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이유를 모르는 통증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원인 불명
원인을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이 통증이 나아질까 하는 막연한 공포감을 환자에게 심어준다.
병원에 오는 환자 10명 중 2~3명은 아마 이런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검사에서 이상 소견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대개 비슷하다.
“일단 쉬면서 지켜보시죠.”
그렇게 병원을 나서는 환자의 마음에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듯한 찜찜함과 불안감이 남는다. 혹시 이 병원이 진료를 잘 못 보는 곳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 다른 병원을 찾는 경우도 있다.
이 상황은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답답하다.
환자는 분명 불편감을 느끼기에 시간과 비용을 들여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과잉 진료 대신 경과를 보자는 판단을 내렸을 뿐인데 실력이 부족하다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둘 다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어느 쪽도 충분히 위로받지 못하는 역설적인 장면이다.
왜 몸에 이상이 없는데도 불편감을 느끼는 것일까.
환자들을 보며 내가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은 신체와 정신이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최근 심리와 감정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의료진 또한 장기간 낫지 않는 환자에게 상담을 권하며 다양한 방법을 모색한다. 그러나 신체와 정신을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신체와 정신이 마치 양자처럼, 구분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겹쳐 존재하는 하나의 체계라고 느낀다.
CRPS와 같이 극심한 통증과 기능 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들을 치료하며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중 하나는 환자의 정신적 이완이다.
물리치료, 운동치료, 약물치료가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마주할 수 있을 때 치료는 비로소 방향을 잡는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처음에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공포, 불안, 우울을 경험한다.
이때 의료진이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질환의 어려움만을 강조하는 순간, 환자의 마음은 쉽게 위축된다. 반대로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과 실제 회
복 사례를 먼저 설명하면, 그 과정이 쉽지 않더라도 걸어가 볼 수 있는 길로 받아들여진다.
치료의 시작점은 결국 마음의 방향에 있다.
희망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을 제시할 수는 있다.
환자가 나아질 수 있다는 그림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을 때 치료의 속도는 달라진다.
물론 한두 번의 설명으로 환자의 마음이 단번에 바뀌지는 않는다. 의사는 이미 많은 회복 사례를 보았지만, 환자에게는 처음 걷는 길이다.
믿음이 생겼다가도 걱정이 다시 고개를 들고, 그때마다 흔들린다.
그래서 때로는 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걱정은 신뢰하는 사람에게 충분히 이야기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누그러진다. 경험하기 전까지 말은 쉽게 흘러가지만, 경험을 통해 체득되면 그 말은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다.
CRPS 또한 이런 과정을 거친다.
단단한 마음을 바탕으로 재활을 이어가다 보면 분명히 변화는 생긴다. 회복은 직선이 아니지만, 방향은 유지된다.
원인을 찾지 못한 통증 역시 마찬가지다.
치료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과사용일 수도 있고, 작은 손상일 수도 있고, 아직 설명되지 않은 요인일 수도 있다. 의사가 신이 아니기에 모든 원인을 즉시 밝혀낼 수 없을 뿐이다.
원인을 알든 알지 못하든, 통증이 있다면 우선 쉬어야 한다.
통증은 몸이 보내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확한 이상이 보이지 않는 경우라면, 그 다음 단계는 마음의 긴장을 푸는 일이다.
원인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수록 통증은 더 선명해지기도 한다.
반대로 회복 이후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하면 몸의 반응은 조금씩 달라진다.
마음의 방향이 몸의 회복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장면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마음이 정리되지 않을 때는 오히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운동을 하고 나면 생각이 맑아지는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각일 것이다.
이처럼 신체와 정신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느 한쪽만을 강조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예전에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의사보다 실력이 뛰어난 의사가 더 낫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실력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네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의료 현장을 지켜보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낫지 않는 통증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에게는 때로 명확한 진단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다.
자신의 아픔이 인정받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다.
같은 치료를 하더라도, 환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함께 방향을 정하는 과정이 더해질 때 결과는 달라진다.
치료는 기술이지만, 회복은 관계 안에서 완성되는 경우가 많다.
수술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형외과 의사로 살아왔지만, 해가 갈수록 마음이 신체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 느끼고 있다.
신체와 정신은 결국 하나의 흐름 속에 있다.
그 흐름 안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