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욕망이 정말 내 것인지 가려내는 일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말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그렇게 살지 못한다.
남들에게는 감사와 이해를 말하면서도 정작 내 삶의 작은 균열 앞에서는 쉽게 흔들린다. 그래서 행복에 대해 말할 때마다, 늘 이론과 실제 사이의 거리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그래도 요즘 들어 한 가지는 조금 분명해졌다.
내가 잘났다고 해서, 혹은 내가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잠깐 번쩍이는 감정이 아니라 은은하게 오래 머무르는 상태에 가깝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좋은 환경에 들어가고, 좋은 것들을 손에 넣어도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늘 더 높은 비교 대상이 생기고, 만족은 금방 다른 욕망으로 밀려난다.
어릴 때는 또래보다 키가 큰 편이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기에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처음에는 뿌듯함이 있었고, 의사가 되어 바라던 길에 들어섰을 때도 분명 기쁜 마음이 있었다. 골프 싱글을 처음 달성했을 때도, 운 좋게 기대 이상의 돈을 벌었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허무함은 늘 그 목표들을 달성한 직후에 찾아왔다. 평생의 숙제 같았던 골프 싱글을 달성하던 날, 기쁨보다는 오히려 흥미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공허를 메우기 위해 책을 읽거나, 또 다른 목표를 세우며 스스로를 몰아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오래가지 않았다. 목표를 이루고 다시 다른 목표를 향하는 과정은 결국 나를 계속 허기지게 만들 뿐이었다.
한때는 내가 원하던 환경과 취미에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써보기도 했다. 지금도 삶 안에 스크린 골프장이나 개인 헬스장과 같은 내가 바라던 공간들을 하나씩 만들어가며 살고 있다. 그런데 막상 그런 것들이 손에 들어오고 나면, 이루기 전 상상했던 만큼 삶을 바꿔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가장 잘 나간다고 느꼈던 순간 뒤에는 늘 불안이나 위기가 따라왔다. 지금 돌아보면 지나가는 일이었지만, 그때는 꽤 크게 느껴졌다.
11년을 공부해서 전문의가 됐다.
그런데 그 긴 시간이 내게 남긴 것은 ‘완성’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아는 감각이었다. 전문의를 딴 지 5년째인 지금도 여전히 배우고 있다. 배울수록 모르는 것이 늘어나는 이 과정이, 오히려 목표를 달성하고 느끼던 허무함과는 다른 종류의 충만함을 준다는 것을 요즘 조금씩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제 행복 자체보다, 행복을 방해하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미디어다. 나는 SNS를 하지 않지만, 이런 환경이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들 뿐 아니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흐리게 만든다고 느낀다.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남들이 원하기 때문에 따라 원하게 된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유튜브와 여러 미디어는 사람들이 가진 것과 이룬 것을 끝없이 보여주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속에는, 어쩌면 허전함도 함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나는 영화 Joker를 좋아한다.
그가 선택한 삶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기준 속에서 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자기 안의 감정을 더 이상 속이지 못하게 되는 장면은 오래 남는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나 역시 내가 원한다고 믿었던 것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사실은 주어진 기준이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지금의 사회는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먼저 평가하고, 실수를 교정하기보다 곧장 낙인찍는 쪽으로 더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가역적인 실수조차 쉽게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증명하느라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나 역시 무엇이든 해보자는 쪽에 가깝지만, 사람마다 타고난 것도 다르고 처한 환경도 다르다. 그런 차이를 지워버린 채 쉽게 누군가를 판단하기보다, 조금 더 이해하려 하고 조금 더 여지를 남겨두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조차 완전히 해내지 못하는 것을 남들에게만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행복은 더 많이 가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욕망이 정말 내 것인지 가려내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하루를 마치고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 늘었다. 대단한 결론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이 하루 중 가장 고요하다. 생각대로 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그대로 두고 있는 시간. 대단한 정답이 있어서 버티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삶을 붙들어 주는 것은 어쩌면 그런 종류의 작은 평온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