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망진'* 동거생활 - 지속가능한 관계의 기술
*요망지다 - '야무지고 당차다'라는 의미의 제주어. 제주섬 밖(육지) 사람들은 '요망지다'를 '요망하다'로 알아듣고 무척 당황해하곤 한다. 하지만 제주섬에서는 '요망지다'는 말은 찬사나 다름없다.
국거리 소고기 한 줌과 무 반 토막으로 소고기뭇국을 끓였다. 저녁 먹을 시간이 가까워, 비누에게 뭇국 끓였는데 같이 먹자는 카톡을 보냈다. 한참이나 지나 당도한 답이, 이미 자기들 저녁거리는 세팅이 되어 있으니 내일 아침에 먹겠단다. 오케이~그럼 내일 먹자꾸나. 식으면 냉장고에 넣을 양으로 아일랜드에 두고 들어왔다.
여섯 시 조금 넘어 카톡이 울렸다.
“뭇국 제가 먹어도 될까요?”
냄비 사진까지 곁들인 루나의 메시지였다. 퇴근하고 보니 막상 먹을 게 마땅치 않았나 보다. “파는 나중에 넣은 거니까 한소끔 끓여서 먹어.” 답을 보냈다. 참말로 루나는 먹을 복이 있다. 나와 비누가 입도 대지 않은 뭇국이 루나의 따뜻한 저녁 한 끼가 되다니. 이토록 친절한 언니들을 만났으니 루나는 복도 많아~~ 흐흐.
우리가 같이 살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같이 산다며? 밥은 누가 해?”
“식사 당번 정하기 어렵지 않아?”
“식재료비는 어떻게 나눠?”
같이 산다 하니 매번 밥도 같이 먹거나, 단체급식이라도 하는 줄 안다.
“여기가 학교 급식실이냐?식사 당번은 왜 정해? 각자 먹고 싶을 때 알아서 차려 먹는 거지.”
그렇다. 우리 방식은 ‘각자도생 + 먹을 복 있는 자는 얻어먹는다’이다. 정해진 당번도, 식사 시간도 없다. 휴일 늦잠 자고 싶은 사람은 끼니를 거른 채 마음껏 자도 된다. 출근하지 않는 사람이 출근하는 사람과의 아침 공동식사를 위해 억지로 단잠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냉장고는 각자의 것이 있다. 당연히 식재료도 각자 구입한다.
물론 떨어진 재료를 빌리거나 꾸기도 하고, 자투리를 희사받기도 한다. 같은 걸로 갚는 게 원칙이겠지만, 맛있는 요리를 나눠 먹는 것으로 대신할 때도 많다. 혼자 살 때는 상상할 수 없던 재미다. 내가 충분히 가진 재료를 조금 나누어주는 대가로 근사한 반찬 한 접시를 얻는 재미란!
그릇이나 요리 도구는 공동으로 쓴다. 내게는 그릇에 관심이 많던 예전에 사 모은 것도, 선물 받은 것도 많다. 다섯 명이 쓰고도 남는다. 조리 도구는 주로 비누의 것들인데, 동종의 내 것이 있어도 자꾸 비누의 도구로 손이 간다. 내 것보다 훨씬 신박한 것들이니, 어쩔 수 없다.
사실 수와 루나는 집에서 요리를 거의 안 한다. 수는 제주에 오면서부터 부지런히 요리해 먹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었고, 루나는 서울에서처럼 과일 위주의 간단한 식사를 유지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이야기했다. 수는 그야말로 원대한 꿈을 한 번 품어본 데에 의의가 있었을 뿐. 두 사람 다 1층 주방을 ‘돌(石) 보듯’ 하는 중이다. 물론, 나나 비누가 차린 식탁에 함께 앉게 되는 날엔 그들 역시 미안함과 고마움을 설거지로 갚는다. 뽀득뽀득하게.
각자의 식단에 따라 각자 편한 시간, 편한 방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먹고사는 방식이다. 단, 명절이나 Y의 기일, 내 아이들이 올 때는 가끔 이 큰언니의 ‘집밥 잔치’가 펼쳐지기도 한다. 다들 대식가가 아니어서 재료는 조금만 더 준비하면 되고, 시간이 나는 식구들이 요리를 돕는다.
