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스무살/옥수수와

작가의 초기작을 본다는 것

by 김오 작가

나목

박완서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사회생활의 문을 닫는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처음인지 모를 시간 앞에서 불안하고, 어색하고, 떨린다. 나의 불안은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시간 분배로 이어진다.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정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좋다. 사실 한 시간여를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흘러갔지만 그것마저 좋다. 책은 책만의 힘을 가지고 있다. 나도 힘을 가진 책을 쓰고 싶다. 나이 마흔이 가까워서야 내가 무엇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문득 깨달아 먹먹해진다.


무료한 인생에 사람 같은 점들이 콕콕 박혀 있는 것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 책이 내 인생에 스며들어 있어 고맙고 다행이다.


박완서를 좋아한다. 처음으로 대단하다고 느낀 한국 작가이다. 박완서는 나이 마흔에 등단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 그려내듯이 감정을 앗아가듯이 쓰는 작가이다. 그녀의 처녀작을 손에 든 것이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경계선 성격장애 같기도 한 여주인공과 어린 여자를 만나 그림에 대한 영감을 가지고 나목을 그린 옥희도, 평범함을 대표하는 것으로 표현하려 했던 여주인공의 남편. 그리고 625 전쟁 직후의 한국. 이러한 것들이 어지러이, 그러면서 단출하게 펼쳐졌다.


ps. 이 책의 포인트는 논술을 목적으로 두고 있어서,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생각할 거리를 준다. 그것이 이 책에 대해 내가 품지 못했던 완성도로 이끌어주는 것 같아서 나는, 나쁘지 않았다. 논술 거리를 읽고 난 직후에는 마치 이 책을 읽고 더 큰 것을 얻은 것 같은 착각까지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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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김연수


나는 아직도 글을 잘 쓴다는 것이 뭔지 알지 못한다. 잘 쓰인 글이란 무엇인가. 주어와 술어의 시제가 일치하고, 문장의 길이가 길지 않으면서 담백하고 등등의 요소들로 말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글이라는 것에, 작가라는 것에 수많은 안개와 장치들을 심어놓는다. 글이라는 것은 애초에 내 마음에 와닿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렇게 아직도 글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글을 좀 쓴다 하는 작가의 초기작에 문을 두드려보곤 한다. 박완서, 김영하, 김연수, 은희경 등등. 그런데 처음이 더 자연스럽고 나답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글의 정규분포에 한국의 글들은 포함되지 않을 때가 많다. 외국의 명작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현재를 느끼게 하고, 유행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 초연함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의 작가들은 글을 쓸 때의 유행을 타는 경우가 있다.


김연수의 ‘스무살’에서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에서 받은 느낌을 또다시 받고 보니, 등단 시기에 주최 측이 담고 있는 그릇이 무엇인지가 중요하구나. 하고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내가 그 시절 박민규의 글을 보고 놀라고 놀라워했으나, 다시금 책을 들기 무서운 것처럼 글에도 분명 유행이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렇지 않아야 덜 불편하고 더 잘 스며드는 것 또한 분명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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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와 나

김영하 외


2012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옥수수와 나를 읽었다.

2012년 대학원 선배들과의 트러블, 새 직장에서 계약직의 삶으로 살던 시기.

2012년에 나는 거기에 있었다.


시작이 매우 흥미롭다. 첫 한 페이지가 몰입하게 한다. 마치 다음은 없다는 듯이 매력적이게 다가온다. 전형적인 정신증 case로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 시절 작가들이 유행하던 애매하고 모호하면서 그런 것들을 나열해야 그 시절의 작가라는 느낌을 받게 하는 글들이 이어진다. 글에도 유행이 있나 보다. 요즘의 글들은 좀 더 현실적이고 좀 더 솔직해졌다면. 2010년 초반의 글들까지는 작가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로 하는 내용들이 전개되어야 소설로 생각하는 것 같다. 2000년대 초 읽었던 박민규의 소설이 대표적이었다.


내가 김영하라는 작가를 아... 정말 글 잘 쓰는구나라고 느낀 건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였다. 그 글을 읽고, 김영하라는 사람, 알쓸신잡에서 본 사람.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옥수수와 나로 만나게 되었다.


문체는 약간 유치하고 가벼우면서도 읽는 사람을 약간 부끄럽게도 하는 정도의 글. 자신의 이야기인 듯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소재. 그 경계의 어딘가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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