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으로 세뇌하라 2
퇴근 후, 아이 픽업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앉을 틈도 없이 빨래하고, 청소하고, 저녁 준비하고, 설거지까지 했다.
그리고 겨우 소파에 기대앉았는데…
또 그 풍경.
아이는 아빠에게 오늘 게임에서 자기가 얼마나 잘했는지 자랑하고 있고,
남편은 핸드폰만 뚫어져라 보면서 입으로만 반응한다.
진짜 보기 싫은 장면이다.
매번 얘기해도 돌아오는 말은 똑같다.
“이 게임은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는 게임이야.”
“이미 내가 게임을 시작했을 때 당신하고 수호가 말을 건 거잖아.”
또… 본인은 잘못 없다는 말. 하아…
가끔은 모습이 참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영상으로 몰래 찍어서
제삼자의 눈으로 당신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문득…
회식 자리에서 들었던 세미 씨 말이 생각났다.
끓어오르는 화를 꾹 누르고,
이번엔 다르게 말해보기로 했다.
“여보… 부탁 하나 해도 될까?
정말 우리 여보가 열심히 일하고 와서
집에서 게임하는 게 유일한 휴식이고 낙인 거 아는데…
그 게임은 시작하면 중간에 끊기 힘들잖아.
그러니까… 수호 재우고 나서 게임하면 안 될까?
자기 전까진 수호랑 눈도 마주치고, 오늘 있던 얘기도 좀 나눠주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부탁할게~~~”
평소처럼 날카로운 말투가 아니라서였을까.
아니면 이해해 줬다고 느꼈을까.
남편은 조용히 “알겠어”라고 했다.
나는 바로 세미 씨가 말한 그 멘트를 써먹었다.
“진짜 집에 오자마자 쉬고 싶을 텐데,
그 마음 이겨내는 거 보면
여보는 가족과의 시간을 진짜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아.
너무 고마워. 여보 덕분에 나도 좀 쉬는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딱 봐도 입꼬리가 실룩이는 걸 애써 감추는 얼굴.
모르는 척, 못 본 척했지만
나는 표정을 단박에 읽었다.
그리고는 평소엔 하라고 졸라야 꺼내는
수호가 좋아하는 바둑판을 가져오더니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수호야~ 아빠랑 바둑 한 판 둘까?!”
.
.
.
.
며칠 뒤, 또 하나의 귀여운 에피소드.
내가 지나가는 말로 “빵 먹고 싶다…” 했던 걸
남편이 곧바로 받아치며
“요기요로 빵 시켜줄까?” 하며 눈을 반짝였다.
“어머, 나 생각해 줘서 그렇게 말한 거야? 너무 고마워. 근데 괜찮아~ 냉동실에 파니니 있어서 그거 구워 먹으려 뱉은 말이었어.”
오븐에 파니니를 노릇하게 구워서 맛있게 먹고 있는데 잠시 후, 띵동- 하고 진짜로 빵 배달이 온 거다.
정말 먹고 싶지도 않았고,
솔직히 ‘이거 시키지 말랬잖아… 돈 아깝게…’라는 말이 먼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이번에도 세미 씨 조언이
누름돌처럼 마음을 눌렀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빵 시켰어?
아까는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좀 아쉽긴 했거든~
어떻게 나를 이렇게 잘 알아?
진짜 맛있겠다! 내가 좋아하는 걸로만 시켰네~”
그러자 또 남편은
어깨를 으쓱하며 흐뭇하게 말한다.
“맛있게 먹어”
진짜…
이쯤 되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
너무 뻔한데 또 맞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미 씨의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말,
결국 사람 대 사람으로…
내가 들어도 기분 좋아지는 말을 건네라는 뜻이었구나.
어딘가 동료에게 진 느낌이 드는 저녁이지만,
그래도 오늘 또 하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