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은 F1 영화 하나로 충분할 것 같다.
이 관람평이 그렇게 길 것 같지는 않다. 딱히 복잡한 스토리라인이나 심오한 주제의식을 담아낸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는 그대로 얻는 데서 오는 포만감‘이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평처럼, F1은 트랙 위를 시원하게 질주하는 F1 드라이버를 보며 쾌감과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킬링타임용으로 최적이면서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끝도 없이 뿜어져나오는데, 그 누가 이 영화를 마다하겠는가.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를 정리해보자면, 첫 번째는 음향이다. 돌비 시네마가 아닌 일반 상영관에서 볼 바에는 차라리 영화를 아예 안 보는 게 낫다는 과격한 생각이 들 정도로, F1 영화에서는 음향이 매우 큰 지분을 갔고 있다. 레이스카의 엔진 및 배기음 소리, 그랑프리 레이스의 중계 소리, 타이어의 마찰음 소리가 생생히 구현되어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그랑프리에서 실제로 경기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현장감을 넘어 브래드 피트(영화에서는 소니 헤이스)와 함께 에이펙스 레이스카에 타고 있는 것만 같은 박진감까지 느끼게 된다. 영화의 사운드트랙과 OST 또한 적재적소에 활용되어 F1이 선사하는 특유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사운드트랙의 경우, 전자음과 오케스트라를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폭발할 듯한 에너지로 질주하는 F1 레이스카의 정체성을 전자로, 숱한 시련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다시 챔피언에 도전하는 주인공의 서사를 후자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OST의 경우, 감각적인 편집과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영화의 분위기에 완벽히 녹아든다. 특히 주인공 소니 헤이스가 조슈어 피어스의 부상으로 인해 홀로 그랑프리에 출전하고, 압도적인 실력을 발휘하며 순위를 파죽지세로 높여나가는 시퀀스가 영화 중반부에 나오는데, 이때 영화의 주제가인 Lose My Mind가 시작부터 끝까지 흘러나오며 소니 헤이스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의 역할을 한다. 이처럼 F1에서는 사운드가 곧 도파민이기 때문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들리는 것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어느새 F1의 짜릿한 세계에 몰입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F1 스포츠 입문이다. 당연히 리얼리즘보다는 블록버스터에 초점을 맞춘 영화이기 때문에 경기 진행 방식이나 드라이버의 플레이 방식에 대한 고증과 재현이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경쟁 상대로 현역 F1 드라이버를 실제로 등장시키거나, 그랑프리 레이스 전에 열리는 기자회견 및 연습주행을 보여주거나, 레이스카의 성능, 피트 스톱 타임 단축, 타이어 교체가 레이스 전반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가지는 중요성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F1의 기본을 이해시킴과 동시에 F1의 세계에 흥미를 느끼도록 만든다. 필자 본인조차도 영화를 보고 난 후 궁금증이 가득해서 인터넷으로 소니 헤이스가 루틴처럼 경기 끝난 이후 얼음물에 들어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실제 F1 드라이버들도 훈련할 때 시뮬레이터를 사용하는지를 검색해보았다. 치열한 레이스에 숨겨진 치밀한 전략과 피나는 훈련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니 관객으로서 F1의 정교한 세계에 매혹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에서는 해외의 엄청난 인기와 달리 아직 F1이 생소한 사람들이 많고, F1을 다룬 국내 콘텐츠도 무한도전 카레이싱 특집편을 제외하고는 손에 꼽을 정도이니, 이 영화는 한국 관객들에게 새로운 스포츠에 열광하게 될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세 번째는 뻔함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다. 사실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매우 진부하고 전형적이다. '젊었을 때 촉망받던 천재가 불의의 사고로 몰락한 다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마지막 기회를 잡아 재기에 성공하고, 한 인간으로서도 성장한다.' 어디서 한 번은 분명히 접해봤던 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다. 해당 스토리라인은 진부하지만 그래도 이 스토리라인에 담긴 클리셰들은 주인공의 최후가 승리임을 보장하며, 관객에게 감동과 쾌감을 확실히 안겨준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은 영리하여, 클리셰가 실현되는 장면들을 너무 오글거리거나 과하지 않도록 적정선을 유지하며 연출한다. 이를테면 소니를 못미더워했던 팀 관계자들이 점차 소니를 존중하고 응원하게 되는 장면(경기 전 회의에서 다함께 플랜 C인 Combat을 외친다), 소니와 사사건건 충돌했던 조슈어가 소니의 조언을 귀담아듣고 드라이버로서 성장하는 장면(매니저에게 스폰서나 언론을 통한 이미지메이킹에 신경을 끄겠다고 선언하고, 팀 관계자들과 함께 경기 당일 러닝을 하며 팀워크를 다진다),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소니가 드디어 이를 극복하고 기나긴 방황을 끝내는 장면(팀으로 다시 돌아와서 죽는 한이 있어도 달리고 싶다고 친구에게 말한다)이 대표적인데, 모두 뻔하기는 해도 주인공 소니를 응원하는 관객들을 흡족하게 만드는 것에 성공한다. '뻔해도 없으면 아쉬운' 클리셰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관객 모두가 바라는 용두용미의 서사를 완성시켰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할 관객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