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쓰레기가 많다. 등기가 완료된 사이 집에 쓰레기가 더 많아졌다. 계약 당시 집에 있는 물건이 많다고 하니, 법무사 담당자가 출처에 대해 물었고, 앞집 물건으로 추청 된다고 했다. 매도인과 가까운 사이라며 전화를 해서 물건을 다 빼라고 했다(그런데 전화번호도 모르고 있다니요.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잖아요). 그리고 계약서에도 등기 완료 전에 적재한 물건을 모두 처리하기로 명시하였다.
그런데도 물건이 치워져 있지 않았다(이상하지요? 놀랍지도 않다는 게). 나무처럼 자란 풀들을 농사일 한 번도 안 해 본 티를 내는지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간간히 본다. 그동안 집에 대한 대우였던 것 같아 안쓰럽다. 그러다 4평 건물 벽에 둘러쳐 있는 스티로폼을 뜯었다. 북북 뜯기는 어설픔에 헛웃음이 났다. ‘나 지금 여기에서 뭐 하고 있지? 아무도 살지 않을 곳을 집이랍시고 사서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그런데 꾸역꾸역 해오던 어떤 일보다 가장 재미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은 건 또 뭐지?’ 그러다 ‘폐기물 처리할 때 함께 처리하지 뭐’라며 초긍정이 된다.
다 가져갔냐고 앞집에 물으니, 다 가져갔다고 한다. 그럼 폐기물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구두로 이야기를 마치고 물건을 처리하자, 물건 값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동의서를 받기로 했다. 동의서 내용은 해월가에 무단으로 적재하였던 물건 중 가져가고 남아 있는 물건 처리에 대해 추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앞집 할머니가 오시지 않는다.
그 사이 어디선가 할아버지 한 분이 나타나서 얼마 주고 샀냐고 묻는다. 그 할아버지가 사라지고 또 다른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얼마 주고 샀냐고 묻는다. 그리고 이거 사서 뭐 하냐고 묻는다. 앞집 할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동네에 대한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도 하신다.
동네 분들의 평균 연령은 칠십이 넘었다. 이 집도 저 집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머리가 벗어지거나 하얗거나 새까맣다(염색). 그곳에 상대적으로 젊은 여자 두 명이 들락날락거리니 이게 무슨 일인지 궁금할만하다.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굴을 슬쩍 보시거나 인사를 받거나 하신다. 해월가는 20년이 넘게 빈집으로 있었다고 한다. 20년이 넘게 집이 비어있었다고 하기 무색할 정도로 집 상태는 그래도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는데(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집 할머니가 관리를 해주신 덕분이었다. 빈집에 물건을 방치한 괘씸함보다 고마움이 든다. 해월가의 주변으로 빈집 3채가 둘러싸여 있다. 딱 해월가를 중심으로 빈곤함을 더한다. 옆집은 어느 부동산을 하는 이가 몇 년 전에 구입을 하고는오지 않아잡초가 나무가 되고 산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앞집 할머니를 만나면 고맙다는 인사도 빼놓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할머니를 못 만났다.
논산에 살지 않고, 타 지역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 퇴근하고 혹은 주말에, 일주일에 2~3번 갔다. 그래서 평일 낮에는 주로 H로부터 전화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H(해월가 고치는 총괄자)와 해월가를 고치기로 한 데는 계약도 하기 전에 갑자기 전기를 연결하고 집 여기저기를 진행한 데에 있었다. 이미 일을 시작했고, 마땅한 업체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어느새 일을 하고 계셨다. 그날은 집 담벼락은 집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으니 나중에 손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집 할머니가 와서 자기 물건이라며 내가 산 분무기를 가져갔단다. 그래서 그거 내 거라고 하니 다시 가져다 놨단다. 동의서를 못 받으니 이런 일이 일어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구나. 싶었다.
퇴근을 하고 논산에 갔다.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온다. 편의점에 가서 음료수 한 상자 샀다. 주차하니 앞집 할머니가 마침 밖에 나왔다. 할머니께 음료수를 내밀며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다시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본론을 꺼냈다. 그러자 자신이 그런 적이 없는데 업자가 가지고 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설명을 드렸다. 모두 가져가시겠냐, 모두 처리해도 되겠냐고 물으니, 무거워서 못 나르고 있는 다듬이와 불을 피우는 큰 통은 가져가겠다고 하셨다.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물건들을 날라다 드렸다. 나머지 처분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단다. 그 뒤로는 더 이상 물건을 가져가지 않으셨다.
그리고 여러 번 발을 디디는 사이 안면이 트여 편하게 인사하는 사이가 됐다. 연신 짖어대던 앞집 개, 정이도 꼬리를 흔들며 해월가에 앞장서 들어간다. 그리고 도통 나아지지 않는 집을 보며, 뭐가 좋아 그리 웃냐고 걱정하신다.
지적도상 경계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집을 사고 났더니 집이 다른 사람 땅에 걸쳐 있거나 혹은 다른 집이 내 땅에 걸쳐 있어서 분쟁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애초에 해월가는 그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어찌 보면 계획 도시니까. 하하.
앞~앞집 할아버지가 집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는 이후 보리밭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데, 자꾸 0을 아냐고 물어보며 이야기를 하셨다. 원래 이곳은 보리밭이었다고 한다. 당시 연탄공장을 운영하는 부자 0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토지를 분할하여 추첨하여 가지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적도상의 경계가 뚜렷하고 토지 크기도 모두 50평 내외이며 70년대에 한꺼번에 지었다고 했다. 연탄공장 인부들이 사는 일종의 관사촌과 같은 곳으로 이해하면 되려나.
시골집 지붕을 보면 슬레이트가 많다. 즉 석면으로 되어 있는 옛날집들이 많다. 1급 발암물질을 유발한다는 걸 알기 전에는 흔히들 사용하던 지붕 소재였으나 지금은 처리하는데도 많은 비용이 드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석면을 제조했던 업체는 소송만 하다가 파산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데 문제는 석면이 지붕에만 사용된 것은 아닌가 보다. 여기저기 많이 사용됐다고 하니 2009년 이전의 건축물들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없으니 다시 지붕이야기로 돌아가서 오래된 집을 살 때는 누수가 되지 않는지, 석면이 아닌 지붕으로 되어 있는지를 고려하면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시멘트 기와지붕으로 되어 있는 해월가는 석면은 피해 갔을지언정 누수는 피해 가지 못했다.) 만약 석면지붕으로 되어 있는 시골집을 샀다면 해당 군이나 시청에 문의해서 지원금이 있는지 파악해 보면 도움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비가 와도 울지 않는 해월가를 그린다.)
읽다 보면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게 어설프다. 그런데 해월가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합리적인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이상하게 잘 될 거란 터무니없는 믿음이 생긴다. 나는 이미 이곳을 애정하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