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발견하고 알아가며 단단하게 세워가는 여정
최근 몇 년간 단골 새해 결심 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하지만, 현실은 일기나 간단한 메모와 기록을 남기는 것조차 매년 실패를 거듭했다. 작년 말부터는 전문가의 손길에 기대기로 했다. 친구 소개로 엄지혜 작가님의 글쓰기 모임과 인연을 맺었다. 브런치 글쓰기로 형식이 바뀐 새해 모임에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첫 모임을 앞두고 은근 기대가 됐다.
업무 직후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온몸에 땀나도록 바삐 걸어 도착했지만 회사와 한 시간 이상 거리를 헤매기까지 하면서 오늘도 지각이다. 늦게 들어와서는 급한 화장실까지 다녀와 더 늦고 말았다. 다행히 참가자 소개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핸드폰이 사라졌다. 초행길을 길 찾기에 의존하느라 손에 들고 다녔는데,,,
한 사람 한 사람 소개가 이어졌지만, 머릿속으론 온통 핸드폰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마음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장실에 가 봤다. 휴… 거기 있었다. 첫 과제가 공유됐다. 아뿔싸! 수업에 참여한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느낌과 후기에 대한 거였다.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글쓰기에 대한 다른 접근과 다양한 소재를 발견하고 거기서 느낀 소감을 글로 쓰는 것이다. 첫 수업이라 그저 가벼운 소개 시간일 거라 넘겨짚었던 안도감이 대략 난감으로 바뀐 순간였다.
기억을 더듬어 간신히 두 사람의 소개가 떠올랐다. 자신을 다정한 사람으로 소개한 분이 있었다. 다정하다는 것이 상대에게 다정했다고 내가 느끼는 것인지 상대가 내가 다정하다고 느끼는 것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 역시 상대에게 친절하게 배려를 하려고는 하지만, 과연 상대가 나를 다정하다고 떠올릴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다정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마음에는 어떤 확신이 채워져 있을까?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나 상대에 닿은 마음에 흔들리기보다 내가 보냈던 다정함에 깃든 진심과 의도에 만족하는 담담함이 아닐까? 다른 분은 자신의 최애를 자기 자신이라고 답했다.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중심에는 얼마나 단단한 자존감이 자리 잡고 있는 걸까?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글을 쓰고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공감 가는 대목이 있었다. 자기 검열이 심해서 글을 발행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나를 돌아봤다. 다른 소셜 채널보다는 부담이 적을 거라 믿었던 인스타를 시작하며 한두 줄의 글을 수십 번을 고쳐 쓰고서도 결국 올리지 못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이후에도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글로 표현하지 못해 차마 글을 올리지 못했다는 고백도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적확한 언어로 표현해 내려는 완벽주의는 현업 작가의 고백과도 닮아 있었다. 인스타 일상 게시물조차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고심해 올렸던 나와 달리 외부의 평가나 판단보다는 자신이 세운 기준과 원칙에 입각해 글을 쓰고 공유하려는 프로의 근성이 느껴졌다.
나는 왜 글을 쓰려하는가? 돌아보니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초등 저학년 때 한참 책 읽기에 빠졌던 둘째가 어느 날 내가 쓴 책에 대해 물었다. 책들로 빼곡한 도서관이 아이가 접한 세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시절, 세상의 수많은 책 중 엄마가 쓴 책이 단 한 권도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아이 눈에 역력했던 실망감이 내게는 적잖은 당혹감으로 다가왔었다. 이후 내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 글쓰기는 언젠가 해야 할 숙제처럼 잊지 않고 적어내는 to-do list가 됐다.
회사의 업무를 벗어나 글을 쓴다는 건 쉽사리 시작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지난해 처음 경험한 글쓰기 모임에서 접한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이란 책은 내게 쓰기를 시작할 용기를 꺼내 줬다. 자전적 에세이 쓰기에 대한 책이었는데, 글쓰기의 힘에 대해 일깨웠다. 자신의 관점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상대가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 치료제라는 설명은 잠들었던 용기를 깨워 펜을 들게 했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셀프 토크의 힘은 김주환 교수의 책, ‘내면 소통’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내 안에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스토리텔링은 스스로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자신에 대한 글쓰기는 자신의 스토리텔링 습관을 인지하는 첫 단추가 될 것이었다. 글로 드러난 내가 내게 했던 말을 돌아보는 것이야 말로 내면 소통을 이끌어 내는 의식이자 마음 근력을 키우며 셀프 토크의 습관을 바꾸는 현명한 개입이 될 것이라 믿는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알아가며 단단하게 세워가는 여정에서 언젠가는 나의 이름을 담은 책이라는 선물도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