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쯤 전세를 구해보았다. 혼자 살기 때문에 오피스텔이나 원룸 위주로 보았다. 보던 중 신축에 인테리어도 깔끔한 멋진 곳을 찾았고 집주인, 중개인과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공부와 대비를 마친 나는 계약서와 특약사항에 바짝 주의를 기울였다.
당시 계획 : 무조건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한다. 무조건! 안되면 안 한다.
공부를 해본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다. 무슨 일이 벌어져 건물이 경매로 날아갈 위기에 처하면 내 돈을 깔끔하게 전액 돌려받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전세보증보험밖에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처음에 공부상 내용을 훑어보니 당연히 시기 앞선 근저당이 들어있었다. 한국에 이상적인 깨끗한 건물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인생은 실전이다. 보증보험을 가입해야 했기 때문에 부채비율을 직접 계산했다.
이걸 자기 손으로 해봐야 하는 이유는 서울보증보험 및 LH 보증보험 모두 부채비율이 맘에 드는 선을 넘어서면 보험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 비율이 60 ~ 70% 정도를 넘어서면 보험 들어주기 꺼려 시 했다. 여러 전세매물을 보았더니 소름 돋게도 전부 저 정도로 약속이라도 한 듯 맞춰져 있었다. 내가 봤던 매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이야기했다. 근저당 비율로 인해 보증 보험 가입 가능 여부가 불투명하여 계약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니 집주인 왈 걱정이 된다면 전세권 설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했다. 옆에서 중개인도 집주인 분이 돈도 많고 사업도 하시고 나이스 한 분이시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거들었다. 이런 거에 넘어가려고 그렇게 공부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계약만 하면 집주인이고 중개인에게는 내 전세 문제가 "낫 마이 비즈니스"가 된다.
사실 이때부터 전세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싹 접었다. 만약 경매로 집이 날아간다고 할 때 또는 계약 만료 시점에 돈을 돌려받아야 할 때도 전세권이라는 것이 보증보험만큼 내 돈을 바로 받을 수 있는, 믿을 만한 것은 아니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나은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을 한번 떠보고 싶었다.
전세권 설정해주시면 계약금 넣겠다 말씀드렸다. 물론 애초에 넣을 생각 없었다. 핵심은 보증보험이 되냐 안되냐이다. 아니나 다를까 계약금 납부 며칠 전에 중개인으로부터 전세권 설정이 어렵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안 하겠다 했다.
2030 흙수저들은 이런 거 한번 발 잘못들이면 30년 퇴보이다. 직장에서 쌔빠지게 해봐야 집으로 한번 삐끗하면 나락이다. 피부에 와닿는 나의 경험을 기억하고 늘 이런 일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골로 가는 수가 있다.
이와 같은 부동산 계약 직접 경험들을 통해 깨우친 것이 있다.
'부동산처럼 사람이 끼는 거래는 리스크 통제가 어렵다.'
물론,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고 임장도 세심히 보며 체력 많이 쓰고 스트레스받아가며 꼼꼼하게 서류 내용도 살피고 주변 조언도 찾고 하는 사람들은 극복하는 케이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불가능'하다가 아닌 '어렵다'라고 한 것이다.
냉정하게 보자. 순수 진성 흙수저는 부동산 계약에 있어 많은 경험을 가진 부모가 없다. 이는 곧 뒤를 봐주는 능력 있는 어른이 없다는 의미다. 나의 경우는 아예 부모님이 참여를 안 했다. 그렇게 될 다른 흙수저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는 가게 또는 실거주 및 투자 목적 등으로 부동산을 매입할 때, 부모님이나 집안 어른이 같이 봐주며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극히 상식적이다. 더해, 부동산은 매입 매도가 쉽지 않다. 한번 들어갔다가 처분해서 소화시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사람 명 줄이는 일이다. 주식에 비해 부동산은 거래 시 붙는 세금 종류도 더 많고 매물과 그 동네 사정 또 정치권 돌아가는 상황에 촉을 바짝 세우고 있어야 한다.
행여나 중개인과 집주인이 작정하고 판을 맞춰 사기를 치고 있다면... 흙수저인 우리가 홀로 알아차리고 방어를 할 능력이 있을까? 얼마 전 뉴스에서 신축 오피스텔 건물 한 채가 통째로 경매로 날아가 95세대의 청년 가구, 신혼부부가구의 전세금이 홀라당 공중분해되었다고 했다. 전세가에 1억 4천 정도에 최우선 변제받더라도 얼추 1억은 날리는 거다. 계약서 몇 장으로 석시시대로 후퇴할 수 있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진짜 몇 달 전이다.
다른 이들은 차처 하자. 우리 흙수저들은 부동산보다는 주식이다. 부동산 투자가 나쁜 속성이라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투자 원리 자체는 훌륭하다. 또, 우리가 어딘가에서는 살아야 되니 필수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거처 마련을 위한 공부와 노력도 반드시 해야 한다. 기본적인 공부를 했기 때문에 나도 위험한 전세 계약을 내 힘으로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중간에 사람이 끼는 시스템이 흙수저 여건과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주식은 잘해도 내 탓 못해도 내 탓인 게임이니 최소한 억울할 일 없다.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 위험해질 일도 없다. 실수를 하더라도 발 들였다 빼기가 훨씬 간단하고 쉽다. 그래서 배움이 있고, 실력 향상이 가능하고, 추후 기회를 도모해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