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의 분석심리학.
분석심리학에서 제시하는 '그림자'라는 것은 악한 본성이기는 하지만, 이게 꼭 현실에서 부정적으로만 작용하진 않는다는 점을 언급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사회 속에서 타인의 존중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의 위험성을 넌지시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는데 이 또한 수긍이 된다.
지금 시대에 비춰보면 그 위험성이라는 것이 물리적인 운동능력 그리고 경제력의 정도를 기반으로 예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범죄와는 관련이 없는 상황에서만 이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이한 삶 속에서는 한 인간으로서 웰빙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신체능력과 경제력 개발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야 남들이 두려워할 줄 안다. 정상정인 인간들 범주에서는 그러하다.
이게 범죄적인 상황으로 가면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는 별 의미가 없어진다. 몸이 비쩍 발랐다고 범죄행각을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가진 것 한 푼 없다고 범죄행각을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공동체나 국가에서 법으로 범죄를 규정한 것에는, 악을 행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를 구성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이다. 이를 아는 것에서 대부분의 범죄가 예방된다.
만약, 개개인이 범죄의 대가에 대해 무지하다면 범죄는 꽤 많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니 치러야 할 대가를 안다는 것은 선을 추구하게 되는 근간이 된다. 이는 법과 범죄의 측면에서만 바라본 생각이다.
법적인 내용을 제외하고, 도덕적인 측면에서 이를 바라보면 어떨까.
도덕은 법처럼 명시가 되어 있지 않다. 선이 무엇이며 악은 무엇인지 개인이 정립해야 한다. 그래서 이는 개개인마다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심하다.
나는 사람들이 철학, 종교, 역사를 얼마나 접했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고 생각한다. 세 가지 분야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악을 행했을 때의 대가가 무엇이었는지 언급한다. 철학의 경우는 가장 고차원적인 이해도가 필요하며 종교는 그보다 덜한, 역사는 그보다도 덜한 이해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현실을 관찰해 보면, 지적인 탐구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동네는 '에덴동산'과도 같은 아우라가 있다. 시민의식이 높고 거리가 깨끗하며 치안이 좋다. 반면, 지적인 탐구심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동네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아우라가 있다. 시민의식 같은 고상한 것은 찾아볼 수 없으며 거리는 쓰레기와 담배꽁초로 더럽혀져 있으며 치안이 좋지 않다.
철학은 그렇게 현실과 동떨어져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