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9세 관점

행동 행동 행동

행동 행동 행동

by 언더독

챗GPT는 글을 쓴다. 잘 쓴다. 사람처럼 잘 쓴다. 그러나 글로 사람을 사람처럼 웃기지는 못한다. 얼마 전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글을 쓰겠다고 나선 내가, 챗GPT에게 참패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행동의 사나이다. 위로의 글 따윈 안 본다. 염려가 생기면 뚜껑 열어보고 손가락 찍어서 간부터 보는 게 내 습성이다. 챗GPT인지 PT체조인지 뉴스에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할 때 바로 접속해 보았다. 생각보다 유연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했다. 그게 다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필요하면 챗GPT로 소재만 뽑아 내가 맛있게 양념을 쳐서 버무리면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걱정은 사라졌다.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볼까. 아예 주인장 집에 찾아가 물어봤다. 너때문에 '작가는 이제 다 굶어 죽을까요?' 하고 말이다.

주인장 왈, 아니라고 한다. 자기는 효율적으로 정보를 추려서 텍스트를 만들 줄 아는 것이지 인간의 예술성, 감정, 관점, 독특한 문체 등은 구현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100% 복제하지 못하니 내가 굶어 죽지 않을 거라고 말해준다. 차가운 컴퓨터 녀석이 말은 참 따뜻하게 한다. 웬만한 사람보다 낫다.


신기술이 나오면 노상 사람들이 하는 걱정거리가 '이제 굶어 죽지 않겠냐'이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 대량생산을 일으키던 시기에 말 끌고 다니던 마차 기사들도 그랬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우주 진출 경쟁을 벌이던 시기에 계산을 기깔나게 해 버리는 IBM 컴퓨터가 나오며, NASA직원들도 그러했다. 예를 들자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굶어 죽었나? 나는 편의점 도시락 먹고도 잘 산다.


약한 생각은 행동 결핍을 불러오며, 행동 결핍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차곡차곡 쌓이는 현상을 만들어낸다. 차곡차곡 문제가 쌓이는 것은 인생 대차대조표에 부채비율이 쌓여가는 것과 같다. 당연히, 그런 시간이 지속되면 한 사람 인생도 정크등급으로 떨어진다. 이를 가장 부추기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마나한 위로해주는 물러터진 에세이다. '언젠가 너의 시대가 올 거다', '대기만성이다', '아파도 된다', '휴식이 필요하다', '방황해도 된다', '인생은 길다' 이런 소리 하는 사람 죄다 엉덩이를 한방 걷어 차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과 약도 가능하면 벗어나려 하는 게 좋다.(상태가 극단적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자기가 약해졌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걸 말한다. 에세이를 읽고, 정신과 약에 지나치게 의존하려고 하는 것은 그걸 인정해 버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선장은 당장 상황의 해결법을 모르더라도 선원들 앞에서 모른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지체없이 무언가를 하라고 명령해야 한다. 행동이 중요한 것이다.


사색하여 문제를 다각화해서 바라보는 것은 좋다. 명상을 하며 시야를 늘려보는 것도 좋다. 이런 활동들은 행동력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창의적인 길을 발견하여, 행동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준다. 그래서 나도 글 쓰다가 특이한 영화를 찾아볼 때가 있다. 혼자 허공을 주시할 때도 있다. 그런 행위들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기분 안 좋으면 쇠덩이를 들어라. 흙바닥을 뛰어라. 지미 헨드릭스의 'voodoo child'를 들어라. 복싱장에 가서 링에 오른 뒤 흠씬 두들겨 패고 먼지나게 두들겨 맞아라. 정 안되겠으면 담배 피워라.(우리가 영생을 살 줄 아나 본데, 어차피 1세기 이내에 다 죽는다.) 술은 마시지 마라. 인사불성이면 행동이 안된다. 숙취 오면 행동이 안된다. 헤롱데롱 거리고 있을 때, 나 같은 변태들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나면 감정상태가 어떻게 변화할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뭔가 할 일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상에서 사업을 가장 잘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인 '트럼프'도 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모멘텀'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목표를 두고 행동을 계속한다는 것은 굉장한 효능을 준다. 뭔가를 계속 하니 뭔가가 계속 생산되는 것은 당연이거니와, 정신적인 평화도 준다. 사람은 가만이 있으면서 건강하게 살 수 없는 존재다.


미국에는 'ADX 플로렌스' 교도소라는 곳이 있다. 원래 교도소라는 곳은 교정시설이라는 명목하에, 범죄자들을 재사회화하는 교육도 한다. 그러나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교도소로, 그런 재사회교육조차 소용이 없다고 판단되는, 죄질이 아주 나쁜 수감자들이 보내지는 곳이다. 그래서 콘크리트 방에 하루종일 혼자 가둬 둔다. 벽을 응시하는 것 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없게 만든다. 죽기 전까지 말이다. 강제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평생 박탈시키는 것이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악의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이다. 왜 이런 식으로 벌을 주는걸까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런 것을 보아도 인간이 행복한 인생을 건설하고 향유하는 것에 있어 '행동'이 핵심 개념인 것이다. 이런데도 계속 말랑 물렁 에세이 보고 이불속에 있을 건가. 행동하는데에 동기부여는 필요없다. 그냥 움직이는 것이다. 교도소 이야기를 보고도 행동하지 않을 건가. 스스로를 죄수 취급 하지 마라. 당신은 죄인이 아니다.


물수제비를 할 때, 돌맹이가 수면을 튀며 멀리 날아갈 수 있는 것은 돌맹이가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전이 끝나면 돌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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