 하차 지점에 아코디언 아저씨가 있었는데, 코리아 이러더니, 애국가랑 아리랑 연주해가지고 이선생의 돈을 빼앗았다. 나는 피도 눈물도 양심도 현금도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 거에 돈 주고 싶지도 않고, 현금 안 들고 다닌다. 어머니 조지아를 대충 보고, 내려오는 길에 오소독스 교회도 잠깐 들렀다가, 비탈을 다 내려 와서 힌칼리 집을 갔다. 힌칼리라고 고기 알갱이 씹는 맛이 있는 육즙이 가득한 두꺼운 큰 사이즈의 만두가 있다. 샤오롱바오랑 다른 거는, 속이 서양인 스타일이라는 거. 막 치즈 들어간 것도 있음. 그리고 간장, 식초가 없어서, 그래도 새콤한 걸 찍어야 겠는지, 사워크림에 찍어먹는 다는 거. 이 집은 식초, 올리브유가 있긴 했다... 그리고 간혹 버터랑 같이 먹는 스타일도 있다......... 먹는 방법은 만두 머리를 잡고, 뒤집는다. 그럼 그릇처럼 뾰족한 머리 부분이 아래로 가게 된다. 그러면 그상태로 즙이 흐르지 않게 입으로 베어 먹는 것이다. 원래 다른 힌칼리 집에 가려고 했는데, 잘 찾아져서 지나가던 행인에게 길을 물었다. 근데 그 행인이 다른 힌칼리집 사장이어서 그 사장님네 힌칼리집으로 납치당했다. 조지아 첫 힌칼리 집에서는, 돼지, 돼지+소, 버섯, 치즈 뭐 이렇게 여러 종류량, 치즈 만두 작은 거 한 접시. 이렇게 시켰다. 조지아쪽은 치즈가 딱 고구마 크러스트에 들어있는 치즈맛이어서, 많은 양을 먹기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한번 더 먹어보고 싶기도 한 것 같다. 고기 힌칼리+식초, 고기 힌칼리+사워크림 조합은 내가 먹었던 만두중에 제일 맛있었던 것 같은데... 반죽이 질긴편이어서 좋았다. 이선생은 와인박물관에서 차차라는 진한 와인 부산물 증류주의 정체에 대해서 알게 됐는데, 그게 먹고 싶었는데 차차도 한잔 시켰다. 내가 향을 맡아 봤는데. 머리가 띵 했다.

나는 잘 먹고 또 혼자 숙소로 돌아갔고, 이선생은 속이 니글니글하다면서 옆에 태국음식점에서 똠얌을 먹고 들어왔다. 그리고 또 술 마시로 갔던가.

<디두베-트빌리시>

나는 아침에 늦게 일어났고, 이선생은 일찍 일어나서 대법원 맞은편 조지아 국립 박물관에 갔다. 우리는 무슨 지하철역에서 만나서 카즈베기로 가는 미니버스가 있는 디두베로 가기로 했다. 지하철역에는 내가 먼저 도착했는데, 거기 근처 까르프에서 이선생 먹으라고 쏘련에서 독립한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도시락라면을 사가지고 기다렸다. 조지아 사람들이 아침으로 잘 먹는다는 이상한 계란 올라간 치즈빵이 있던데 그것도 대충 하나 사가지고 먹으면서 기다렸다. 계란 올라간 치즈빵은 맛 없어서 버렸다. 너무 짰다. 어쨌든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디두베로 향했다. 지하철이 진짜 쏘련 시절 지하철인지 엄청 시끄럽고 많이 흔들렸다. 열차칸 간 이동도 할 수 없는 열차였다. 디두베 역에서 미니버스 차고지에 가는 길에는 지하 육로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도 쏘련 때 만들어졌을라나. 화장실 냄새가 엄청 많이 났다. 차고지 주변은 완전 시장바닥이었다. 완전 가나였다. 추운 가나. 미니버스도 좋은 말로 미니버스고 그냥 가나 트로트로 버스임. 개같았다.

