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치는 바다도 깊이 내려가면 고요하다.

by 김운

한동안 마음이라는 바다에 큰 파도가 쳤었다.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나의 모습을 외부의 것들과 끊임없이 비교했었다.

사람의 걱정은 본인이 갖지 못한 것을 탐하면서 생겨난다고 한 그 말이 적어도 나에게는 정확하게 느껴졌다.

무한의 세계를 가진 어린 시절에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나에게 초점을 맞추며 매일 맞이하는 가능성의 날들에 하루가 길다고 느꼈었다.

어른이 되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지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무엇이 되겠다는 막연한 청사진을 그리던 날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경계가 없을 것 같던 세상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오히려 유한한 경계가 생겼다.

꿈의 가능성은 직업 내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제한되었고, 내가 보기에 모두가 원하는 삶은 높은 평균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아는 것이 많다고 스스로 생각할수록 나의 세상은 좁아졌고 우주의 경계 너머를 바라보던 시야는 지상으로 내려와 내 주위를 보기 시작했다.

많은 연봉, 결혼, 아이,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삶.

타인에게 맞춰진 행복이라는 옷에 나를 맞추려니 다른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고 오직 배움이냐 돈이냐의 빈약한 이중 택일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그렇게 나의 세상은 나 하나만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도에 휩쓸려 바다 깊숙한 곳까지 끌려 들어간 적이 있었다.

절망의 끝일 것이라 상상했던 그곳은 묵직한 압력은 있었지만 오히려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고 놀랍도록 고요했다.

바닷속은 위험하다던, 그곳은 죽음이라던 사람들의 말과 달리 내가 경험한 바닷속은 따뜻했다.

죽음을 걱정하던 나는 어느새 고요한 바다 속에 몸을 맡긴 채 그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나의 걱정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상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때 알게 되었다.

바닷속을 경험하고 나서 느낀 것은 내가 아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새로운 차원에 대한 인식이었다.

모른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니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니 다시 나의 세상은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주변을 감싸고 있던 단단한 경계는 어느새 확장해 안과 밖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어져 있었다.

세상이 넓어지니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은 주변이 아닌 나와 세상으로 돌아왔다.

삶의 기준을 비교가 아닌 나로 잡으니 세상은 조금 더 밝고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 길을 걸어가는지 스스로에게 묻자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듯 보이지 않던 여러 길이 서서히 드러났고, 어느 길이 나에게 더 잘 맞을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삶이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아마도 특정한 시간선 위에서 삶을 평가하려 할 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한때 모든 사람의 시간이 동일하게 흐른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세계와 시간의 감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보는 지점이 5m 앞인지, 500m 앞인지, 아니면 5000km 앞인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시간의 속도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시공간은 어쩌면 많이 왜곡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관계가 느슨해지면서 서로 사이에 작용하던 중력은 약해진 듯하고, 그래서 나의 시간은 때때로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의 시간선 위에서 모두를 평가하려 한다면 많은 이들이 낙오자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자의 시간선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 모습은 또 다르게 보인다.

누군가가 정한 기준에 맞춰 바라볼 때는 뒤처진 듯 보일지라도, 각자의 속도 안에서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삶의 마지막에서 돌아본다면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왔음을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다른 사람의 삶을 굳이 평가하지 않아도, 또 다른 사람의 삶에 비추어 나를 평가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결말이 어떠하든 그 삶은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번 생에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시간선이 나보다 더 길거나 다른 방향일 뿐, 그 삶을 쉽게 실패라 말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차원의 완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에게 작용하는 중력을 바로잡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의 관계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느낀다.

갖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며 걱정하는 삶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복을 바라보는 삶.

무언가를 받을 때의 기쁨보다 무언가를 내어줄 때의 충만함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삶.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해 어떠한 되받음도 기대하지 않는 삶.

내가 가진 것을 이유로 타인을 쉽게 낮춰보지 않고, 나에게 없는 것을 탐하여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는 삶.

아직 배움이 부족하기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경계의 순간이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의도적으로 감사함을 떠올리면 어느새 얼굴에 작은 웃음이 번진다.

요즘에는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갔을 때처럼 표면 위에서도 문득 고요와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 나에게 찾아왔음을 알아차린 것에 감사한다.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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