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과 반복된 힘줄 재파열
수술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인간의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사실이다.
의사가 최선을 다하고 환자 또한 누구보다 성실히 재활에 임하면 남들보다 빨리 회복할 것이라 믿고 싶지만, 현실은 종종 그 기대를 배반한다. 때로는 가장 노력한 사람이 가장 큰 시련을 겪는다.
수많은 환자들과 관계를 맺고, 어떤 이들은 퇴원 이후의 삶까지 지켜보게 된다. 그중에는 유독 마음에 남는 환자들이 있다. 유난히 나를 잘 따르던 이, 긴 치료 과정을 함께 울고 웃으며 견뎌낸 이들. 그들이 병원을 떠난 뒤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설명하기 어려운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지난주, 전역 후 복학을 준비 중인 한 환자를 강남역에서 만났다. 식사를 함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여러 사연을 지닌 의대생으로,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친구다. 근심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시간을 견디는 모습이 늘 인상적이었다. 이상할 만큼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그가 나는 늘 고마웠다.
지금 그는 내가 권한 골프를 배우며 제법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듯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나에게도 되돌아볼 의미가 있고, 지금 어딘가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24년, 여름 응급실에서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환자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터벅터벅 응급실에 걸어가 환자를 봤는데 머쓱해 보이는 표정의 병사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유독 군기가 바짝 들었길래 긴장을 푸려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면서 이 친구가 의과대학에 다니는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의무대 높은 곳에 있는 녹슨 캐비닛이 갑자기 손에 떨어지며 손가락을 벤 상태였는데 상처의 크기도 깊었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 완전히 잘려 엄지손가락을 들 수 없는 상태였다.
의사라는 직업은 손이 정말 중요하기에 순간 잘못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환자가 수술을 받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였기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 후 당일 응급으로 더러운 부위를 깨끗하게 씻어내고 파열된 부분을 단단하게 봉합하는 수술을 시행하였다.
처음 본 사이였지만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평소보다 더 기합을 넣어 수술을 하였고, 수술은 계획한 대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나와서 환자에게 설명을 하며 긴장되었던 마음이 다소 풀렸고, 환자의 얼굴에 번지던 안도의 표정이 지금도 기억난다.
수술이 끝나고 며칠간은 상처도 양호했고 특별한 문제도 보이지 않아 상처가 안정화되는 대로 단계별 재활을 진행하려 하였다. 환자도 의료진이었기에 수술한 사진을 함께 보며 봉합 부위에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가벼운 움직임을 가져가도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아예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 가벼운 움직임이라도, 혹은 움직이는 느낌만이라도 연습하는 것이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잊지 않고 전했다.
하지만 이 말이 독이 된 것일까...
빠른 재활을 원하던 환자는 통증이 심한 초반에도 열심히 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쉬지 않고 재활을 하였고, 결국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수술 부위가 재파열되는 일이 발생했다.
환자 탓을 하면 죄책감을 가질 수 있기에 재파열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며 바로 응급 수술을 진행하였다. 국소마취하에 환자가 직접 손을 움직이면서 힘줄 봉합이 적절히 되었는지 확인하며 수술을 이어갔다. 다행히 재파열된 힘줄도 직접 봉합하여 연결할 수 있는 상태였기에 수술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봉합 부위의 강도도 단단한 것을 환자와 함께 확인하며 수술을 종료하였다.
여기까지는 내가 예상할 수 있었던 일들이었다.
약간의 난관은 있었지만 잘 극복하고 결국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극은 예상치 못한 순간, 소리 소문 없이 찾아왔다.
수술 후 일주일간 환자에게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통증도 심하지 않았고, 수술 부위에서 진물이 나오거나 감염을 의심할 만한 소견도 보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환자 수가 많고 수술도 많이 진행하고 있었기에 모처럼 휴가를 내어 가족들과 강원도 쪽으로 놀러 간 상태였다.
