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아이의 소란스러움을 '문제'가 아닌 '성장'으로 읽어내는 법
저는 10년 동안 타인의 지능을 측정하고 발달을 연구해 온 전문가입니다.
데이터는 정직해야 하며, 척도는 엄격해야 한다고 믿어왔지요.
그런 저에게 학교에서 보내온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는 일종의 숙제와 같았습니다.
문항 하나하나를 읽으며 저는 연구원 특유의 예리한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아이가 짜증을 내는가?"라는 문항에 '인간인데 짜증을 아예 안 낼 리 없지. 빈도가 있으니 2번(약간 그렇다)'이라고 체크했습니다.
"집중을 못 하는가?"라는 문항에도 영재원 수업에서 멍을 때린다는 피드백을 떠올리며 솔직하게 점수를 매겼습니다.
하지만 그 '고해상도'의 정직함은 시스템이라는 투박한 그릇을 만나자마자 '상담이 시급한 정서 위기 아동'이라는 경고등을 켜버렸습니다.
정교하게 측정하려던 제 노력이, 종이 위에서는 아이를 금방이라도 큰일이 날 것 같은 아이로 둔갑시킨 것이지요.
지난달 학교 선생님과의 상담 내용이 기억이 났습니다.
제가 작년 유치원에서의 피드백과 아이의 산만한 태도를 조심스레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다소 흥분 섞인 어조로 저를 깨워주셨습니다.
"어머니, 8살 애들은 원래 그래요. 여기 가만히 앉아있는 애들 없어요. 돌아다니는 애들도 있는걸요!"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나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영유'와 '영재원'이라는 상위 1%의 특수한 집단 속에 아이를 세워두고, 그곳의 가혹한 기준을 내 아이의 기본값으로 설정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100분 수업 중 60분을 버티고 울면서도 다시 자리에 앉는 아이를 '집중력 부족'으로 낙인찍은 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인 저의 '준거 집단 설정 오류'였습니다.
결국 학교 시스템은 저에게 '재검사'를 요구했습니다.
이번에 저는 연구원의 가운을 잠시 벗어두고, '8살의 규준'을 이해하는 엄마로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혹시 저와 같은 혼란을 겪고 계실 워킹맘들을 위해, 제가 이번에 배운 '검사지 응답의 기술'을 정리해 봅니다.
-'전혀 아니다(0점)'의 사회적 합의: 심리 검사에서 아니오의 0점은 완벽함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래 아이들이 하는 만큼의 보편적인 수준"이라는 뜻이지요. 아이가 가끔 투정을 부려도 학교생활이 즐겁다면 과감히 '0점'을 선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집중력이 약하다고 생각한다->또래에 비해 약하지 않으면 아니오에 체크
-'약간 그렇다(1점)'가 모이면 독이 됩니다: 모든 문항에 "조금은 그렇지"라며 1점씩을 주면, 시스템은 이를 '전방위적 정서 위기'로 인식합니다. 정말 치료가 필요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8살의 평범한 소란스러움은 점수에 포함하지 않는 것이 데이터 노이즈를 줄이는 길입니다.
-비교 집단을 '우리 반 교실'로 리셋하세요: 영재원 선생님의 날카로운 평가나 집에서 늘어진 모습은 잠시 잊으셔도 좋습니다. "지금 우리 반 교실에서 수업을 방해하지 않고 밝게 지내는가?" 이 질문에 선생님이 'Yes'라고 하셨다면, 그 아이는 이미 만점짜리 아이입니다.
처음에는 선생님께 잘 보여서 아이를 더 잘 봐달라는 마음에 저의 엄격한 기준을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미 아이를 있는 그대로, 아주 사랑스럽게 보고 계셨습니다.
제가 아이를 '문제적 데이터'로 몰아넣을 때, 선생님은 아이를 '생동감 넘치는 학생'으로 지켜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재검사지에 '우리 아이는 아주 보통의, 건강한 8살입니다'라는 확신을 담아 제출했습니다.
수치는 낮아졌지만, 아이를 향한 저의 믿음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졌습니다.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가두었던 미안함은, 이제 헐렁한 안경을 쓰고 아이의 성장을 느긋하게 지켜보는 여유로 대신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