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한다는 다른 의미
예전에 나는 엄마를 참 좋아했다. 엄마가 내게서 멀어지면 곧 불안해졌고, 곧 눈물을 터트린 경우도 허다했다.
엄마가 나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만져주던 손길, 엄마가 말할 때마다 느낄 수 있었던 밀크커피 향기, 잠이 들기 전에 엄마 등 뒤에서 맡던 체취. 이 모든 것은 잠시 나를 수많은 생각들로 벗어나게 해 주었고, 날 한없이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가끔 앉아있는 엄마 위에 올라타 엄마 다리 위에 나를 올려놓을 때가 많았다. 그러면 엄마는 자연스럽게 내 등 뒤와 다리를 팔로 감싸 안았고, 나는 곧 온몸을 늘어트린 편안한 자세로 나의 모든 것을 엄마에게 기댈 수 있었다. 그 자세를 취할 때면 내 귀는 엄마 가슴가에 안착되었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미세한 진동과 함께 가슴에서 흘러나왔다. 그때 목소리가 입이 아닌 가슴에서 나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가만히 귀를 엄마의 가슴에 대고 엄마를 올려다보면, 엄마는 여전히 커피 향을 내리며 다른 사람과 웃고 떠들기를 반복했다. 엄마에게 항상 흘러나오던 그 만의 유일한 향기와 함께. 가끔은 엄마의 가슴가의 코를 깊게 누른 채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기도 했다. 그러다 그 품 안에서 졸음이 사르르 몰려와 난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나에게 소중해서 그랬을까. 나는 포옹이 좋았다. 그 사람 냄새를 맡으며, 그 사람 온기에 둘러싸여 가슴에서 나오는 그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둥둥 울리는 목소리와 잘잘한 진동을 귀로, 눈으로 느끼고 싶었다. 그 사람 안에 온전히 나라는 존재가 부유하고 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그 시절의 나는 내가 사람의 체취를 좋아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잠에 들기 전 엄마 품 속에서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베개에 군데군데 배어있는 익숙하고 편한 냄새에 코를 묻으면서, 아빠의 어깨너머로 흘러오는 냄새가 엄마와 아주 많이 비슷하다고 느끼면서, 동그란 남동생의 뒤통수에 입을 맞추면서 맡을 수 있던 그들만의 냄새가 좋았다. 뜨끈한 장판의 열기를 가득 머금은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는 이불, 누운 머리 모양 그대로 가운데가 깊게 파인 베개, 집에서만 입고 다니는 부들거리는 수면잠옷 등 그것들에 습관적으로 코를 묻으면서 나는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도 이런 냄새가 나는 것인지 궁금했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나에게 좋은 냄새는 남들에게도 좋을 냄새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어느 날, 친구집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처음 맡아보는 쿰쿰이 묵은 냄새가 풍겨왔다. 낯선 이불의 냄새. 오래된 누군가의 집에서 날 것만 같은 냄새였다. 그 냄새는 친구의 이불, 친구의 베개, 친구의 옷에서도 나는 냄새였다. 또 다른 친구의 집에서도 그런 냄새가 났다. 또 다른 이불의 냄새. 친구의 옷에서 나던 그 냄새. 여러 친구의 집에 전전하면서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모든 사람들이 안고 자는 이불의 냄새가 다 다르다는 사실과 우리 모두 각자만의 고유한 향을 풍기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는 그들이 가진 냄새는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상상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들이 어떤 섬유유연제를 사용하는지, 어느 곳에 있다가 왔는지, 어떤 이불 냄새를 맡으며 잠에 드는지, 좋아하는 향은 무엇인지 상상하고 추측하게 되었다. 체취는 곧 그들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매개체가 되었다.
그러나 간혹 상대방의 체취가 부담스러워지는 경우가 있었다. 오래된 옷장에서 몇 년간 박아두었다가 꺼내본 옷들에서 나는 냄새처럼 체취가 진한 사람이 있다. 그런 냄새는 자신의 존재를 상대방을 벽으로 밀어세우면서 설명하기 성급해 보인다. 진한 향수에 잠시 머리가 취한 것처럼 어지러워지면 잠시 숨을 참고 거리를 조금 널찍히 두었다. 덕분에 나 자신이 모든 사람의 체취를 사랑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렸을 때부터 항상 나와 존재했던 우리 집의 고유한 향기만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조용히 직감할 수 있었다.
창문을 잘 열지 않은 집에서도 유독 그들의 체취가 진하게 풍겨왔다. 밖으로 돌아다니지 못하고 안에서만 부유하던 냄새는 집 안 곳곳에 자신들의 존재를 짙게 남겼다. 마치 동물들이 특정 부분에 영역표시를 하는 것처럼 냄새들도 자신들의 체취를 벽지, 바닥, 그릇, 천장 등에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곧장 베란다로 달려가 창문을 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로 코가 냄새에 천천히 적응될 수 있도록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는 날이면, 창문부터 열고 환기를 시키는 습관이 생겼다. 바깥바람을 불러와 친구들에게 낯설 수 있는 우리 집 냄새를 데리고 갈 수 있도록 온 창문을 열고 청소를 했다. 나처럼 누군가의 체취보다 바깥공기를 머금은 바람 냄새가 더 편할 수 있는 누군가를 위해서.
어느 날 엄마와 포옹을 하면 상대방의 향을 맡을 수 있어 좋다는 이야기를 하다 엄마가 나에게 해주신 말씀이 있다.
"그 사람 냄새까지 좋다는 건, 정말 사랑해서야."
"그럼 엄마도 아빠 냄새 맡는 거 좋아?"
"그럼 좋지.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니까."
어렸을 때부터 당연히 함께하여 익숙해져 버린 우리 집 냄새만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냄새를 만날 수 있을까? 엄마 가슴팍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던 유년시절처럼 누군가에게 그런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한 사람의 특유한 향기로부터 이어지는 마음의 안정, 상대방의 존재에 있어서 느끼는 감사함, 마음이 힘이 드는 날에는 그리워질 것 같은 그런 냄새. "네 냄새가 맡고 싶어." 이것은 어쩌면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지 않을까.
나는 가끔씩 미래에 만날 나의 아이에 대해서도 상상을 한다. 열 달을 배 속에서 작은 씨앗부터 어엿한 사람의 형상으로 자라다 세상 밖으로 첫 숨을 내뱉는 순간에 그 아이는 나의 품 안에 들어올 것이다. 나의 냄새를 맡고, 엄마인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며 낯선 환경이 주는 두려움을 조금씩 해소할 것이다. 앞으로 그 아이가 낯선 세상에 자꾸만 부딫쳐야 되는 과정에서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 그리운 감정이 피어날 때 우리들이 만들어낸 냄새를 찾았으면 좋겠다. 감정이 파도처럼 들쑥날쑥 몰아치는 밤에면 그 냄새를 맡으며 안정을 조금씩 되찾았으면 좋겠다. 내 아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럴 수 있도록 그들에게 편한 냄새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