나는 이선생이 버스버스 해가지고 그냥 관광버스인줄 알았다. 차고지에 가보니 미니버스 밖에 없었다. 레이지가 차올랐다. 이선생한테 속은 느낌이었다. 이선생이 버스라고 해서 택시를 안 타기로 한 건데, 미니버스였다. 근데 다른 차들은 차에 행선지 붙어있고, 기사들이 소리치면서 자기 회사 버스를 타라고 하는데 카즈베기는 없었다. 아 설마 다른데 가서 타야하나 싶었는데, 이선생이 어떤 사람한테 물어보고 오더니. 카즈베기로 가는 길이 눈이 많이 와서 통제됐다고 했다. 야호 신난다. 이선생은 많이 실망한 표정이었다. 근데 만약에 우리가 카즈베기에 갔다면. 반드시 다 죽었다. 그런데는 가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근데 이양반이 버스는 없으니까 택시를 불러보자고 한다. 되겠냐고.. 안 될 걸 알고, 열심히 택시를 찾아서 불렀다. 조금 있다가 택시기사한테 전화가 왔다. 안 된다고. 카즈베기에 이선생이 예매했던 호텔 취소하고, 어제 묵었던 숙소를 하루 더 예매했다. 이 예매로 트립닷컴 다이아몬드 회원이 되었다. 야호 신난다. 우리는 잠깐 머리를 식히고 몸은 녹이기 위해 맥도날드에 갔다. 거기서 모든 걸 수습했다.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갔다.

카즈베기를 못 가는 바람에 돈이 좀 남아서, 오늘은 그냥 트빌리시에 있는 고급 브라세리에 가자고 했다. 브라세리에 가는 길에 또 힌칼리가 땡겨서 힌칼리 집에 갔다. 어제보다 조금 더 크고, 더 고급 등급의 힌칼리집이었다. 이제 대충 각 종류별 어떤 맛이 나는 줄 알았으니까 막 새로운 맛이 궁금하지는 않아서 기본 힌칼리 3개 시켰고, 이선생은 5개 시키면 특제 소스를 준다고 해서 5개를 시켰다. 이선생은 차차를 또 시켰다. 추워서 그런가 자꾸 차차를 시켰다. 어제보다 반죽이 더 맛있었다. 만두 머리부분은 만두 모든 주름이 한 곳에 모여서 가장 질긴 부분이고, 식으면 딱딱해지기도 하는데, 이 집은 만두 머리 끝부분도 다른 부분 피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질김을 가지고 있었다. 이선생은 특제소스를 받았는데, 나도 살짝 먹어보니 특별하지는 않았다.

힌칼리다 먹고 나왔는데, 아직도 해가 안 져서, 브라세리로 가기 전, 트빌리시 놀이공원으로 가는 푸니쿨라를 타고 놀이공원을 한번 들렀다 가기로 했다. 푸니쿨라가 출발하는 동네는 부촌인 것 같았는데, 그 바로 전 동네까지는 사람은 없고, 개만 있는 곳이었다. 가는 길에 비가 내렸는데, 마침 그 때 사납게 생긴 개가 따라 붙어서 약간 긴장을 했다. 생긴 건 사나워도 쓰다듬어 주니까 좋아는 하는 것 같았다. 사진 찍는 건 싫어했던 것 같다. 푸니쿨라 맨 앞에 탔는데, 바이올린 소년이 탔다. 오. 올라가면서 바이올린 연주가 있나 싶었는데, 그냥 바이올린을 손에 들고 다니는 소년이었다. 놀이공원에는 소련시절 지어진 것같은 느낌의 아마도 tv탑.. 그리고 어트랙션, 식당이 있었다. 전망대 야경이 멋있었다. 성삼위일체 성당이 가장 중앙에서 돋보였고, 그걸 중심으로 해서 건물들이 퍼져 있었다. 밥 먹으러 갔다.

