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슬기로운 어른생활 -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by 조선희

“뭐 먹을래?”

“아무거나.”

“뭐 사다 줄까?”

“아무거나.”

이런 식이면 거의 ‘아무거나 병’이다. 일상 속 누구나 한 번쯤 감염되는, 흔하디 흔한 병. 나 또한 왕왕 이 병에 걸리곤 한다.


가깝고 익숙한 사이일수록 ‘아무거나’는 더 자주 등장한다. 말없이 마음을 짐작해 주길 기대하고, 대충 눈치껏 챙겨 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아무거나’는 사실 절대 '아무거나'가 아니다. 이미 머릿속엔 ‘그건 싫은데’ ‘이건 별론데’ 같은 판단이 내려진 뒤다. 그럼에도 굳이 말을 아끼는 건 괜히 까다롭게 보일까 봐, 혹은 상대에게 부담을 줄까 봐, 아니면 그냥 말하기 귀찮아서다. 심지어 상대를 배려하는 척하면서도 실은 책임을 넘기려는 마음이 깔려 있을 때도 있다.


문제는, 이 ‘아무거나’가 의외로 강력한 파괴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서로 바쁜 일상을 살고, 각자 다른 피로도와 감정선을 안고 살아가는, 타인과의 동거에서는 특히 그렇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려면 솔직함이 필수인데, ‘아무거나’는 이 솔직함을 가장 먼저 무너뜨린다.


처음에는 배려처럼 보이지만, 실은 결정의 짐을 상대에게 떠넘기며 오히려 부담을 준다. 그렇게 애매함이 쌓이면, 사소한 것에도 오해가 싹튼다. 결국 마음이 상하는데도 정작 무엇이 문제였는지 서로 알지 못한다. 더구나 우리는 오랜 배경을 공유하는 혈연이 아니다. 생판 남남끼리 살아가는 공동체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는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기대나 바람이 있다면, 명확하게 말해야 한다.


‘이쯤이면 알겠지’ 하는 마음은 대개 착각이고, 그 착각이 반복되면 어느새 감정의 오역이 시작된다. 정확히 말하지 않으면 정확히 배려받을 수 없다. 관계에서는 정공법이 최고다. 솔직함이 때로는 뻣뻣하게 느껴지더 라도, 돌려 말하거나 생략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래서 우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 감정과 욕구, 한계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연습.

“지금은 좀 피곤해서 내일 청소할게요.”

“오늘은 내가 시간이 안 되는데, 누가 대신 쓰레기 좀 비워줄 수 있을까요?”

“오늘 회식 메뉴, 비건은 좀 그래요. 오랜만에 중국 음식이 당겨요!”


이처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은 관계를 더 명확하게, 더 편안하게 만든다. 물론 처음엔 어색하고 조심스럽다. 괜히 민폐 같고, 갈등의 단초가 될까 망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몇 번 해보면, 이것이야말로 서로를 진짜로 배려하는 방식임을 알게 된다.


특히 우리는 생판 남남 아니던가. 상대방이 넘겨짚어 내 마음처럼 알뜰살뜰 알아줄 거라는 기대를 아예 가지면 안 되는 관계.


정직한 표현은 배려의 시작이다. 상대를 진짜로 존중하고 싶다면, 우선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 오해는 대부분 말하지 않아서 생기고, 다툼은 말 안 하고 넘긴 것들이 쌓여서 폭발한다. “아무거나 괜찮아.”는 어쩌면 ‘이쯤이면 알아줘야지’라는 기대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암묵적 기대는 갈등의 씨앗이 되고, 반복되는 눈치보기는 관계를 지치게 만든다. ‘괜히 싫은 티 내기 미안해서’ ‘혹시 상처받을까 봐’라는 핑계로 침묵하면, 결국 상대는 자기도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되고, 그 눈치는 곧 불편함이 된다. 그런 불편함이 쌓이면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이다. 말 한마디면 풀릴 것을, 말하지 않아 더 꼬여버린다.


살다 보면 ‘아무거나’ 못지않게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말이 또 있다. 바로 “됐어요.” 다. 무언가 제안하거나 도와주려 할 때, 다짜고짜 “됐어요.”라고 하면 그 말은 종종 “지금 꽤 많이 불편하다.” 는 뜻으로 읽힌다. 말은 짧지만 속내는 깊고 복잡하다. ‘전혀 괜찮지 않지만,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표시. 그렇게 대화는 멈추고, 감정은 미로 속에 갇힌다.


결국, 말의 기술이 동거의 질을 결정한다.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괜찮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므로. 나의 상태, 나의 기대, 나의 한계를 분명하게 말해야 상대도 적절히 반응할 수 있다. 배려는 단지 좋은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표현되어야 하고, 표현은 구체적일수록 실현 가능성이 높다.



생판 남들과 함께 사는 삶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관계가 아니라,
말해야만 통하는 사이에서 시작된다. 좋은 동거인은 말없이 짐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로 자신을 분명히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다.
애매한 배려는 갈등을 키우고, 분명한 표현은 오해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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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 할 수 있는 일, 피하고 싶은 순간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을 때, 함께 사는 삶은 비로소 단단해진다. 오래 함께하려면 눈치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정확한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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