재밌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메신저를 통해 연락이 왔다.
"환자가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뚝하는 소리와 함께 통증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여행지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우선 현재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환자의 손가락 사진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고, 사진을 받아보았다.
아뿔싸... 재파열로 수술했던 부위가 다시 끊어진 상태였다.
재파열 수술 이후에는 이번에는 빠른 재활보다는 조금 더 천천히, 그러나 신중하게 재활을 하자고 충분히 이야기 나누었고 환자도 이를 명확히 이해해 손가락을 고정한 채 별다른 움직임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뚝하는 소리와 함께 끊어졌다?
여러 가능성을 떠올리며 차를 돌려 곧장 병원으로 복귀하였다.
올라오는 길에 필요한 수술 재료와 기구들을 다시 확인하고, 부족한 것은 전화로 주문하며 여러 상황에 대비하였다.
도로 위에서 정말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수술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까.
왜 잘 풀리던 일이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수술한 의대생에게 이렇게 흘러가는 걸까.
정말 일이 잘 안 풀리려는 걸까.
혹시라도 심각한 장애가 남으면 어떡하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수술 결과가 두 번이나 생각한 대로 나오지 않아 나 역시 상심해 있었지만, 환자의 표정을 보니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굴 한쪽에 스치던 절망의 기색을 보며 현재 상태를 설명했고, 비정상적인 재파열의 원인으로 세균 감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였다.
그 표정은 지금도 선명하다. 담담하게 들으려 했지만 새어 나오는 불안은 숨길 수 없었다.
환자의 입장에서 나는 두 번이나 치료에 실패한 의사였다. 신뢰가 흔들렸다면 다른 곳에서 수술받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잠시, 그렇게 된다면 마음이 편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쳤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환자는 망설이지 않았다. 휴가 중임에도 바로 달려온 나에 대한 미안함인지, 아니면 함께해 온 시간에 대한 믿음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다시 수술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세 번째 응급수술이 시작되었다.
이전 절개 부위를 따라 절개한 뒤 내부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 든 첫 번째 생각은 하나였다.
큰일 났다. 힘줄은 녹아 있었고, 고름과 감염 조직이 보였다. 즉각적인 봉합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원칙대로라면 감염을 먼저 조절한 뒤 재수술을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손가락 기능을 완전히 되돌리지 못할 수도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섣부른 판단으로 이식을 진행했다가 감염이 악화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무서운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는 생각이 점점 분명해졌다.
이미 2주 이상 항생제를 사용했고 세척 후 조직 상태도 예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 환자의 손 기능을 최대한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지금 이 선택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중반의 젊은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완전한 기능 회복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회피할 것인가, 아니면 회복시킬 것인가.
평소라면 분명 위험성이 낮고 확실한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조금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잠시 수술실을 나와 환자 측에 상황을 설명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다시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도 분명히 전했다.
'결과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미 평범한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상태였다.
날 믿고 수술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생각하며, 우물쭈물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결과가 어떻든, 내가 끝까지 마주하고 책임지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결단이 서자 수술은 흔들림 없이 진행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섬세했고, 긴장되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수술 후 상황을 설명했다. 이미 두 번의 재파열을 겪은 환자에게 감염 소견은 두려운 일이었겠지만, 함께 이겨내 보자고 말했다.
첫 일주일은 조심스러웠다. 또다시 재파열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일주일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두 번째 주도 마찬가지였다.
이전 두 번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환자도 나도 계란 위를 걷는 심정으로 상처를 살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또 한 주가 지났다.
흉터는 커졌지만 이제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적극적으로 재활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었다.
환자도 불안을 애써 감추고 다시 예전의 화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재활에 임하기 시작했다
힘은 천천히 돌아왔다. 움직일 때 떨리는 증상도, 또 완전히 구부러지거나 펴지지 않는 증상도 여전하였지만 환자의 상태를 매일같이 확인하며 재활을 조율하였고, 손을 잊고 지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일상 얘기들을 하였다.
