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한증 일기

땀의 온도 - 다한증과 나의 이야기

by 김오 작가

마흔 셋, 다한증 수술을 하기로 하다.

9월 8일 D-39

다한증 수술 하기 39일 전. 10월 17일 다한증 수술 예정이다. 내 나이는 마흔 셋이고, 다한증-일부 부위에 체온 조절과 상관없이 땀이 매우 많이 나서 멈추지 않는 증상을 가지고 오랜 시간 살아왔다. 손, 발, 겨드랑이에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만큼 땀이 많이 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예정대로라면 나는 흉부의 T4 교감 신경을 자를 것이고, 자르고 나면 다시는 이어 붙일 수 없다. 수술 후에 자른 교감 신경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어디를 잘랐는지 모른다는 것. 그런데 자를 때는 아는데, 왜 자르고 나면 어디를 잘랐는지 모르는 걸까?


혹여 수술 후에도 이전과 똑같이 땀이 나고 다른 곳에도 땀이 더 날 수 있다. 수술이 잘 되면 손과 겨드랑이에 땀이 나지 않고, 일상 생활에서 손에 땀이 나서 지장이 있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어쨌든 나는 강을 건너기로 했고, 강을 건너기 이전에 나를 기억하고 싶어 글을 쓴다. 강을 건넌다는 것은 돌아올 수 없는 슬픔이고 기쁨이며 무엇이 될 것이다.


땀은 몸의 체온을 조절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중요한 생리 작용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를 느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운동을 하거나 날이 더울 때 또는 긴장했을 때 체온 조절을 위해 자연스럽게 땀을 흘린다고 하는데, 나는 알지 못한다.


아침부터 손에 땀이 흥건하다. 여름이냐고? 더워서 그러냐고? 아니다. 덥지 않다. 씻고 나와도 손이 축축하다. 선크림을 바르는데 물이 됐다. 손에 로션이 닿으면 설령 손에 땀이 안 났더라도 많이 나기 시작한다. 땀이 날 경우에는 더 난다. 더 이상 날것도 없을 것 같은데, 참 많이도 난다. 발에는 바닥에 더러운 먼지는 다 붙이겠다는 심산으로 축축하다. 내 발은 걸레가 아닌데. 발에 양말을 넣으면 잘 들어가지 않는다.

딸 아이의 손을 잡는데 땀이 흥건하여 중간중간 닦아야 한다. 문구점에 들러 아이가 물건을 샀고, 계산을 하려고 내미는 신용카드에 땀이 묻어 있다. 결제 후 카드를 돌려받을 때는 주인의 손이 닿지 않게 조심히 받는다.

· 회사에 도착하니 컴퓨터가 켜지지 않는다. 동료의 컴퓨터에서 수리 요청을 쓰는데 마우스에 땀이 묻어난다. 신경이 쓰인다.

· 환자와 마주 앉아 검사를 하는데 검사 종이가 땀으로 젖는다. 검사 도구를 설명하고 나면 땀이 묻어 있는 것이 신경이 쓰인다.

· 점심 시간에 식당에 가서 받을 먹기 전에 젓가락을 고르는데, 다른 것들에 내 땀이 묻는 것 같아서 조심스레 잡아 뺀다.

· 물건을 택배 보관함에서 찾아가라고 해서 갔더니, 직원들이 찾아가지 않은 물건들에 먼지가 쌓여 있었고, 하나하나 찾는 동안 내 손은 구정물이 되어 갔다. 먼지가 묻어 터는 것이 아니라 먼지가 손에 닿으면 구정물로 변한다. 결국 물건은 찾지 못했다. 담당자가 연락이 왔다. 잘못 배송된 것 같아 다시 보낸다고 했다.

유튜브에서 암벽 등반하는 경기가 나온다.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취미로라도 일어날 수 없는 일.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원장이 나를 보면 더럽다며 화를 냈다. 손에 땀이 나는 일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거나, 엄마에게 이르거나, 학원을 그만두면 되는데,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죄인이 되어 땀이 나를 그 순간을 억겹으로 보냈다. 6년 씩이나...


손으로 해야 하는 것들은 많다. 손으로 할 수 있는 것들에 제약을 받는다. 거기에 손목에 건초염까지 걸려서 물건을 잡거나 만지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어릴 때는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거나, 한약을 먹으면 없어질 거라 여겼다. 조금 더 커서는 드리클로라는 바르는 다한증 치료제를 사용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서른이 되어선 보톡스를 맞아봤다. 손만 엄청나게 아프고, 힘이 들어가지 않으며 땀은 계속 났다. 그러다 몇 달 전 이온영동치료 기계를 사서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져, 수술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