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에세이를 쓰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책이란 것도 제품이다. 시장에서 잘 팔릴 책을 만들어야 베스트셀러가 된다.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자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논리적이려면, 나는 내 주관을 무시하고 억지로 잘 팔릴 책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했어야만 했다.
잘 팔리는 책은 따뜻한 엄마의 품처럼 독자들을 위로해 주고 편들어주는 책이다. 한동안의 세태가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 힘들게 번 돈을 주고 사서 볼 독자들에게 스스로 효용 없다고 여기는 글을 제공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이 세상은 그런 말랑하고 포근한 말로 수습되는 세상이 아니었다.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본성 상, 고통이란 걸 직시하기 싫기 때문에 이런 글을 피하는 것일 테다.(개인적으로, 그런 이들을 멍청이 깽깽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 대부분 그런 사람들 또한 흔하디 흔한 인생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세계에 살고 있다. 차별성이 없으면 패배자가 된다.)
실용적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현실에서 물리적인 도움이 되어야만 하는 글이어야 했다. 그런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가 만족되지 않았다. 글을 쓰는 이 지면은 순수한 내 열정이 담기는 세상의 유일한 필드이다. 글을 쓰는 것에서 만큼은 돈이나 조직에게 굴복당하고 싶지 않았다. 주관을 가감 없이 펼치고 싶었다. 사람들이 하루빨리 본질을 깨달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실제 세상의 본질을 늦게 인정할수록, 이를 늦게 직시할수록, 이에 늦게 대처할수록 삶을 일으켜 세우기가 어려워진다. 도망치는 곳에 낙원은 없다.
삶을 성공으로 인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많은 자기 계발 '방법'들이 나오고 있다.
'어떤 일을 해 나가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취하는 수단이나 방식'
이게 '방법'의 사전적 정의이다. 훌륭한 전략은 있을지 몰라도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며 찾는 '방법'이라는 것들은 방법이 아니라 편법이다. 편법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다. 정직하고 꾸준한 노력, 고통과 고독을 끼고 사는 인고가 아니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현실에서 정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저항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전혀 공평하지 않다.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들 일어나는 기적 또한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삶이 주어졌고, 신이 그것을 거두어 가지 않는 이상 삶을 함부로 저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살아내어야 한다. 나 자신은 차처 하더라도, 적어도 부모형제 그리고 선조와 후손을 위해서 만큼은 말이다.(나의 선조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하기 위해 저 옛날 거란국의 침입에 맞서 굴복하지 않고 싸워냈으며, 조선시대에는 극심한 기근을 버텨냈다. 한국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히 몸부림쳤다. 당신의 선조라고 크게 다를까. 우리는 지금 경제대국 10위 권 안에 드는 대한민국에서 스마트폰으로 배민 시켜 먹고 후식으로 아메리카노 뽑아 먹으며 살고 있다. 정신 차려야 한다.)
이런 책을 쓴 만큼, 나는 앞으로도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몸이 부서져라 부딪힐 것이다. 나에게도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으며,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건 상관하지 않고 살게 되었다. 나에게도 보장된 것은 하나도 없으며, 이런 상황에서도 앞길만 보고 산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 이렇게 사는 게 아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것이다.
기분은 기분 타령하는 사람들에게 맡겨둬라. 그들에게는 가망이 없다. 진정 인생을 일으키고 싶다면, 성공하고 싶다면, 당신의 혈통에서 스스로에게 떳떳한 가문의 시조급 전사가 되고자 한다면, 기분을 무시하고 행동하라. 결실이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루하루를 행동 퍼포먼스로 압도시키는 삶을 산다면, 그런 당신에게는 희망이 있다.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