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 나와 너 그 어디엔가
알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은, 가장 가까이 있는 듯 가장 멀리 있는 것 같은 ‘나’라는 존재. 내가 아는 나와 내가 모르는 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나, 그 사이 어딘가에 서성이고 있을 나를 발견해 나가는 글을 쓰고 싶었다.
분명 같은 길인데, 어느 날은 분주히 발걸음을 내딛어도 한숨 나게 까마득한 여정이다가, 다른 날은 나도 모르는 사이 도착하는 길이 있다. 같은 길을 걸었지만, 길 위에서 만난 계절의 풍경과 나를 품은 나의 마음이 달라져서일까? 아니면 함께 걸었던 동행과의 대화에 빠져 길에는 안중조차 주지 않은 까닭일까?
양치를 하고 입을 헹구면서 수돗물이 흐르는데도 수도꼭지를 그대로 틀어 놓곤 한다. 물을 입안에 넣어 가글하고 뱉는 시간은 아주 잠시이고, 빈 컵에 물을 채우기 위해 수도꼭지를 틀어야 하는 시간은 매우 길게 느껴진다. 설거지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양치질이나 설거지를 할 때면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유독 거슬린다. 내가 양치질과 설거지를 할 때 흐르는 시간과는 다른 속도로 흐른다.
같은 길을 걷고도 다르게 느끼는 나, 같은 행동을 하는 다른 사람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나의 모습을 일상에서 종종 마주한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거리만큼이나, 같은 상황 앞에서 다르게 흐르는 나의 마음을 낯설게 발견하고 들여다본다. 내 마음속 시계의 속도를 바꾸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의 떨림 이후에도 내게는 오랜 시간 보고도 질리지 않는 마음이 있다.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채, 여전히 옷장 한 켠을 차지한 20년도 더 된 옷과 가방들. 24년 가까이 의리와 정, 그 사이 어딘가에서 표류하는 인연. 20년 가까이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었던 회사. 그리고 첫눈에 들어온 스타를 13년 이상 덕질하며 응원하는 마음까지. 지루함과 꾸준함 그 어딘가에 있을 내 마음에게 물어본다. 나를 움직이고 나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힘껏 달리다가 점점 느려지는 속도에도 한결같이 흐르는 내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잘 모른 채, 무작정 시작하는 나를 향한 탐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쓸수록 선명해진다’는 앨리슨 존스의 글처럼, 나를 향한 탐험의 여정에서 만나게 될 익숙하면서도 낯선 내 모습이 조금씩 더 또렷하게 그려지길 기대한다.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다른 사람이 읽고 싶은 글, 그 간극 어딘가에 만나게 될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반갑게 가 닿기를 바라며 브런치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