놀이공원

아주 비싸보이는 브라세리 앞에 도착했다. 들어가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진짜 단골들만 오는지, 그렇게 이른 시간은 아닌데도 손님이 없었다. 그리고 식당에 비해, 내 차림세가 너무 드럽고 단정하지 못했다. 슬리퍼도 신고 있었고. 아 몰랑. 그냥 들어갔다. 여성 종업원 분이 너무 예쁘셨다. 그런 분이 자리에 초도 붙여주시고 메뉴 설명도 해주셨다. 이선생님은 이 종업원분이랑 꼭 결혼하러 올거라고 다짐했다. 인정. 진짜. 그많금 예쁘셨다. 다른 여성 종업원 분도 계셨는데 그분도 진짜 만만치 않게 예뻤다. 그래서 이선생한테 이 종업원분한테 정중히 전화번호를 적어서 건내주라고 했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했던 것 같다. 메뉴에 페페에카쵸가 있었다. "와. 로마에서도 한 번도 못 봤는데." 싶어서 바로 페페에카쵸를 시켰다. 시키니까. 예쁜 종업원 누님이, 나이는 훨씬 어려보이셨지만, "맵기는 어느정도". 하셨다. 그래서 내가, "야, 조지아, 도시락라면 좋아하는 친구들아. 니들이 매워봤자 얼마나 맵겠냐." 싶어서. "수퍼핫 플리즈" 이렇게 말해 버렸다. 첫 두 입 정도까지 딱 좋았는데 중간부터는 매워서, 매운 맛 뚫는 느끼한 페코리노치즈 맛하고 통증밖에 안 남았다.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에 이선생 자고 있을 때 나와서 한 번 더 먹었다. 다시왔을때는 페페에카쵸랑, 감브리 먹었다. 걍 둘다 별로였다. 메인으로는 이선생은 등심, 김선생은 안심을 시켰다. 이선생은 미디엄레어로 시켰다. 미디엄레어라는 게 진짜 이상하지 않나?? 레어-미디엄-웰던 밖에 없는데, 미디엄레어나 미디엄 웰던은 뭔가 억지로 끼워만든 느낌. 그래서 뭔가 숙련된 셰프들도 정확히 맞춰서 내기는 어려울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내꺼는 레어로 시켰다. 이선생은 등심 스테이크가 나오니까 아니나 다를까 원하는 굽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나는 레어니까 그냥 레어하게 주니까 좋았다.

이선생이 이 브라세리에 오는데 동의한 가장 큰 이유는 이 집에 다양한 조지아 와인이 있다는 리뷰를 들었기 때문이다. 진짜 와인이 통유리로 둘러싸인 방 안에 예쁘게 진열이 돼있었다. 이선생은 또 와인을 한 병 시켰다. 내가 메인 다 먹어 갈 때쯤, 이선생은 와인이 남았다면서, chatgpt한테 메뉴판을 찍어서 어떤 메뉴가 자기가 시킨 음식과 잘 어울리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gpt가 버섯튀김과 와사비소스라는 스타터 메뉴를 추천해 줬다. 아아. 다른 스타터 메뉴를 시켰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버섯튀김을 많이 남겼다. 맛은 있었는데..

이날 이선생은 카즈베기에 가지 못한 게 엄청 아쉬웠는지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1시가 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쯤 되니까 이 놈이 술마시고 강에 빠지지 않았는지, 얼어죽지는 않았는지, 카드키가 없어서 호텔로 못 돌아오진 않는지 걱정이 되었다. 이선생 어머니가 나를 수사하라고 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서 살의가 없었음을 증명할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 "생존 여부?" 이런 문자를 보냈다. 한 1시 반 쯤 이선생이 정신이 나가가지고 돌아왔다. 코피를 흘리면서 돌아왔다. 그러더니 어떤 사람이 자기가 아시리아인의 후예이고 조로아스터교라고 했다고 하면서 화를 냈다. 아시리아인들은 다른 민족과 동화되어서 사라졌고, 어떻게 조로아스터 같은 말 같지도 않은 걸 믿을 수 있냐고 화를 냈다. 그러고 프리팔레스타인이 어쩌고 저쩌고..... 자기는 태어나서 한 번도 코피를 흘려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이번 여행을 와서 벌써 두번째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 내가 결제를 했나?? 아아.. 이러면서 다시 나갔다. 얼마 있다가 이번에는 호텔 종업원의 부축을 받아 아까보다 더 많은 피를 흘리면서 들어왔다. 피가 이불에 떨어졌다. 입에 들어간 피는 침이랑 같이 아무 바닥에나 뱉았는데, 내 이불에도 뱉았다. 그래서 다음날은 혼자 다시 그 브라세리에 나 혼자 간 것이다. 정말 카쵸에 페페라는 것이 맛있는 음식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다음날>

