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은 싫어, 분담은 디테일이지!

'요망진'* 동거생활 - 지속가능한 관계의 기술

by 조선희
*요망지다 - '야무지고 당차다'라는 의미의 제주어. 제주섬 밖(육지) 사람들은 '요망지다'를 '요망하다'로 알아듣고 무척 당황해하곤 한다. 하나 제주셤에서 '요망자디'는 말은 찬사나 다름없다.


우리는 매달 정해진 날짜에 월례회의를 연다. 지난 한 달의 미로헌살이를 점검하고, 다가올 한 달의 계획을 세운다. 그에 따라 역할도 다시 나눈다. 예기치 못한 일정이 생기면, 미리 사정을 공유하고 회의 날짜를 조정한다.


이 얘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다.

“헐, 집에서 월례회의를 한다고요?”

“회사도 지겨운데, 집에서도 회의를요?”

“그 정도면 집이 아니라 회사잖아요!”

회의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눈치다.


사실 나도 회의를 좋아하는 축은 아니다. ‘1일 2회의’는 일도 아니었던 과거 직장생활을 떠올리면 얼마든지 이해된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 월례회의는 ‘미로헌 셰어라이프’를 경영하기 위한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회의라는 말씀이다.


회의의 핵심은 두 가지, 점검과 분담이다. 각자 맡은 역할의 경과를 공유하고, 집 전체의 시설과 생활을 함께 살핀다. 그걸 바탕으로 주의할 점, 개선할 점, 금지할 점 등을 논의한다. 새로운 일이 생기면 역할도 새로 분담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 비누 - 태양광 발전량과 공과금 내역 공유, 전월 대비 특이사항 분석, 새로 발생한 문제 상황 체크, 공동물

품 구입

• 마루 - 재무 담당(공과금, 세금, 보험 등 총괄), 수입·지출 관련 논의 주도

• 써니 - 하자 보수 및 시공사 연락, 불편사항 접수 및 경과 공유, 경비 및 보안 담당

• 수 - 방역 업체 섭외 및 현장 입회, 일시적 생활 문제 1차 대응

• 루나 - 회의록 작성, 가전제품 A/S 접수 등 온라인 업무 담당


각자의 역할은 단순한 ‘분배’가 아니라, 생활 리듬과 성향을 고려한 맞춤형 분담이다. 각자 맡은 영역의 안건에 대해 주도적으로 논의하고, 전월 또는 예년과 비교해 특이 사항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 원인과 대책은 무엇인지, 함께 짚는다.


우리의 원칙은 단순하다. ‘셰어시스템’이다. 모두가 공평하게 역할을 맡되,
누군가 사정이 생기면 가능한 사람이 대신한다.
유연한 협력은 OK! 무작정 떠넘기기나 남의 사정 무시는 No!

그리고 이 모든 점검과 분담의 목적은 단 하나. ‘독박 방지’다. 누구 한 사람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공동체는 오래가지 못한다. 사회생활에서 ‘아이디어 낸 사람이 책임까지 다 뒤집어쓴’ 경험, 해보지 않았던가. 입만 보태는 사람, 심지어 대놓고 숟가락 얹는 무임승차자도 수도 없이 봐왔다. 이런 일이 이 작은 공동체 안에서 반복된다면? 그 끝은 뻔하다. 파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와 쓰레기 처리 당번 정하기는 공동 살림의 기본이다. 삶의 질은 결국 ‘자잘한 것’에서 갈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동주거에서는 자잘한 일일수록 더 중요한 규칙이 된다. 우리는 초기부터 청소 구역과 담당자를 나눴고,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해 왔다. 청소 구역은 내부와 외부로 나뉜다.


[내부 청소]

1층: 비누와 써니 - 주방, 팬트리, 세탁실, 현관 포함

2층: 수와 루나 - 살롱, 공용화장실, 공동창고 포함

[외부 청소]

2층 베란다. 속마당, 바깥마당, 외부 조경 구역 포함 쓰레기 줍기, 잡초 뽑기, 나무 전정, 비료 주기 등 월례회의나 별도 일정에 맞춰 전원 출동


쓰레기 처리도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는 각자 원하는 요일을 맡아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쓰레기, 재활용품을 처리한다. 종량제 봉투는 하루 만에 꽉 차지 않기 때문에 매일 버릴 필요는 없다. 재활용 물품도 배출일과 배출량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정한다.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건 단연, 음식물 쓰레기다.


한 사람이 살든, 한 가족이 살든, 결국 사람 사는 일은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우리는 ‘남’이다. 명확한 원칙과 약속이 없으면, 사소한 일도 분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게 내 일인지 몰랐네.” “왜 나만 치워야 해?” 이런 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디테일한 분담은 필수다.


셰어라이프는 ‘관계’다. 누구 하나 억울하게 독박을 쓰게 되면 마음이 상하고, 공동체의 신뢰도 금이 간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나눈다. 그것이 셰어라이프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첫걸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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