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시계와 눈
매일 걷는 익숙한 길 위에서 다른 길을 마주하곤 한다. 집에서 지하철까지 네이버 지도기준 11분, 눈 감고도 훤히 보이는 길이지만, 조바심에 재촉하는 발걸음이 무거운 날이면 한없이 더디고 끝없이 먼 길이 된다. 반가운 길동무를 만나 함께 걸어갈 때면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금세 종착지에 닿아 있다.
출근 시간이 아슬아슬해 허겁지겁 집을 나선 날이면 발걸음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선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갈 수 있을지, 왜 이리 더디기만 한 건지 조급해진 감각은 온통 시간과 거리에 집중한다. 11분 거리를 숨가쁘게 내달려 8분, 혹은 7분까지도 줄였지만, 몸의 시계로는 한 시간이라도 흐른 듯 길은 더 늘어진 것만 같다.
어떤 날의 발걸음은 나의 의식을 차지하지 못한다. 반가운 친구나 연인, 가족과 동행하는 길 위에서 나누는 대화에 빠져들면, 짧지 않은 거리일지라도,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같은 길이지만, 어떤 마음으로 걷는지가 멀고도 가까운 길을 만든다. 길의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그 위를 걷는 내 마음의 상태가 그 거리와 시간을 재고 있었다. 삶의 여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조바심 내며 억지로 내딛는 발걸음은 한없이 막막하게 느껴지고, 현재에 충실히 몰입하며 걷다 보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고 어느 덧 원했던 곳 가까이 다가가 있다.
며칠 전 부서 워크샵으로 나선 여행 길에서 국립현대미술관 ‘테라로사’ 커피숍에 들렀다. 창밖에 형형색색으로 물든 가을 단풍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평화로운 오후를 만끽했다. 햇살이 쏟아지는 파란 하늘 아래 눈길이 닿는 삼청동 곳곳마다 빨강, 주황, 노랑 물감으로 채색한 화려한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들이 어우러진 장관이었다. 그 모습을 연신 카메라에 담으며 잠시 일상의 무게를 잊은 듯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강아지와 산책을 나섰다. 여느 날처럼 근처 공원으로 익숙한 발길이 닿았다. 햇살아래 반짝이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잎들과 그 아래 수북이 쌓인 나뭇잎들이 가을 정취를 물씬 뿜어내고 있었다. 엊그제 여행에서 만났던 감동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의 모습은 굳이 먼 여행지를 찾지 않더라도 가까이에서도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내 마음이 발견하고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매일 보는 일상 속에 어느새 당연해지고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다시 발견하고 놀랍게 감탄하는 유연한 마음을 찾고 싶다. 재촉하는 발걸음을 멈추어 하늘을 한번 올려다볼 수 있는 여유 말이다. 불안함에 사로잡혀 길만 뚫어져라 바라보면 길가에 빼곡하게 줄을 선 나무들에 눈길조차 주지 못한다.
혼자 나서는 길이 외롭지 않게 함께 하는 누군가를 찾아 함께 걸어 가야겠다.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온통 길 위에 매몰된 감각을 풀어낼 수 있을 테니. 마음을 나누며 쫓기는 부담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으리라.
주변에 숨어있는, 아니 잊고 있던 소박한 아름다움을 찾아내 마음껏 감탄하는 어릴 적 감성을 되살리고 싶다.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호기심 가득한 열린 마음으로 다가올 인생 여정을 좀 더 폭넓고 다채롭게 그려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