루나는 전 부치기에 부심이 있고, 수는 살롱 테이블 세팅과 정리를 도맡는다. 비누는 뭐든 ‘척척박사’ 베테랑이라 내가 계획한 요리 대부분을 함께 만든다. 그런 날,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는 마루 몫. 마루는 종종 고기를 사 와 마당에서 구워 주는데, 그때도 설거지는 마루가 도맡는다.
며칠 뒤, 주말 아침. 나가보니 아일랜드 위에 단정하게 포장된 빵이 놓여 있었다. 루나가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함께 사다 둔 것. ‘국 주고 빵 받기’, 나쁘지 않다. 과일을 즐겨 먹는 루나가 택배로 과일을 받는 날이면 식구들에게도 맛보기로 나눠준다. 수는 업무상 알게 된 맛집이나 베이커리에서 종종 ‘서프라이즈’로 한 턱 쏘기도 한다. 꼭 직접 요리를 해서 나눠 먹어야 맛이 아니다. 자기 깜냥과 방식으로 나누어 먹어야 오래갈 수 있다.
미로헌에도 회식이 있다. 매월 월례회의 날,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 한다. 새해맞이를 겸한 송년회식, 그리고 네 명의 생일이 몰려 있는 8월 생일 회식은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메뉴를 먹는다. 식사비용은 n분의 1.
식도락가인 마루는 부부끼리만 외식하면 메뉴가 한정되지만, 여러 명이 함께 살면 다양한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고 했다. 나는 특별히 기대하지 않았지만, 살아보니 이만큼 ‘합리적 시스템’도 없다.
나, 수, 루나 모두 혼자 살 때는 배달 음식을 시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보통 1인분 이상은 시켜야 하는데, 결국 남기게 될 게 뻔한 노릇이니까. 내 폰에는 아직도 배달 어플이 안 깔려 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함께 살고부터 각자 하나씩 메뉴를 고르기만 해도 다섯 가지 요리를 푸짐하게 나눠 먹을 수 있다. 한 술 더 떠 한 두 가지 요리를 더 추가해도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이것이 동거의 또 다른 매력이다. 입주 초기에 마루는, 그동안의 단조로운 식단에서 벗어난 기쁨으로 회식비를 대신 내곤 했을 정도였다.
만약 공동 메뉴와 식사 당번을 정해야 했다면? 평일, 주말, 아침, 저녁, 공휴일까지 따져야 하고, 각자의 식성에 취향, 습관까지 고려해야 했을 것이다. 아, 상상만 해도 피곤하다. 누군가는 독박을 쓰거나, 상대적으로 시간이 있는 사람이 희생하게 될 수도 있다. 나로선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다고 여겼을 것이다.
매번 확인하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동거를 선택할 사람들이 아니다. 동거가 독거보다 불편해진다면, 굳이 함께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가 타인과의 동거를 결심한 이유는 간단했다. 자유로움은 독거와 비슷하고, 안전성과 재미와 편의성은 독거보다 훨씬 나을 것.
그리고 그것은 틀리지 않았다. 밥 먹는 일에 강제도 없고 책임도 없다는 것. 그 단순한 사실이 우리가 동거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다.
우리는 자유로운 간헐적 식구(食口)들,
간헐적 공동 식탁 위의 식도락가들이다.
미로헌 식구들이랑 외식하러 나갈 때가 난 제일 좋아. 마루 차에 다섯 명이 우르르 타고, 어디 갈까 뭐 먹을까 수다 떨면서 메뉴 고르고, 이것저것 나눠 먹으면서 떠드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
혼자 살 땐 꿈도 못 꾸던 일이거든. 가끔 여유가 생겨도, 딱히 목적 없으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갔어. 외출이란 건 정말 큰맘 먹고 해야 하는 일이었어.
근데 미로헌에선 누가 “갈래?” 하면, 내 몸은 이미 현관 앞으로… 스르르 유체이탈하듯 움직이고는 어느새 마루 차 안에 다 같이 앉아 있는 거야. ㅋㅋㅋ
난 원래 음식을 많이 먹지도 않고, 잘 즐기는 편도 아닌데, 이상하게 같이 먹으러 가는 건 너무 좋아! 앞으로도 쭉~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운전은 마루에게, 수다는 우리에게~~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