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성이 좋은 편은 아니다.
말을 잘하는 편도 아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금방 가까워지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된 친구들은 많은 편이다.
정말 친한 친구가 몇 명이냐고 물으면 열다섯 명은 넘는다고 이야기한다.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이 친구들과 친해지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편했던 적은 없고 조금씩, 오래 걸려서 가까워졌다.
그 시간 덕분인지 지금은 서로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함보다는 익숙함이 먼저 올라오고
그 사이에서는 일할 때의 내가 아니라 조금 더 가볍고 장난스러운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가끔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이 친구들을 이렇게 좋아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친구들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억지로가 아니라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든다.
누가 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 일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내 주위가 행복해야 나도 편안해진다.
혼자 잘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없다.
어딘가에서 혼자 잘 살고 있다고 해도 내 주변이 무너져 있다면
그건 오래 버티기 어려운 행복일 것이다.
행복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주고, 돌아오고, 다시 나누어지고
그 안에서 나는 같이 웃고 있는 사람 중 하나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친구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한다.
누군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사람은 타인의 기쁨 앞에서 아주 미세한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어쩌면 그게 더 자연스러운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된다.
내가 바라는 이 마음이
비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사람을 향하고 있는지.
그냥, 오래 보고 싶다.
그 마음이면 충분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