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해진 세상 쓰지 않는 뇌와 몸이 노화행 급행열차에서 내리려면,,,
"죄송해요... 지하철을 잘못 내렸나 봐요.
여유 있게 일찍 나왔는데, 늦을 것 같아요..."
머리가 하얘졌다. 지난번 행사가 끝나고 대방역에서 용산행 급행을 탔던 때가 생각났다. 종로3가역 부근였던 다음 미팅이 늦어 용산행 급행을 탔었다. 용산까지 빨리 도착했다 싶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열차는 나를 다시 대방역으로 데려다 놨다. 안 그래도 늦었는데 멘붕이었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날 약속 장소까지 땀 뻘뻘 헐레벌떡 뛰어갔는데 끝나기 20분 전이었다. 마무리 중이었던 첫 트레바리 모임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의 시선엔 놀람과 의아함이 묻어 있었고 나는 무안함의 눈빛으로 화답했다.
대방역에서 다른 약속이 생겼다. 출근 시간 카카오 택시가 잡히질 않았다. 예측 소요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지만, 갈아타고 많이 걸어야 하는 지하철을 피하고 싶어 택시가 잡힐 때까지 버텼다. 아, 늦겠다 싶을 때쯤 택시가 잡혔다. 다행이라며 지하철로 뛰던 발걸음을 집 앞 탑승위치로 돌렸다. 웬걸 택시 도착이 더뎠다. 그냥 지하철 탈걸 그랬나 만감이 교차하던 그때 택시가 들어섰다. 온몸을 택시 안으로 구겨 잽싸게 들어갔다. 역시나 올림픽대로 타는 길은 전쟁터였다. 올림픽대로에서도 차창을 내다보며 몇 번을 혼자 발을 굴렀다. 쪼그라든 심장을 부여잡고 내렸지만 젠장 5분 늦었다.
언젠가는 카카오 택시로 이동 중였다. 핸드폰을 한참 보다 고개를 들어보니 대방역 부근이었다. 평소 이동하던 경로는 아니었다. 의아해하던 순간 택시가 역 앞에 멈췄다. 대방역은 맞는데 평소 가던 낡은 1호선의 느낌이 아녔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새로 생긴 신림선 부근의 대방역였다. 문제는 신림선에서 1호선 대방역사로 이동하는 방법을 몰랐다. 엘베도 타보고 층계도 내려가고 물어도 봤지만 계속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택시를 잡았고 결국 또 늦었다.
대방역의 좌절이 반복되자 다음 약속에선 맘먹고 일찍 나섰다. 헤매더라도 늦지 않게 30분 이상 여유 있게 말이다. 이번엔 지하철을 타리라. 늦은 것도 아닌데 걸음을 재촉해 9호선에 올라탔다. 한산한 열차에 자리 잡자 여유로움에 기분이 들떴다. 드디어 노량진! 대방역까지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되는데 1호선으로 갈아타는 플랫폼이 꽤 많았다. 가장 먼저 보인 이정표에 동인천 급행이 보였다. 노선도를 보니 방향이 맞았다. 층계를 올라 플랫폼에서 기다리는데 가장 먼저 열차가 들어셨다. 역시나 운 좋은 날였다. 열차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마침 회의시간이 임박해 이어폰으로 전화회의에 참석한 채 9:30경 열차에서 내렸다. 드디어 30분 전 대방역 도착!!!
지하철 개찰구를 나와 7번 출구를 찾았다. 회의를 들으며 찾다 보니 7번 출구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낡은 1호선 역사가 아녔다. 지난번 헤맨 신림선인 건지 두리번거렸다. 이상했다. 왜 롯데백화점 입구가 여기 있는 거지? 불길한 예감이 다시 스친다. 아뿔싸,,, 영등포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동인천 급행열차는 노랑진의 나를 영등포로 데려다 놨던 거다. 다시 개표를 하고 지하철로 들어갔다. 이번엔 플랫폼이 여러 개는 아녔다. 이제 방향만이 중요하다. 대방역 방향 플랫폼으로 내려섰다. 기차가 바로 도착했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번 역은 신도림, 신도림역이란다. 신길, 대방 두 구역만 가면 되는데 거꾸로 탄 모양이다. 내가 본 대방역은 무엇이었을까? 귀신에 씐 것만 같았다. 황급히 내렸고 무작정 개찰구를 나와 출구로 나갔다. 다시 택시를 불렀다. 나보단 택시 아저씨를 다시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2분이 걸린다는 택시는 5분도 더 넘게 걸려 도착했다. 기사님을 재촉했지만, 길은 막혔고 18분이 걸린다던 내비게이션은 약속을 저버렸다. 시계를 보니 10시 30분... 30분 일찍 나와 30분이나 늦었다. 기다리던 지인이 매서운 겨울바람에 덜덜 떨며 택시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재작년 세상을 떠나신 엄마 생각이 났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시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셨다. 하지만 내 기억 속 젊은 엄마는 지혜롭고 못하는 게 없으셨다. 존경하는 사람을 물으면 엄마가 먼저 떠올랐다. 그런 엄마가 언제부턴가 지방에 사시는 친척댁에 가시는 것이 서툴러지셨다. 점차 언니들의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갔고 혼자 이동하는 길이 두려워지셨다. 늙어가시던 그 모습이 당시 엄마 나이보다 20년도 더 젊은 오늘의 내게 투영됐다. 서글퍼졌다.
언제부턴가 위치를 잘 알거나 주차장이 있다면 차로 이동하거나 편리한 카카오 택시를 주로 이용한다. 길을 잘 아는 곳이 많지 않다 보니 약속 장소가 지하철 바로 부근인 경우 외엔 택시가 내 주요 이동 수단으로 등극했다. 그 사이 지하철 노선은 몇 곱절 더 복잡해졌다. 5호선까지는 익숙했는데, 이후는 낯선 세계가 되어 갔다. 낯선 만큼 두려워졌다.