항상 조식을 먹을 때, 창문을 통해서 흰색 새끼냥이가 인간들이 밥먹는 모습을 봤다. 그래서 2박 이후부터 조식에 나오는 살루미를 뽀려서 종이컵에 담아 고양이랑 노는데 미끼로 썼다. 검은색, 흰색 이렇게 두 마리가 있었는데, 검은색은 항상 밥먹는 걸 보러 오는 친구는 아니었다. 이선생이 술 먹는 동안 나는 고양이들 불러가지고 많이 놀았다. 고양이가 인간에 손길에 취해있다가 갑자기 야생의 기운이 팍 올라와서 사람 공격하는 거, 살면서 여기서 처음 경험했다. 꼭 한번 당해보고 싶었는데.. 그만큼 고양이가 날 편하게 생각했다는 거니까.. 고양이가 옷을 엉망으로 만들때까지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브라세리로 갔다.

이건 그리스 길냥이임

이선생이 정신을 차리고 숙소뒤에 트빌리시 수목원?, 식물원? 산책도 하고 폭포도 보러 갔다. 그냥 그랬다.

그 다음은 유황온천 목욕이 8시에 예약이 돼 있었다. 나는 이미 브라세리에서 많이 먹어서 식사는 패스하고 숙소에서 잤고, 이선생은 전에 내가 사먹었던 그 계란 올라간 치즈빵 그걸 먹었다고 한다. 나는 맛없었는데, 이선생은 맛있었다고 한다. 상당히 만족했다고 한다. 나는 우리나라로 치면 김밥천국 같은데서 사람들이 막 점심먹으러 밀려들어오는 타이밍에 이름만 같은 아무 종류나 시켰고, 이선생은 여행책자에 나오는 아주 모범적인 음식을 식당에서 주문을 한 것이기 때문에 나랑은 평가가 완전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여튼 숙소 바로 앞 유황온천을 갔다.

우리나라나 일본은 공중목욕탕 문화인데, 여기는 방, 사우나, 탕이 갖추어진 방을 가족끼리 일정 시간동안 빌리는 시스템이어서 비쌌다. 1시간 목욕탕 빌리는데 10만원 정도 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 목욕탕보다 청소상태도 안 좋고 샤워기도 안 좋고, 샴푸, 스킨, 비누, 수건, 드라이기, 로션도 없었으면서... 그리고 유황온천이라 그런지 계란 노란자 냄새가 너무 심해. 계란 냄새가 날때 사실, 유황 온천이니까 은 장신구는 빼고 물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야 했는데, 다 차고 들어가서 검게 녹이 올랐다. '옛날에 이 목욕탕은 목욕탕이었을까? 세례당 이었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들어가 있었다. 이선생이랑 "옛날에 농심호텔 목욕탕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고향이야기를 했다. 목욕탕에 친구랑만 들어오니까 좋았던 점은 목욕탕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걸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난 목욕탕에서 소리를 질러보고 싶었다. 목욕탕의 울림이 좋았어서.. 여튼 소원 성취하니 기분이 좋았다. 목욕탕 자체에서 마음에 들었던 거는, 목욕탕이 깊었다는 점. 앉으면 목만나옴.

