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이 넘었어도,
'날마다 자란다.'

에필로그

by 조선희


요즘 자주 거울을 들여다본다. 아, 나도 나이 들었구나 싶은 얼굴이 거기 있다. 예전엔 그래도 동안이라는 말을 꽤 들었는데, 이제는 다 부질없는 ‘아, 옛날이여’다. 피부의 모공은 더 뚜렷해졌고, 쌍꺼풀은 점점 가늘어지다 못해 흐릿해졌으며, 입술은 생기를 잃은 지 오래다. 예전의 얼굴은 사라지고, 낯선 얼굴이 자리를 잡는 중이다.


사람은 44세와 60세에 노화의 변곡점을 겪는다는데, 나는 60세에 암 진단까지 받았으니 남들보다 훨씬 호되게 늙어버린 셈이다. 아직 내 얼굴이 낯설긴 해도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산다는 건 결국 늙어가는 일이다. 특별하지 않은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인 세월만큼 얼굴도 몸도 정신도 나이 들어간다.


‘노인’은 세월만 지나도 되지만, ‘어른’은 선택하고, 다짐하고, 실천해야 겨우 닿을 수 있는 자리다. 나이만으로 존경받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저절로 ‘어른’이 되는 법은 없다. 어른이란 책임과 신뢰를 동반한 존재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 사회에는 ‘어른’ 대신 ‘어르신’만 남았다. ‘어르신’이라는 호칭은 그 자체가 비호감이다. 무기력하고 수동적이며 사회적 배려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존재로서의 노인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놓은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존경심이나 존중보다는 형식적 예우, 숨길 수 없는 거리감이 전부다.


우리 사회의 노인 기준선인 65세를 코앞에 둔 지금, 나는 늙었다는 이유로 특별 대우를 '바라는' 사람이 되기보다, 늙었어도 여전히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사람이고 싶다. 생판 남들과의 동거를 선택한 것도 그래서다. 나이를 앞세워 편하게, 내 마음대로 산다면 그것은 필시 ‘노인’이 되는 지름길이다. 나는 ‘어른’의 길을 택하고 싶었다.


미로헌 공동체에서 나는 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려 애쓴다. 말 한마디도 허투루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더 나은 방향과 방법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토론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키려 노력한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어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강한 자극’이다. 자극이 있어야 긴장이 생기고, 긴장이 있어야 의식적인 노력이 가능해진다.


요즘 ‘개념 연예인’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해야 할 말을 제때 할 줄 알고, 말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에게 붙는 수식어, ‘개념’. 나이 든 사람에게도 ‘개념’이 필요하다. 이제는 나이보다 태도, 경력보다 자세가 사람을 증명한다. 나는 ‘개념 어른’이 되고 싶다. 그게 내 노년의 목표다.


‘개념어른’은 단지 친절하거나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고집 대신 대화를, 훈계 대신 경청을 택하고, ‘내가 다 해봤어.’ 대신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권리보다 역할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개념어른’은 존경을 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존경받을 태도를 매일 실천하는 사람이다. ‘나는 늙었으니 젊은 네가 해.’가 아니라, ‘아직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찾는 사람. 말만 많은 게 아니라, 말한 만큼 움직이는 사람.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책임질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 할 말이 있다면 책임도 함께 지는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개념 어른’이다.


타인과의 셰어라이프는 ‘개념’을 장착하기에 더없이 좋은 현장이다. 마찰도 있고, 충돌도 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의견을 내고, 조율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법과 서로 다른 삶의 리듬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기술을 배운다.


미로헌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권리가 더해지지 않는다. 권리와 의무는 언제나 평등하게, 함께 나눈다. 그래서 미로헌은 ‘개념’을 연습하고 익히는 훈련장이기도 하다. 혈육끼리 살았다면, 나는 아마 연장자라는 이유로 더 많은 몫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셰어라이프에 진정 필요한 것은 나이보다 태도, 경력보다 자세다. 육십 넘어 시작한 이 셰어라이프를 통해, 나는 늙어서도 계속 성장하는 중이다.


늙는 건 피할 수 없지만, 어떻게 늙을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나이 든다고 모두 지혜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나이 들어서도 ‘사회적 기술’은 계속 갈고닦아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더는 늘어나지 않더라도, 적어도 줄지는 않도록. 사회와 연결된 존재로 남기 위해서. 나는 지금 이렇게 ‘개념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개념’ 은 한번 탑재하면 끝나는 장비가 아니다. 꺼내 쓰고, 보충하고, 고치고, 다시 장착해야 하는 삶의 기술이다. 지금도 나는 개념 탑재 중이다. 공공의 문제에 끊임없이 진득한 관심을 가질 줄 아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잃지 않는 어른으로 '자라는' 중이다.





‘노인’은 나이로 되지만, ‘어른’은 태도로 되는 법.
노인 말고 어른으로, 어르신 말고 시민으로.
우리의 나이 듦에,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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