처음에는 올라가지 않던 손가락도 수개월간 재활을 쉬지 않고 하며 점점 기능을 회복하였다. 손가락을 큰 불편감 없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세 번이나 재수술을 한 환자의 치료는 이대로 쉽게 끝나지 않았다. 회복 과정에서 이식 부위와 피부 사이에 유착이 발생하여 손가락을 움직일 때 피부가 같이 움직이는 증상이 나타났다. 큰 불편감은 없었지만 엄지손가락 끝이 완전히 펴지지 않는 증상이 남아 있었기에 환자와 상의하며 날짜를 조율하였고, 유착된 부분을 박리하면서 엄지손가락 기능을 추가로 회복시킬 수 있는 수술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마찬가지로 수술은 교과서적인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하였다. 환자의 엄지손가락에 최소한의 손상을 주면서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 목표였기에 며칠간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아코디언 방법’이라는 나의 오리지널 방법을 활용하여 수술을 진행하였다.
손가락이 완전히 펴지지는 않지만 환자의 기능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손가락을 튕기거나 움직이는 데 큰 제한은 없었다. 장시간 사용하면 엄지손가락과 손목 주변이 뻐근하다고 했지만, 이 부분은 스트레칭으로 조절하며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피부 회복이 더뎌 수차례 소독을 하긴 했다. 하지만 이전의 과정들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였다. (물론... 당시에는 이 또한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세 번째 수술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평소라면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은 잘하지 않는데, 그때는 이상하게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고.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결과가 달랐다면 나도 편하지 않았을 거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환자는 열심히 회복해 문제없이 퇴원했고, 전역도 했다. 여러 차례 수술을 직접 겪어보니 정형외과에 관심이 생겼다며 본인도 앞으로 정형외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 때문은 아닐지 몰라도, 이렇게 웃으며 그런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 상황이 그저 감사하다.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중간에 내 마음이 편하자고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면 어땠을까.
물론 다른 선생님께서도 잘 치료해 주셨겠지만, 나는 오래도록 마음이 무거웠을 것 같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나도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한 환자의 치료가 이렇게까지 복잡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과정을 함께 건너오면서 나만의 방식도 생겼다. 재수술을 여러 번 겪은 손을 어떻게 재활시켜야 하는지, 이제는 책에서 배운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겪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수술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새로운 수술을 하는 일이 마냥 즐거웠고, 잘된 수술을 자랑하며 내가 이 정도나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알게 된 것은, 100명을 수술해 99명이 좋아져도 결국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은 기대와 다르게 문제가 생긴 환자를 마주할 때라는 사실이다.
모든 환자를 환자가 원하는 만큼 낫게 할 수는 없다. 예상치 못한 후유증이 생기는 환자도 있고, 위 환자처럼 반복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생겨 여러 차례 재수술을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무리 계획하고 빈틈없이 준비해도 사람의 몸은 자연과 같아서, 때로는 자연재해처럼 인간의 예상을 벗어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묻게 된다. 무엇이 중요할까. 어떻게 하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일일까. 내 생각과 다른 현실을 마주하더라도 환자가 낫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과정에 함께하고, 그 결과까지 같이 감당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내가 선택해야 할 태도일지도 모른다.
수술을 해도 낫지 않는 환자를 한 명씩 마주할 때마다 무게추가 더해지듯 어깨 위의 책임도 조금씩 무거워진다. 그러다 보니 쉽게 수술을 권하지 못하게 되고, 수술을 선택하기까지도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수술을 즐기는 마음은 필요하지만, 호기심이나 재미가 앞서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20대 때 느꼈던 것과 달리, 환자를 수술한다는 일은 생각보다 무섭고 때로는 두려운 일이다. 그 두려움을 잊지 않되, 두려움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겠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잡으며, 계속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