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마음을 잇는 공감의 힘
“어머, 핸드폰이 없네. 큰 일이다. 월요일 해외 출장인데, 대체 어디다 둔 걸까? 출장 가서 급한 업무와 연락은 어떻게 하지? 찾을 수 있을까? 못 찾으면 새로 사서 개통할 시간이 있을까?”
수요일 밤 11시 20분, 머릿속이 하얘졌다. 둘째 딸아이가 내 핸드폰에 전화해 보겠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감감무소식이다. 밖에서 들고 온 가방들과 옷가지 등에 이어 차에까지 가서 여기저기 다 뒤진 나는 다급해진 마음으로 둘째에게 전화했냐며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아무 말이 없어 급한 일을 먼저 하고 있다고 아이가 담담하게 답했다. 그 순간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마가 비상 상황인데 도와주지 않고 어쩜 그리 매정하냐며 쏘아붙였다.
잠시 후 큰 딸이 귀가했다. 심란한 엄마 표정을 보더니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교보문고 잠실점에 갔다가 책은 못 사고 마트와 핫트랙스에서 이것저것 잔뜩 사며 핸드폰을 어디 두고 온 것 같다고 했다. 자신도 잠실에서 오는 길인데 전화하지 그랬냐며 내 핸드폰 번호로 연신 전화를 걸며 말했다. “엄마 걱정 마세요. 이제 제가 있잖아요. 찾는 거 도와드릴게요” 그 말이 뭐라고 지옥 같던 마음에 숨이 쉬어졌다.
큰 아이가 내 번호로 전화했을 때 한 번은 통화 중이었다고 했다. 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군가가 내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일 테니까. 돌려줄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에 받았을 텐데, 비밀번호를 풀고 다른 전화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심란하고 어두워진 내 마음을 읽었는지 큰 아이는 내일 아침 다시 찾아보자며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틀어주며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신기하게 마음이 조금은 말랑해졌다. 핸드폰을 찾은 것도 아니고, 딸의 말 한마디였을 뿐인데, 그게 뭐라고 힘이 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저 말 한마디였을 뿐인데. 그리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시 차에 갔다. 운전석과 짐을 두었던 옆 좌석이 빈 것을 재확인 후 포기하며 차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바닥에 뭔가 반짝였다. 핸드폰이 거기 있었다. 어젯밤 가방과 짐을 들고나가며 떨어뜨린 모양이다.
폰을 열어보니 부재중 발신자 목록에 큰 딸뿐 아니라 둘째 이름도 보였다. 둘 다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잃어버린 건 난데 묵묵히 전화한 둘째에게 무심하고 야속하다며 짜증을 냈고, 핸드폰을 찾아준 것도 아닌데 다정하고 따뜻한 큰 딸의 말은 내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며칠 전 친구를 만나고 들어와 안아달라며 울던 둘째 아이 생각이 났다. 자신이 너무 한심한 것 같고 지금 죽어도 아쉽지 않을 것 같다며 절망의 언어를 토해내는 아이의 말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시험불안증으로 원하는 대학을 들어가지 못한 아이는 힘들어하곤 했다. 어떤 말로 위로해도 아이는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눈물을 흘렸다. 이런저런 말을 건네던 나는 결국 “엄마 회사 가야 하니 이젠 그만하고 내일을 위해 자자”라고 말했다. 아이는 엄마와 얘기하기 싫다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때 나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했던가. 돌아보니 나의 말은 온통 T의 언어였다. AI가 더 잘하는 것들을 가르치는 대학은 앞으로 의미가 없다, 세상을 사는 수만 가지 방법 중 대학은 한 가지일 뿐이다, 인생은 이제 시작이니 앞으로 남은 더 먼 길을 이제 새로 그려가면 된다… 감정이 폭발해 논리적 생각이 들어갈 구석이 없던 아이에게 난 그저 내가 좋다고 생각한 답만 가르치려 급급했다. 아이가 듣고 싶었던 건 속상했던 그 마음을 토닥이고 귀 기울여주는 공감의 말이었을 텐데…
늦었지만 출장에서 돌아가면 둘째에게 말해야겠다.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망연자실했던 내게 큰 딸이 해줬던 것처럼.
“걱정하지 마. 엄마가 너 옆에 있잖아. 힘들 때 이렇게 엄마에게 기대. 엄마가 안아줄게. 엄마는 너의 전부를 사랑해. 잘할 때뿐 아니라 네가 힘든 모든 순간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