목욕탕을 나와서 이선생은 또 술집에 찾아간 듯 하다. 그동안 만났던 술집 친구들과 인사를 한 건가. 나는 또 고양이랑 놀고 있었는데, 이선생 볼일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마주쳤다. 그래서 올라가서 짐을 쌌다.

<트빌리시 공항-카타르-서울>

카타르 항공 직원이 내 짐이 무겁다고 체크인 못 해주겠다고 했다. 아니 에어 익스프레스같은 한국에 살면 이름도 모를 허접 항공사도 그냥 보내주는데, 축구팀 스폰서로 어그로란 어그로는 다 끌어놓고 안 된다는 게 좀 어이가 없었지만, 또 규칙은 규칙이니까... 근데 그때 레이지가 엄청 차올라서, 내가 짐 하나도 포기 안 하고 한국으로 다 들고 가는 거 보여주고 싶었다. 캐리어에 있는 옷을 몇 개 꺼내 입고, 대부분 배낭에 박아 넣었다. 뭐 딱 그정도만 하니까 널널하게 체크인 되던데.. 배낭은 엄청 무거워 졌지만. 아. 이선생이 와인 두 병을 내 가방에 안 넣었으면 고생이 덜 했을 것이다. 카타르 항공을 저주했다.

보안 검색대 줄이 엄청 길고, 줄이 아주 느린 속도로 줄어들었다. 내가 검색대 앞에 서서 보니까 직원들이 엄청 불친절하고, 불성실하게 근무하고 있었다. 자기들이 잘못 안내를 해서 느려지는 걸, 사람들이 안내를 안 따른다면서 짜증을 내고 있었다. 레이지가 차올랐지만, 집에 못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참았다. 그리고 또 레이지가 차오르는 부분은 공항물가였다. 공항안에 웬디스가 있어서, 전에 못 먹어봐서 제일 시그니처만 버거 하나만 먹으려고 했는데 2만원이 넘었다. 공항을 저주했다.

비행기에 타니 비행기는 괜찮았다. HBO맥스는 안 나와서 밴드오브 브라더스는 못 봤는데, finding nemo가 있어서 오랫만에 재미있게 봤다. "상어밥 우하하"는 6살때 봐도 26살때 봐도 재밌네. 일본 애니메 영화 Look Back도 봤다. 영화 후반부에, 두 친구가 갈라설 때, 만화를 먼저 그리기 시작했던 주인공 친구가 어씨스트 친구에게 가스라이팅성 폭언을 해서 어씨스트 친구의 대학 등록 만류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 볼때는, 주인공이 진심으로 하는 말 아닌 거 알면서도 소름끼쳤다. 이후에, 주인공이 그 일을 사과 했다고 생각하고, 다음 장면들을 보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 애니가 된다. 감동 애니 맞음. 굳.

카타르에 가보니 예쁜 조지아 누님들은 다 없어졌다. 화교들이 많이 보였다. 카타르 공항이 월드컵을 해서 그런지 원래 기름부자 나라여서 그런지, 지리적 이점 때문에 공항이 커진 것인지, 공항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공항 구경을 오래오래 하고 싶었는데, 마침 서울로 가는 비행기가 지연돼서 행복했다. 거기 있는 명품관들 누추한 행색으로 다 들쑤시고 다녔다. 몽클레, 지미추, 오메가, 디올, 루이비통, 버버리 처음엔 이런데를 갔는데, 너무 행색이 누추해서 좀 그랬다. 그런데 하나 둘 씩 들어가서 직원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냥 또 그 어색함이 재밌어서 더 쎈데서 더 무리한 요구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에르메스 가서 "장갑 있는 거 다 보여주세요." 이러고 몽블랑 들어가서 "이 볼팬하고, 이 만년필, 이 종이에다가 시필해보고 싶어요." 했다. 근데 얼마나 친절하신지, 장갑도 다 꺼내서 설명해 주시고, 시필도 마음껏 했다. 시필을 마음껏 하고 몽블랑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역시 몽블랑은 나하고 맞지 않는다. 필감이나 전반적인 획이 나오는 모습이 확실히 일본쪽이 나랑 맞다. 옛날부터 세일러가 제일 좋긴 했다. 볼펜은 파이롯트 주시업을 쓰지만.. 아참 여기서는 kfc를 먹었는데, 트위스터 맛 없더라. 트위스터가 항상 궁금했는데, 더이상 볼일 없게되어 좋다.

