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족하지 않은 정도를 넘어 일반적인 수준도 못 되는 가난한 태생에서 시작했다면, 자기 앞가림 제대로 하는 것만 해도 괜찮은 성과이다. 그러나 30대 청년이 된 나는, 시나브로 깨우치게 되었다.
모든 소년들이 '괜찮은 성과'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점을.
나처럼 야망이 있는 소수의 소년들은 '괜찮은 성과' 정도로는 성에 차지 못할 것이다.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어 자신의 여자와 2세들을 풍요롭고 안전한 환경에서 지켜낼 수 있는 유능한 사냥꾼이 되어야만, 이렇다 할 기별이 있을 것이다.
이건 유려하고 감성적인 문장이 아니다. 내용 그대로, 물리적인 조건들의 명백한 실현이 있어야만 한다. 합리화나 공감이나 위로 같은 게 아닌 것이다. 그런 걸로는 처자식과 가족을 지킬 수 없다.
저 특정한 조건이 무슨 괄목할만한 성과까지 되는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서 저러한 태생적 배경을 가진 이가, 젊은 청년기 안에 가정을 꾸려서 처자식에게 풍요와 안전을 준다는 것은 비범한 일이다. 그만큼 지금 당장의 시대 상황이 녹록지 않다.
앞으로 더 심하게 녹록지 않게 될 것이다. 이건 예측이 아니라, 기정 사실이다.
서양의 한 격언이 있다.
In the end, the son suffers the sins of the father.
"결국에는, 아버지의 죄는 아들에게 이어진다."라는 문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의 죄'라는 것은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대부분 가난, 폭력, 무책임, 외로움에서 파생되는 죄들이다.
지금 시대 가난한 태생의 소년이, 젊은 청년기 안에 가정을 꾸려서 처자식에게 풍요와 안전을 준다는 것.
이는 제한 시간이 걸린 도전적인 과업이다. 가능할 확률보다는, 불가능할 확률이 아주 높은 게임이다. 자산 취득 부문에 있어 빈부격차는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졌으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소수 명맥의 상속은 이뤄질 것이다.
(한국의 경우, 고액 상속에 있어 국가가 세금으로 환수를 강력하게 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욕을 할 정도까지는 못된다고 생각한다. 뭐든 아는 게 없는 사람일수록, 극단적인 법이다.)
아들은 좋든 싫든, 자기 아버지의 죄를 자신의 대에서 소멸시켜야만 저 과업을 충실하게 달성할 수 있다.
나는 태생적으로 화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잘 제어하기 위해서 불교를 가까이해왔다.
불교에는 '천도재'라는 게 있다. 망자의 영혼을 위해 공양과 기도를 올리는 의식이다. 주로 생전에 악한 업을 많이 지었거나 억울하게 죽게 된 경우, 자손들이 천도재를 지내준다.
불교에서는 생전에 나쁜 업을 많이 행했다면, 죽은 뒤 그 업의 무게 때문에 하위 세계로 떨어지거나.
죽음과 다음 생 사이에서 계속 떠돌게 된다고 본다.
살아 있는 가족이 공덕을 쌓아 회향하면, 그 공덕이 업을 덮거나 씻어내는 힘이 된다고 믿는다.
아들이 아버지의 죄를 이어받았음에도, 그를 자신의 대에서 소멸시킨다는 것은 불교 천도재와 같은 원리를 가진다.
아버지의 죄에 대해 분노하거나 원망을 하는데에 자기 삶을 소모하지 않아야 한다. 그 죄를 이어받는 것은 내 의지와는 관련이 없이 자연스럽게 넘어오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별 수 없으니 담담하게 받아들인 뒤, 나름의 공덕을 쌓아가야 한다.
나름의 공덕이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의 덕업을 말한다. 지금의 속세는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 있다.
아버지의 죄는, 아들의 청춘 그리고 피와 땀으로 얼룩진 공덕을 통해서만 소멸될 수 있다.
나와 비슷한 폭력적인 유년기를 겪고 있는 소년들 중, 살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기특한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나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나는 브런치에서 무상으로 계속 글을 쓸 생각이다. 여러분들을 돕는 글을 쓰고 있다. 경제와 철학, 주식 투자를 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