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동떨어져있지 않다.

'칼 융'의 분석심리학.

by 언더독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 스스로가 괴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유용하다. 깨달음의 첫 단계는 그림자와의 대면이다.


인류 역사의 모든 끔찍한 사건들은 모두 인간에 의해 발생했다. 그리고 당신도 그중 한 명이다.

(당신이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러한 사람이다.)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악이 있는지 알기 전까지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내게 악이 있어야 스스로가 위험한 존재인지를 남에게 보일 수 있고, 그것이 남이 나를 존중케 만든다.)


악의 능력을 깨닫는 것이 선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선을 행하지 않고 악을 행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를 모른다면, 최선을 다해 선을 추구할 수 없다.



'칼 융'은 아무리 겉보기에 착해 보이는 사람인들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 악랄한 본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인간이라면 말이다. 나는 이에 대해 수긍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인간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성선설과 성악설이 동시에 존재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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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인 독일의 나치들, 그중에서 유태인 학살 작전에 앞장섰던 친위대 장교들 중에는 자기 가정에 지극히 충실한 남편이자 아버지인 사람들이 있었다. 아내를 사랑했고 자식들을 챙겼으며 이웃에게 친절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처리하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했기에, 학살 자행에 최선을 다했기도 하고 말이다.


분석심리학에서 제시하는 '그림자'라는 것은 악한 본성이기는 하지만, 이게 꼭 현실에서 부정적으로만 작용하진 않는다는 점을 언급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사회 속에서 타인의 존중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의 위험성을 넌지시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는데 이 또한 수긍이 된다.


지금 시대에 비춰보면 그 위험성이라는 것이 물리적인 운동능력 그리고 경제력의 정도를 기반으로 예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범죄와는 관련이 없는 상황에서만 이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이한 삶 속에서는 한 인간으로서 웰빙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신체능력과 경제력 개발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야 남들이 두려워할 줄 안다. 정상정인 인간들 범주에서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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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범죄적인 상황으로 가면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는 별 의미가 없어진다. 몸이 비쩍 발랐다고 범죄행각을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가진 것 한 푼 없다고 범죄행각을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공동체나 국가에서 법으로 범죄를 규정한 것에는, 악을 행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를 구성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이다. 이를 아는 것에서 대부분의 범죄가 예방된다.


만약, 개개인이 범죄의 대가에 대해 무지하다면 범죄는 꽤 많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니 치러야 할 대가를 안다는 것은 선을 추구하게 되는 근간이 된다. 이는 법과 범죄의 측면에서만 바라본 생각이다.


법적인 내용을 제외하고, 도덕적인 측면에서 이를 바라보면 어떨까.


도덕은 법처럼 명시가 되어 있지 않다. 선이 무엇이며 악은 무엇인지 개인이 정립해야 한다. 그래서 이는 개개인마다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심하다.


나는 사람들이 철학, 종교, 역사를 얼마나 접했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고 생각한다. 세 가지 분야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악을 행했을 때의 대가가 무엇이었는지 언급한다. 철학의 경우는 가장 고차원적인 이해도가 필요하며 종교는 그보다 덜한, 역사는 그보다도 덜한 이해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현실을 관찰해 보면, 지적인 탐구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동네는 '에덴동산'과도 같은 아우라가 있다. 시민의식이 높고 거리가 깨끗하며 치안이 좋다. 반면, 지적인 탐구심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동네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아우라가 있다. 시민의식 같은 고상한 것은 찾아볼 수 없으며 거리는 쓰레기와 담배꽁초로 더럽혀져 있으며 치안이 좋지 않다.


DpDEPCC2GnH3-aaDGGgMJRMKykE.jpg 에덴동산


75afc3ca88be7d3a337e0f77ede4819e.png 소돔과 고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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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수준의 자각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나는 나나 잘 하자는 주의이다. 그게 나에게 이득이 되고 유리하기 때문이다.


철학은 그렇게 현실과 동떨어져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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