누추한 행색을 하고 명품관을 돌아다니다 보니, 나도 옷이 사고싶어졌다. 월드컵을 몇년 전에 해서 그런가 그나마 지금 형편에 물건을 사는 게 가능한 매장이 피파 공식 매장, 아디다스, 푸마 이렇게 세 군데가 있었다. 푸마에서 놀라운 물건을 발견했다. 50%할인중인 진품 가나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 가나에서 1년동안 살면서 한 번도 못 봤다. 가나에서 제일 큰 푸마 매장에서도... 홈 진품에는 등과 목 사이에 god save our homeland가 써져있고, 유니폼 전체적으로 아딘크라 심볼이 무늬로 새겨져 있다. 하지만 알빠노다. 이런 팀 유니폼을 돈 주고 왜 사노..다. 피파 매장을 가보니까 세계 월드컵 포스터가 옷에 그려진 후드, 맨투맨, 반팔티셔츠를 팔고 있었다. 나는 82년 스페인 월드컵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서 한번 입어봤는데, 마침 이선생이 어울린다고 해서 16만원 주고 샀다. 이선생은 2002 한일 월드컵 반팔을 샀던가?

이걸 사고 다시 탑승구쪽으로 갔는데 원래도 사람이 없었고, 아직도 사람이 없었다. 이선생은 뭔가 이상해 공항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항공사 직원이 한국인 얼굴을 알아보고 "인천??" 이래가지고 그때서야 비행기가 막 출발하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근데 보통 "서울??" 이러지 않나? 인천 마음에 안 드는데?? 어쨌든 막 정신없이 뛰어서 비행기에 뒤늦게 탓다? 우리가 민폐인가? 우리 때문에 출발이 늦어지지 않았나? 우리 스스로 진단해 봤는데 확실히 민폐까지는 절대 아니었고, 민폐가 되기 거의 직전에 우리가 탔다는 결론이 났다. 그러니까, 우리는 공항 직원의 도움을 조금 받긴 했지만, 절대 민폐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우리 자리는 셋셋셋 자리 중 창가 쪽 두 자리였는데, 우리 자리가 아닌 곳에 한국 여자가 하나 타 있었다. 이 여자가 대뜸 "여기가 자리세요?" 이랬다. 1년만에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이 한국말로 말을 걸어줬다. 신났다. "네" 이러니까 이양반이 "아.. 자리 없다고 했는데.."하고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니 뭔데... 뭐 체크인 할 때 "엽자리 사람 없는대로 해주세요"하고 받은 표였겠지... 근데 씨.. 지가 비즈니스를 처 타던가.. 왜 민간인한테 짜증을 내냐고.

비행기는 엄청 좋았다. 스타링크, 220v 콘센트가 있었다. 근데 우연히 한국 영화 코너에서 아이브 월드투어 실황 영화를 봤다. 처음에 올나잇으로 인트로가 쫙 깔리면서, 인터뷰 하나 나오고, 첫곡으로 아이엠 딱 "다른 문을 열어. 따라 갈 필요는 없어~" 나오는데 소름이 쫙 돋았다. 그대로 2시간짜리 다 보고, 밥먹고, 자고, 한번 더 봤다. 난가을좋아함

정신을 차려보니 서울에 도착했다. 이선생과 헤어졌다. 부산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이선생은 술을 마셔선지 살면서 처음 코피가 났기 때문인지 뇌를 검사하러 병원으로 바로 가셨다. 나는 가족들이 가는 부산으로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서 서울역으로 가는 공항철도를 탔다. 아 오랫만에 듣는 일본말, 오랜만에 보는 일본인 무리다. 아잉 너무 좋잖아잉. 여행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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