가끔 운전을 하지만 주로 내비게이션에 의존한다. 고속도로에선 바짝 긴장한다. 갈림길에서 쫄다보면 엉뚱한 길로 들어선 경우가 많다. 서울 시내에서도 네비가 갑자기 예측과 달리 변할 때면 그마저도 따라가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차에 지도책이 사라졌다. 내비게이션은 제2의 길 찾기 두뇌가 됐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학창 시절 즐겨 듣던 노래들은 전주만 나와도 바로 가사가 떠오른다. 자다가 일어나도 따라 할 수 있다. 요즘은 덕질하는 가수의 노래도 콘서트나 페스티벌에서 따라 하다 가사를 틀리기 일쑤다. 설거지하다 흥얼거리는 노래 중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할 수 있는 노래가 거의 없다. 노래를 외워서 할 일도 없고, 친절하게 가사가 나오는 기계가 있는데 굳이 외울 필요가 있나.
휴대폰이 나오면서 전화번호도 외울 필요가 없어졌다. 어느 순간 친구는 물론 가족 전화번호도 긴가민가다. 대신 핸드폰에 저장해 놓고 이름만 찾는다. 스마트폰 세상이 열리면서 Siri에게 말만 해도 척척 전화를 걸어준다. 단, 전화기를 집에 두고 온 날엔 난감해진다. 마치 뇌를 집에 놓고 온 것 마냥.
영어에도 지각변동이 생겼다. 스피킹 할 땐 얼음이 되지만 쓰기는 시간을 갖고 공을 들일 수 있으니 상대적으로 스트레스가 적었다. 반복되는 이메일 업무로 영작은 일상이 된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몇 년 전 혜성처럼 나타난 AI가 과외 선생 내지는 비서를 자처하며 일상에 비집고 들어오면서부터는 작문 걱정이 없어졌다. 문제는 인터넷이 안될 때다. 비행기에서 작업할 때나 회사 네트워크에 장애가 생겼을 때처럼 의존하던 인공지능 비서가 사라졌을 때 멘붕이 된다. 내가 쓴 표현이 맞는 걸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대로 이멜 전송 버톤을 누르기 두렵다.
반백 년을 살며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은 휴대폰에 수백 수천 명의 전화번호도, 내비게이션도, 다양한 음악 채널과 노래방도, 영어 사전도, 만능 척척박사 AI도 상주하는 시대가 됐다. 내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다. 굳이 외우지 않아도 언제든 필요한 정보를 대령해 준다. 길도 척척, 노래도 척척, 영어도 척척, 일정 관리도 척척해 준다. 전용 비서를 둔 것처럼 편리하다. 뇌의 저장 공간을 떼어내 외장 하드처럼 스마트폰에 넣어두었으니 필요할 때 물어보면 된다. 잃어버리거나 고장 나지만 않는다면...
문제는 쓰지 않는 나의 뇌다. 많은 정보와 재미가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되는 세상이니 뇌는 쉬고 스마트폰은 열일한다. 전화번호와 노래, 길 찾기는 스마트폰의 몫이다. 많은 정보를 전처럼 기억하며 떠올리고 자주 써먹지 않으니 그 신경세포간 연결될 필요가 없어졌다. 자주 쓰지 않으니 연결이 끊기고 기억은 희미해졌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선 백지처럼 당황한다.
여러 온라인 플랫폼들은 오프라인 세상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나와 연결해 준다. 음식과 식재료, 생활 물품을 주문하면 새벽에 문 앞으로 친절하게 배송된다. 온갖 메뉴도 앱으로 신속히 배달시켜 먹을 수 있다. 옷도 차도 집도 사람도 온라인으로 만나고 고를 수 있다. 온라인 상담과 교육도 가능하다. 집안 살림의 고장이나 문제도 스마트폰 하나로 사람을 불러 집에서 해결한다. 몸을 움직일 필요도 대폭 줄었다.
편리한 삶은 퇴화하는 뇌와 몸을 만든다. 우리 뇌는 몸의 움직임을 위해 존재한다고 했던가? 편리한 스마트폰과 차 안 내비게이션, 진화하는 인공지능의 전천후 서비스, 편리한 온라인 플랫폼들에 길들여지면서 생활은 한층 더 편해졌고 삶의 디폴트값이 됐다. 기술의 발전과 빠른 변화 속에서 애써 뇌를 쓰고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노화를 향한 고속도로에 몸을 싣게 된다.
죽음을 향한 급행열차에서 내리려면 불편함을 애써 감수해야 한다. 외부 약속이 있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카카오 택시를 열기보다 이제 지하철을 타야겠다. 1호선과 신림역이 교차하는 대방역에 다시 가야겠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러 플랫폼을 하나하나 찬찬히 다녀 보면서 어떤 방향행 열차가 정차하는지, 한 정거장만 이동하려면 어떤 플랫폼 층계를 올라야 하는지 살펴보련다. 평소 자주 가지 않던 길로도 애써 다녀봐야겠다. 때론 되돌아오기도 하고 더 먼 길로 돌아가 보기도 하면서. 해외에 나가면 익숙하지 않은 길에 주의를 기울이듯이.
더 많이 걷고 뛰면서 낯선 곳을 찾아 경험하며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야겠다. 새로운 사람을 더 많이 만나고 낯선 자극을 받으며 물리적인 연결이 주는 힘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기억을 더 자주 떠올려 신경세포간 탄탄하게 연결되는 큰길을 터야겠다. 그리고 다음 미팅엔 늦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