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어른생활 -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비누와 마루의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 비누는 골다공증이 염려되었고, 마루는 대사증후군을 경계해야 한 다는 소견이었다. 거기에 수도 얼마 전 검진 결과, 가족력이 있는 당뇨를 잘 관리하라는 권고를 들었다고 했다. 그 순간 자연스레 별호가 붙었다. 마루는 ‘대사’, 비누는 ‘다공’, 수는 ‘혈당’. 나는? ‘유방’이라 부르기엔 좀 그래서, 눈물 나게 웃고는 패스.
이 별호들은 단지 웃자고 지은 게 아니다. ‘다공’ 비누가 무거운 걸 들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주의를 기울이자는 뜻. 마루 ‘대사’와 ‘혈당’ 수가 고지혈증과 당뇨 예방을 위해 식단을 조정하던 시기엔, 곁에서 '맛난 불량식품'으로 유혹하지 말자는 다짐이 담겼다. 꼭 그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는 모두들 우려 단계를 벗어났다.
한 번은 퇴근한 루나의 얼굴빛이 심상치 않았다. 얼굴엔 핏기가 없고, 속이 안 좋아 점심도, 저녁도 못 먹었단다. 좀 쉬면 괜찮아질 거라는 루나를 차에 태워 야간 진료 중인 한의원으로 달려갔다. 스트레스성 위염.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비누가 그 사이 끓여놓은 죽과 본인이 응급용으로 먹는 약을 루나에게 내밀었다.
미로헌에서는 병조차도 일종의 ‘공유 자산’이다. 나이 들수록 자잘한 통증이나 불편함은 누구에게나 생긴다. 하지만 보통은 굳이 말하지 않는다. 괜히 걱정 끼칠까 봐, 민폐가 될까 봐, 아니면 그냥 말하는 게 귀찮아서. 그런데 우린 다르다. 병은 소문내야 제 맛이라고 믿는다. 그래야 유사시에 무엇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돌봄은 병원 동행이다. 혼자 살 땐 안과에서 검사를 받고 당장 운전하면 안 된다고 해서 대리운전을 부른 적도 있다. 지금은 걱정 없다. 수면내시경으로 위·대장 검사를 받을 때 마루는 내 전담 동행이다. 병원에 데려다주고, 기다렸다가, 데려온다. 세상 든든하다. 마루가 어깨와 등 통증으로 한의원에 갔을 땐 내가 운전 동행을 맡았다. 운전을 못 할 만큼 아프지 않아도, 도심 병원 주차난 때문에 운전자가 따로 있는 게 큰 도움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병원 갈 때의 ‘운전 보호자’가 된다. 물론 우리는 서로의 공식 보호자도, 간병인도 아니다. 하지만 함께 살려면 최소한의 건강 정보는 공유해야 한다. 누가 어떤 약을 상시 복용하고 있는지, 진단받은 병명은 무엇인지, 혹여라도 쓰러졌을 때 119에 뭐라 설명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건강 정보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이긴 하지만, 미로헌에서는 어느 정도 공적인 정보가 된다. 내가 여성호르몬 관련 항암약을 복용 중일 때는 식구들에게 금기 식품을 미리 알려두었다. 대표적으로 자몽. 혹시라도 카페에서 내가 자몽 음료를 주문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병원 진료나 검사 일정도 타임트리에 올려 누구나 볼 수 있게 해 둔다. 누구든 병원에 다녀오면 결과도 공유한다.
“어땠어?”
“뭐래?”
“에구, 그래도 다행이네.”
이런 대화는 미로헌의 일상이고, 우리의 안전장치다.
그렇다고 아픈 사람을 유난히 떠받들거나 티 나게 챙기는 건 아니다. 환절기와 마루의 고도 불면은 짝을 이뤄 오기에 그 시기엔 “간밤엔 좀 어땠어?” 하고 슬쩍 묻는다. 묻는 사람이 심각하면 답하는 당사자가 심란해질 수 있으니 부러 가볍게 묻는 게 좋다. 집에서 주로 식사를 하는 비누와 나는 서로 늦게까지 주방에 안 나오면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지 살핀다. 누가 아프다고 해서 나의 일상이 달라지진 않는다. 다만,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가볍게 돕는다. 관심과 루틴의 문제다.
한 번은 비누와 마루가 서울 일을 마치고 제주로 돌아오던 날. 그 며칠 전 마루의 통풍이 도져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비누 혼자 휠체어에, 두 사람의 여행 가방까지 챙기기는 무리였다. 나는 그게 아니더라도 공항에 데리러 갈 요량이었지만, 루나도 선뜻 함께 나서주었다. 나는 게이트에 차를 대고, 루나는 안으로 들어가 짐을 챙겼고, 손이 가벼워진 비누가 마루를 부축해 나왔다. 그날 밤, 우리는 환상의 4인조였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서로를 돕는다. 누군가 “도와달라” 고 말하면, 별일 아니라는 듯 당연하게 돕는다. “무슨 일 있냐?”에 “괜찮다”는 말로 덮어 버리지 않고, ‘이런저런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로 꺼내놓는 연습을 하는 것. 우리에겐 그게 곧 서로를 돌보는 방법이다.
우린 서로의 법적 보호자는 아니다. 병원에서 보호자 연락처를 쓰라고 하면 결국 친형제나 자식의 것을 적어야 한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서로의 ‘보호막’은 될 수 있다. 몸이 안 좋을 때 혼자 병원에 가지 않게, 응급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게, 병을 키우지 않게. 이것은 멀리 있는 자식이나 친형제가 해 줄 수 없는 일이다.
몸은 언젠가 고장 나고, 그 기능은 서서히 멈춰갈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을, 그 과정을 어떻게 함께 건너느냐다. 진짜 셰어라이프의 완성은, 돌봄과 보살핌을 함께 나누는 데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프면 일단 소문부터 내야 한다. 적절한 치료법을 찾는 건 물론이고, 안도와 위로의 웃음은 덤이다.
병은 누구에게나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지만, 그것을 서로 덜어주는 것이
셰어라이프다. 내 통증이 너의 관심이 되고, 너의 병력이 우리의 정보가 되는 집.
그게 바로, 우리 집 미로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