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광이다. 자본주의의 민낯을 다루는 영화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에서 나온 대사가 있다. 나는 이것이 이 시대 속세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사업가는 도덕적인 동시에 비윤리적이고, 무교이면서도 신을 믿고,
교활하면서도 진실되어야 합니다.
현재 주어진 세상이 2030 세대 그리고 10대들에게 불합리하며 불평등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고 탓을 돌린다고 해서 상황이 변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보다시피 나는 옳고 그름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실용에 대해 생각하고, 효율에 대해 생각한다.
더불어, 모든 개개인은 자신을 경영하는 사업가이며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업가나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속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준법은 어떤 경우에서든지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한다.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법을 어기면 감옥에 가기 때문이다. 감옥에 가는 거면, 애당초 삶을 성실하게 살겠다는 동기가 무용지물이게 되기 때문이다. 무의미의 생리적 연명은, 멋진 죽음보다도 못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 없이 상식을 벗어난 정도의 불평등한 태생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었다면.
그럼에도 승리에 대한 열망과 야망이 수그러들지 않는 불꽃이 가슴속에 있다면.
준법을 한다는 한계에 거의 꽉 찬, 여유라고는 없는 전쟁을 해야만 한다. 그것은 삶이 끝나기 전에 끝날 수도 없다는 것임을, 나는 이제는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신분 상승이 불가능에 가까운 시대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가족과 사랑하는 이를 제대로 지켜낼 수 없게 된다는 시대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나는 그런 시대를 30대 초반의 나이로 직접 살아보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누군가는 신성한 지면에 "사업가는 도덕적인 동시에 비윤리적이고, 무교이면서도 신을 믿고, 교활하면서도 진실되어야 합니다."라는, 불경한 문장을 썼다며 힐난할 수 있겠지만.
내가 겪어본 바, 저런 식의 사람들은 나와 내 가족의 운명을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저 불경한 내용을 일부러 지면에 써서 보이는 것이다. 되려 그것이 선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소한 헛소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희망찬 헛소리'는 사람의 인생을 좀 먹는 편이다. 그것이 희망차다고 해서, 진실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기만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취향이 대중적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30년, 40년 후에야 직시할 수 있게 된다. 늙어버린 자기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게 되면서 말이다.
그때 가서는 정말로 되돌릴 길이 없는 것이다.
나는 타락한 루시퍼 같은 내용은 글에 쓰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루시퍼'는 성경에 나오는 '타락한 천사'로, 교만하여 인간을 타락시키는 존재로 인식된다.
실제로 결과가 나오게 만드는 철학을 가지자는 것이다.(보통 듣기에 기분이 좋은 철학은, 결과가 안나오는 편이다. 결과가 있어야 소용이 있는 법이다.)
나는 이런 철학을 '속세의 철학'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