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내면 일지

2022.11.07.

by 언더독

흙수저의 정의를 내려본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흙수저란 모든 짐 주머니를 스스로 지고 K2 서밋을 향해 올라가는 등반가와 같다. 셰르파 따윈 없다. 의식주의 모든 비용을 내 돈으로 쳐내면서 스스로의 하루하루를 수습해야 한다.


나는 유년기부터 서른을 바라보는 시점까지 흙수저였다. 나는 그런 흙수저 중에서도 성공을 향한 열망이 대단히 큰 사람이다. 대한민국 상위 1% 일 것이라 자부한다.


성공의 정의를 내려본다. 나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나의 사명은 대한민국 흙수저들의 금융지식수준을 '하' 단계에서 '중' 단계로 끌어올려 이 국가와 민족에 질기게 뿌리내린 가난을 뽑아 없애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너 혼자 성공해서 띵까거리기도 벅찰 건데 무슨 그런 큰 포부를 지녔냐고. 나의 내면 일지를 통해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알아보겠다.


솔직히 처음에는 나 살자고 성공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그럼에도 사명이 여기까지 미치게 된 것은 첫째로 독서를 통해, 둘째로 스스로에게 섬뜩한 두려움을 발견해서이다.


첫째 이유에 관하여.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강한 만큼 책을 달고 사는 편이다. 성공한 선구자들이 어떻게 하라고 알려준다. 배운 대로 하려고 노력하는 게 FM 아니겠는가. 그들이 말했다.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해결해주면 성공이 온다고.

뭐가 제일 필요로 할까 고민해보았다. 돈문제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솔직히 돈이 없는 게 제일 문제이지 않는가. 원래 그 방면으로 오롯이 내 인생 갱생을 위해 오랫동안 갈고닦아 왔으니 다른 분야에 비해 월등히 자신이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날 위한 이기적인 감정으로 무기를 갈고닦아왔으니 얼마나 날카롭겠는가. 그걸 다른 사람한테 주면 그 또한 잘 썰릴 것이다.


둘째 이유에 관하여.

이건 좀 다른 결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서 숨겨진 괴물을 발견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진정한 흙수저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이 진짜 흙수저라면 가슴속 분노 용광로가 하나씩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무에서 지금의 투자자금 규모까지 오기 위해 거쳐왔던 역사가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탓일까. 지난날의 몇 장면을 돌이켜본다.


나는 살면서 몇 번의 위기 중에 범죄자가 될 뻔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살인이나 살인미수, 특수절도 이런 쪽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상은 내 친아버지가 되기도, 돈 없고 볼 것 없다고 괄시했던 무례한 사람들이었기도 했다. 사람이 막다른 절벽 끝에 태어나서 조금이라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칠 때, 누가 날 벼랑 끝으로 장난 삼아 밀쳐대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 존재를 죽여야 내가 산다. 그럼에도 나는 브런치 작가로서 글을 쓰고, 누구보다 성실하고 치열히 그리고 착실하게 살며, 범죄자가 아니다. 이것에는 명확한 인자가 있었는데 하늘이 날 위해 보내준 극소수 귀인들의 공이라 해두겠다. 가난의 지평선을 넘나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은 이 내용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엔 이 우려가 내 친동생에게 까지 미치기 시작했다. 동생은 나랑 띠동갑이다. 거의 삼촌뻘이라 보면 된다. 이 아이를 그냥 뒀다간 내 꼴이 나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형 노릇을 해야만 했다. 내가 끊임없이 익혔던 돈 공부 소프트웨어를 체계적으로 지속적으로 복사해주었다. 동시에 집안 환경도 내 경제적 무력으로 뜯어고쳐놨다. 녀석은 이제 나보다는 훨씬 안정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는 물리적 여건이 되었다. 그리고 여느 흙수저 집안에서 절대 갖출 수 없는 개인 재무와 투자 소프트웨어가 탑재되어있다. 나는 내 동생이 범죄자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지금은 너무나 잘 커주고 있다.


굳이 나라 곳곳을 다녀보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안다. 장담컨데, 내 상황 또는 내 상황보다 더 처참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범죄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갑작스레 요즘 들어 나라에 마약이 자주 들어온다는 뉴스를 접하지 않는가. 나라 망조의 전조 증상 중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다.


나는 내가 이미 부자라 생각한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가는 이십 년 뒤에 내가 잘 살고 있어도 잘 사는 게 아니게 되겠구나라는 걸 육감적으로 느꼈다. 내 집은 베버리 힐스 같은데 집 앞 산책 나갔더니 홀로 코스트 같다면, 행복할까? 행복은 고사하고 신변의 위험을 늘 느끼며 살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이 왜 살인을 저지르고 마약을 취급하며 절도를 하는지 그 심리를 알고 있다. 내게는 하늘이 도와 귀인들이 곁에 있어서 망정이었지. 나도 운이 없었다면 악마의 형태를 뗘버린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사명을 확장해야 했다.


그래서 난 포기할 수 없으며 반드시 나의 사명을 완수할 것이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온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비트코인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