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
트레바리 글쓰기 모임에서 만났던 정문정 작가님의 신간 소식에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을 했다. 당일 저녁 배송이 됐다. 박스를 열어보니 웬걸 커다란 그림책이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결재하다 버튼을 잘못 누를 걸까? 아님 어른들을 위한 그림동화책을 내신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스친 것도 잠시, 책 띠지에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이라는 소아정신과 교수의 추천이 눈길을 끌었다.
조카아이들에게 선물해야지 하며 책을 펼쳤다. 나쁜 일만 가득했던 최악의 날이라며 속상해하는 아이의 이야기였다. 새 옷에 흙이 묻었고, 인형놀이 순서를 기다리던 자신을 친구가 밀어버렸고, 선생님이 내신 퀴즈 중 알면서도 실수했던 한 문제 때문에 다 맞추지 못해 결국 펑펑 울어버렸다. 그때 시계 요정이 나타나 그날 하루를 되돌려 보여준다. 옷에 묻은 흙은 선생님이 깨끗하게 털어주셨고, 자신을 밀었던 친구는 사과하며 손을 내밀었다. 또, 몸으로 말해요 퀴즈는 다 맞추었던 장면들이 펼쳐졌다. 그 순간 좋았던 일들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부정적 감정에 휘둘렸던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다음 날 아이는 비슷한 상황에서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지키는 연습이 시작된다.
이런 무해한 아이의 시간들이 쌓여 몸도 마음도 훌쩍 자라 어느덧 중년이 된 지금의 나는 어떤가? 나쁜 일들로 인한 부정적 감정 앞에서 능숙하게 행복했던 순간들도 떠올리며 입체적으로 하루를 받아들이는 모범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어린이 동화에 어른의 모습들이 오버랩된다. 동화 속 아이에게 속상한 일이었다면 우리의 현실에는 스케일이 커진 슬픔과 고통이 감당할 수 없는 산사태와 쓰나미처럼 몰려오기도 한다. 어른이 된다고 속상한 감정에 압도되는 불행한 날을 저절로 잘 살아낼 리 없다. 어른들에게도 시계 요정이 필요하다.
나의 40대 후반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을 걷는 시간들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여기저기 지뢰가 터지는 것 같았다. 일 중독자로 3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건강 검진 결과를 받았다. 암 선고에 망연자실했던 순간,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공황 장애였다. 하필이면 코로나 시기 사교육 1번지 대치동의 낯선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전학을 했던 아이들은 코로나 직격탄을 맞고 마음이 무너졌다. 한 아이는 재수 시절 마지막 6개월간 하루 종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고 빛도 소리도 냄새도 너무 견디기 힘들다며 제대로 앉거나 설 수도 없는 고통을 겪었지만, 수많은 병원 의사들은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병이 진단조차 되지 않았다. 공부를 좋아하고 일등을 놓치지 않던 아이는 준비 없이 전학 간 대치동 한복판에서 코로나를 맞으며 공부를 포기했다. 무기력한 나달들이 이어졌다. 버팀목처럼 늘 곁에서 중년의 막내딸을 아이처럼 한결같이 돌봐주시던 엄마마저 등이 보낸 불편한 신호를 무심히 흘려보내다 뒤늦게 진단받은 병마와 싸우며 참아내기 힘든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나셨다. 연신 나쁜 일들을 겪고 바닥에 누워 펑펑 울었던 동화 속 주인공 아이처럼 오십이 넘은 나는 밤마다 일어나 가슴을 치며 울었다. 릴레이 경기는 바통 터치를 하고 새로운 주자가 뛰어들지만, 수년간 내 삶에 예고 없이 찾아온 불행들은 떠날 기미없이 계속 똬리를 틀고 앉아 나를 옥죄고 있었다.
시간이란 묘약은 코로나와 함께 우리 가족에게 불어 닦친 폭풍우와 지진, 활화산 같은 불행의 파고도 점차 잦아들게 했다. 불행은 어느새 익숙해진 얼굴로 내 일상을 관통해 지나가고 있다. 그 사이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책을 읽고 몸과 마음에 대한 공부를 하며 나를 돌아봤다. 어떤 꿈을 꾸고 무얼 좋아하는지, 어떨 때 행복하고 어떨 때 불편한지, 내 몸은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내가 나를 잘 알지 못했다. 내 몸과 마음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연습이 시작됐다. 지나치게 애쓰고 긴장하는 습관도 내려놓고 지금의 나를 충분히 느끼고 감사하는 습관을 찾기 시작했다.
재수 시절 매일 침대에 누워 보내던 딸은 수능 날 기적처럼 아침에 일어나 수능 시험을 치렀다. 그렇게 아이에게 다시 아침이란 시간이 시작됐고, 논술 고사도 볼 수 있었다. 12월 중순의 어느 날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흥분된 목소리로 합격 소식을 전했다. 침대를 떠날 수 없었던 아이는 그렇게 대학생이 됐고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다. 공부를 놓아버렸던 아이는 다시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스스로 챙기며 한층 더 마음이 단단해졌다. 건강한 식재료를 엄마에게 부탁하고 아침마다 건강한 식사를 스스로 챙겨 먹는다. 매일 일기를 쓰고 생각들을 기록하며 꾸준히 운동한다.
시계 요정의 도움은 없었지만, 돌아보니 나 역시 탈없이 수술과 치료를 받고 5년의 강을 무사히 건넜다. 회사에서는 더 큰 책임을 맡아 승진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도 나도 매사 감사한 마음이 커졌다. 자신을 좀 더 좋아하게 됐다. 사람들을 향한 좀 더 깊어진 시선과 마음도 덤으로 따라왔다. 불행한 사건들과 함께 일상에 스며들어 있던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 반가운 변화를 발견할 여유가 생겼다.
"나는 믿게 되었다. 불행은 마치 사유재산처럼 차곡차곡 쌓여 결국엔 행운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결핍은 언제나, 또 다른 나를 자라게 한다는 것을."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에 들었다고 느껴질 만큼 힘들면 지금 당신은 빛나는 서사의 조건에 딱 들어맞는 순간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그 폭풍 같은 시간을 무사히 통과하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이야기’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당신만의 빛이 되어 줄 것이다."
그래서인가 보다. 이 문장들에 꽂힌 이유가.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고 지나간 아니 지나고 있는 시련의 시간들을 담담하게 글로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