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야기
혼자 살고 1년쯤 후부터인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이 오면 나는 엄마가 우리 집에 두고 간 엄마의 옷들을 입고 다녔다. 올해도 그렇다. 지난주부터 옷장 깊숙이 든 엄마 옷을 굳이 굳이 꺼내서 출근할 때 입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랑 나는 체형이 완전 반대다. 엄마는 키도 크고 몸도 크고 손도 크고 발도 크고 눈도 크다. 난 정확히 그 반대다. 눈만 작지 않을 뿐ㅋ
그런 내가 엄마 옷을 입으면 어떨까? 아무리 오버핏이든 루즈핏이든 유행한대도 내가 엄마 옷을 입은 그 핏은 그냥 포대자루일 거다. 예전에 방문학습회사 다닐 때 팀장님이 "침낭...?"이라고 한마디 하신 적이 있다. 추워서 안에 껴 입으려고 큰 옷 겉에 입은 거라고 얼버무리긴 했지만 솔직히 왜 그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물론 엄마 바지는 못 입는다. 입어봐야 상의 정도. 셔츠 입으면 소매를 네다섯번은 접어야 하고 티셔츠는 손이 다 가려지고도 한참 길게 남아 길거리에 춤추는 풍선인형처럼 펄럭거린다. (가끔 그러고 휘두르고 다니다 이상한 사람 취급도 꽤 받았다ㅋ) 겨울에 속에 잔뜩 껴입고 겉에 엄마 셔츠로 마무리하면 근육모양 옷 입은 것처럼 된다.
내가 왜 그러는지 생각해 봤다. 내가 엄마를 닮고 싶어 하는 걸까? 물론 어릴 때는 엄마처럼 키 크고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딸들은 어릴 때 엄마처럼 되고 싶어 하는 시기가 있을 거다. 하지만 자라오면서 엄마랑 갈등이 생기거나 해서 엄마처럼은 안 살 거야라고 생각하는 때도 있을 거다. 나도 그랬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내 엄마니까 마냥 좋기도 하지만 엄마라도 도저히 안 맞는 부분도 있었다.
나랑 엄마의 관계는 썩 일반적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엄마가 나를 꽤 젊은 나이에 낳으셔서 어릴 때는 밖에 나가면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한 (여자 홍길동?) 시기가 있었고, 그래서 한동안 나의 엄마는 나에게 그냥 어른 여자, 아는 이모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다 나는 전교 꼴찌를 맡아놓은 느린 학습자였지만, 엄마는 학창 시절 늘 전교 1등, 전국에서도 상위 5% 안에 드는 수재 출신에 공부도 많이 한 사람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엄마는 내가 집중력이 약하고 끈기가 없고 게으르다고만 생각했고, 나는.. 나의 엄마는 나에 대해 관심도 없으면서 야단만 치는 사람으로 여겼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에 내가 사회에 나가 제대로 살 수 있게 도움을 준 건 엄마였다. 금전적으로 도와주시긴 했지만 최소한의 금액이었고, 대체로는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물론, 그 가르침이 너무 매서워서 눈물깨나 쏟은 적도 많고 그렇게 눈물 쏟으며 배운 걸 까먹어서 사고도 많이 치긴 했지만... 어쨌든 부족한 점 투성이인 내가 내 손으로 밥벌이할 수 있을 만큼씩이나 된 건 엄마덕이 크다.
떠올리면 무섭기도, 짜증 나기도, 또 늘 든든하기도 한 나의 엄마. 추워지면 엄마의 옷을 꺼내 입으며 나는 마음 한 구석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보고 싶으면 전화든 문자든 하면 되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외형, 체취, 음성을 직접 느끼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아마 그럴 때마다 내 무의식은 엄마의 옷을 꺼내 입게 만드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