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이 전부는 아니니까
호르몬을 초월하는 인간성에 대하여
복직을 한 지 세 달이 다 되어 간다.
한 두 주 전만 해도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야말로 파김치가 되어 한 시간 정도는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있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퇴근을 해서 집안일을 해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적응이 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작년, 병가를 내고
나는 많은 시간을 가만히 보냈다.
남들이 재밌다고 하는
영화나 드라마, 릴스와 쇼츠를
하염없이 틀어놓고 가끔 실없이 웃긴 했지만
도파민은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우울이 나오려는 도파민을 막은 것일 수도 있겠으나, 실상은 나의 도파민은 그런 데서 많이 분비되진 않는 것이었다.
다들 도파민중독이라는 말을 유행처럼 하며
영상 시청을 줄여라,
디지털 디톡스를 해야 한다 말했는데,
나는 영상에도 휴대폰에도 전혀 중독되지 않은 로봇 같은 꼴이었다.
복직을 하고 단 한 가지의 기쁨을 꼽으라면
단연 수업이다.
수업에서 나의 도파민은
화려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매번 그런 수업을 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과 함께 '앎'과 '삶'을 이야기하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복직을 하며 보기 싫은 사람들을 보게 되더라도 하루 4시간의 수업이 있어 기뻤다.
본능적으로 적응에 도움이 된 것은
수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잘 한 수업 하나는
피곤을 싹쓸이해버릴 만큼의
도파민을 분비하는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사흘, 나흘을 밤에 잠을 많이 설치기 시작했다.
불면의 밤을 보내길 몇 개월이었기에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다시 우울감이 몰려오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잠 못 드는 시간 속에 내 생각들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깊숙한 곳에서 수면 위로 끄집어내졌다.
생각이 과잉한 채로 아침을 맞이하면
어김없이 편두통이 따라왔다.
타이레놀 한 알을 입에 털어 넣고 수업을 하러 계단을 오른다.
오늘은 모둠협동수업 첫 시간으로
아이들과 모둠을 짜고 협동게임을 하는 날이었다.
모둠수업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모둠원끼리 아이스브레이킹을 하는 시간이 필요해 협동게임을 한다.
또, 협동게임을 하기 전에는 모둠원끼리의 소속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모둠이름 정하기 활동을 한다.
매번 주제가 다른 수업이지만
모둠협동학습이라는 형식에
필연으로 따라오는 절차와 같은 것들이다.
아이들에게 모둠이름을 정할 시간을 주고,
어떤 식으로 정하면 되는지 설명한다.
"얘들아, 앞으로 한 달 동안 모둠수업을 할 때 쓸 이름이야. 모둠의 특성이나 비전이 잘 드러나도록 모둠 이름을 짜면 좋아. 또, 국어를 사랑하는 마음을 잘 드러내주면 좋겠다!"
십여분 뒤, 모둠별로 모둠이름과 그렇게 정한 이유를 발표시켰는데, 모둠이름이 형편없다.
이름은 그렇다고 해도
이유가 '그냥'이 대부분이었다.
또는
'생각하기 싫어서', '그냥 그 글자가 보여서'가 이유가 되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왜 생각하기 싫어? 모둠이름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알려줬는데, 이렇게 대충 하는 이유가 뭐야?"
아이들의 답은 놀라웠다.
"생각하기 귀찮아요."
"성적에 안 들어가잖아요."
"다 안 하는데 저만 생각하고 끌고 가는 게 손해 보는 것 같아요."
평소 순하고, 열심이었던 아이들이
하는 말이라 더 놀랐다.
성적에 들어가지 않는 모든 것들은
이미 아이들에게 귀.찮.은. 것이 되어버린 걸까.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될까 염려하며 한마디를 했다.
- 사실, 얘들아. 우린 그 귀찮고, 성적에 들어가지 않는 것들에서 더 배우는 게 많단다.
마치 어린 왕자의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와
같은 말이었다.
아이들이 그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당장 성적에 중요한 것,
당장 나에게 도파민을 뿜어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도,
천천히 들여다보고, 깊이 있게 사고하는
그런 호르몬을 초월하는 인간성이
너희에게 있다고 더 말하고 싶었다.
보상을 주어야만 침을 흘리며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라,
우리는 '보상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라고
그것이 인간과 동물이 다른 이유라고,
그것이 인간성의 증명이라고
더 말하고 싶었다.
당장의 보상과 쾌락으로만
나의 행동을 선택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아이들에게만 하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나라도, 나부터라도 그렇게 해야 함을
다시 깨닫는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
그것이 나만의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걸.
그리고 그러한 호르몬을 넘어선
선의들이 모여 이루는 평화로움과 안락함이 있다는 걸.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누군가도 그런 인간성을 증명할 수 있게 된다는 걸.
다시 되뇐다.
도파민이, 호르몬이 전부는 아니니까.
나는 다시,
아이들이 그런 것들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장을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