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인간.

by 언더독

나와 내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행동에 나서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 개념을 모른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알면서도 외면하여 안주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것은 사실이다. 그게 나쁜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쓸모가 없다. 개개인의 선택은 자유이고 그에 맞는 책임이 따를뿐이다.


군대개미라는 개미가 있다. 이들 집단을 관찰하면 기이한 현상을 볼 수 있다. 가끔 개미무리들이 이유없이 도넛모양으로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다가 지쳐서 모두 죽어버리는 현상이다.


군대개미는 시력이 없다. 그래서 선두그룹에서 뿌리고 가는 페로몬을 따라 무리가 이동하는데, 줄이 길어져 중간에 그 자취가 지워져 끊겨버리면 이 현상이 발생한다.


위험이 미연에 감지되지 않은, 맨 앞길을 달리며 주도적으로 페로몬을 뿌리는 선두그룹만 살아돌아가는 것이다.


자유를 목표에두고 행동을 하고있는 개체는 그 무리에서 소수인 것이 사실이다.


사육신은 주류가 아니었다. 한글 만들겠다고 한 세종대왕도 주류가 아니었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군도 주류가 아니었다. 다들 말리는 인천상륙작전으로 한국전쟁의 전세를 바꾼 맥아더 장군도 주류가 아니었다. 이병철, 정주영 등의 한국의 척추를 구성한 기업가들도 주류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도 마찬가지이다.


저들에 비하면 나는 보잘 것없는 존재이나, 어찌되었건 나도 자유를 목표에 두고 행동을 이어나간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가 된다는 것은 외로운 길을 걷는다는 뜻이다. 굳이 이러는 이유는 결핍의식과 정신개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싶다.


결핍의식이야 진부한 이야기이다. 정신개조라함은 빡세게 뭔갈 해보자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어떠한 사건이나 현상을 해석하는 뇌의 연산 구조가 바뀌어버렸다는 의미이다. 많은 활자를 읽으며 인간 세상에 대한 이해를 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논리적인 선택을 해나가려다보니 자연히 비주류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성공하여 sns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대부분 맞는 이야기를 하지만, 내 주관을 잃지 않고 따로 거르고 있는 부분은 있다.(독자분들도 이렇게 하길 바란다. 필요하다.)


어떤 듣기 좋은 말로 포장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모든 결과는 본질적으로 또 궁극적으로 강제적인 힘의 질서에 기인한다. 종류는 여럿일 수 있다. 권력이 될수도, 돈이 될수도, 밥줄이 될수도, 사회적 평판이 될수도, 목숨이 될 수도 또는 가족의 목숨이 불모에 잡힐 수도 있는 것이다.


강제적인 힘의 질서가 인간 세상의 근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인류의 초창기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속세 작동방식이다. 결국에 중요한 것들은 각자의 이기심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가치 판단 할 것이 아니다. 사실일 뿐이다.


나는 이것과 앞뒤가 맞도록 삶을 살며 선택을 이어가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논리적으로 살면, 비주류가 된다. 부자와 강자는 소수이다. 소수는 비주류다. 그게 그래서 그렇다. 앞뒤가 맞다.


비주류는 사실을 외면하거나 현실을 두고 도망치지 않는다. 그래봐야 만구 소용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렇다. 이게 무슨 동기부여나 고결함 같은게 아니라는 것이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에 그냥 슬리퍼 신고 밖에 나가 발 다 젖게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이래서 구독자 수가 적은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글을 그만 쓸 생각은 없어서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나는 글 쓰는 자체가 좋다. 척박한 하루하루 속에 진정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만큼 자유란 내게 큰 가치이다.


언젠가 나같은 비주류 사람도 격변하는 세상속에 쓸모가 드러나 수면위에 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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