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쁘앙이 뭐길래

뭐 하나 사려면 손이 덜덜 떨리는 둥이 육아

by 몰리


아기를 준비 무렵부터였다. 백화점에 가면 그전에는 그저 식당가 가기 전에 지나는 관문정도였던 아기층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앙증맞은 아가 양말을 괜히 들었다 놨다 해보기도 하고, 이름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봉쁘앙 매장에 들어가 귀여운 체리 마크를 괜히 쓰다듬어 보기도 한다. 매주는 아니었지만 일 년 가까이 일종의 리추얼이 되었다. 그렇게 물건을 선뜻 사지는 못해도 백화점에 들어서면 으레 아기층을 먼저 가곤 했다. 그 시간 동안만은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 차 시험관 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뒤로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신기한 건 아기 옷들은 다 너무 예쁜데 도대체 사이즈는 뭐고 어떤 게 필요한지 아무리 물어보고, 찾아봐도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물리는 법칙이 언어는 논리가 수학은 공식이라도 있지. 왜 옷에 적혀있는 월령과 사이즈는 브랜드마다 다른 것인지 모를 일이다. 어디는 6m, 12m, 24m 월령으로 되어있고, 어디는 60,70,80으로 체계도 제각각이다. 게다가 사계절인 우리나라는 여름생 겨울생에 따라 사야 하는 것이 다르단다. 그렇게 알아가다 보면, 오히려 살 수가 없다.



봉쁘앙. 그러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아기를 모르던 시절에도 알고 있던 브랜드 앞에 선다. 마치 대학은 서연고인 줄 알았던 작고 하찮은 인간이 고등학교에 올라가 본격적인 입시에 들어가서야 인서울에 얼마나 (좋고) 많은 대학이 있는지 알게 되는 것처럼. 봉쁘앙이라는 아기 브랜드가 나에게 그랬다. 매장 들어서면 바로 베이비라인이 보이는데, 순백에 곱게 자수가 놓여진 신생아용 양말 세트와 바디수트 세트가 놓여있었다. 뽀송한 아기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나에게 아기가 온다면 비록 10만 원이 훌쩍 넘지만 이거 하나쯤은 소중한 우리 아기에게(라고 쓰고 나에게라고 읽는다) 사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이러한 소비에 대한 여유로운 생각은, 둥이 소식과 함께 점점 빠르게 줄어들었다. 반가운 임신소식과 함께 확인하게 된 아기집 두 개.. 그렇다..! 내 자궁에 둥이가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직후부터 소비심리가 위축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병원에 들러 우렁찬 심장소리를 차례로 확인하고, 아가들 (즉 세포들)이 건강하게 커가는 것을 확인한다. 이제는 생물학적 노산에 쌍태아 콤보로 임신하자마자 고위험 산모 카테고리에 들어가게 된 나는 더욱이 조심스럽다. 게다가 한차례 아가를 보낸 적이 있기에 숙제검사를 맡는 것 같은 정기검진이 매주 기다리고 있다. 물론 너무도 기대되지만 가장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가들 건강하게 자라고 있네요.’ 소리와 함께 이번주도 통과다. 그렇게 안도감과 함께 양손에 초음파 사진을 들고 나오면 세상의 행복을 다 가진 기분으로 그때서야 허기가 진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습관처럼 밥이나 한 끼 하자를 핑계로 백화점 식당가로 간다. 아마도 겨울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아니다 봄이면 또 미세먼지와 황사를 핑계로, 여름이면 더위를 핑계로 그랬겠지. 어쨌든 우리는 매주 백화점을 바꿔가며 자연스럽게 아기층을 구경했다.



임신 초기 아기용품을 둘러보는 그날들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아기가 돌을 바라보는 지금도 여전히 그때의 설렘이 생생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몇 주를 눈으로만 보다가 안정기에 접어들어 가족에게 알린 12주 차에는 처음으로 턱받이 두 개를 사들고 나왔다. 코랄과 하늘색 바탕에 사슴이 그려진 것이었다. 둥이 태몽은 설산에서 만난 사슴 두 마리였다. 태몽 때문일까 성별을 알기 한참 전이었는데도 왜인지 나는 남매 둥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던, 그저 심장이 뛰고 있는 손가락 보다 작은 세포시절에는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설레었다. 크게 기뻐하지도 못하고 숨죽여 남편과 둘이서만 기쁨을 나누었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고요한 행복의 소곤거림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다. 돌이켜보면 아가 물건을 사는 것이라기보다 마치 우리가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같은 시간, 기념을 하는 행위였던 것 같다. 임신을 확인하게 되면, 그렇게 눈으로만 보던 예쁜 아가 옷을 당장 살 것만 같았는데, 본격적으로 진짜 사려고 매장에 들어가 물어보니 도리어 성별을 물어 온다. 결국 구매는 성별을 알게 되기까지 또다시 미뤘다. 별로 아쉽지 않다. 우리는 아들일까 딸일까? 아무래도 좋아하며 행복한 상상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소비를 유예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더 지연시켰던 것 같다. 한 달 뒤 성별을 알게 되기 직전 16주쯤에는 드디어(정말 필요 없는) 양말 두 켤레를 샀다.



그러다 이제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사야 하는 임신 후기가 되자 둥이라 두 배가 되어버린 소비가 갑자기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5만 원짜리 작고 사랑스러운 옷 한 벌은 10만 원이 되고, 10만 원짜리 오가닉 블랭킷은 20만 원이 되었다. 하나하나가 두 배가 되어 10가지가 되면 아주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옷이 문제가 아니었다. 옷은 유니클로에서 바디수트로 금방 해결이 되었고, 곧 나올 아가들의 수십 가지의 아기용품들을 사야 한다는 큰 과제를 직면한다. 바로 백만 원이 훌쩍 넘는 디럭스 아기 유아차를 보러 간 날이었다. 둥이이라서 300 가까이 되는 견적서를 받아 들고 나온 그날,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런 작은 것부터 부담이 시작되어 나중에 교육비로 커지기 시작하면 어마 어마 하겠구나까지 생각이 미쳤다. 우리는 결국 유아차를 매장에서 살 수 없었다. 그리고 당근에 하나 둘 키워드 알림을 하나 둘 올려두기 시작했다. 필요한 것들의 리스트가 추려지게 되자 아기들 옷 코너에서 내 만족일뿐인 ‘이거 하나쯤’하던 손 끝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름도 예쁜 봉쁘앙 매장에 앞에서 나는 아가 온자락을 만지작거리다 이제는 그만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며칠 뒤 당근 알람이 떴다. ‘미개봉 세제품 봉쁘앙 기저귀가방’ 가격도 1/3 가격! 딱히 필요도 없었지만 사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로망이었던 봉쁘앙 하나를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봉쁘앙 꼬까옷 맞춰 입히는 작지만 소박하지 않은 꿈은 내려놓는다. 그렇게 아가 몸과 마음 건강하게 키우는 게 우선인 엄마가 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