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촌놈 미국 첫 방문기 1

비자를 받아야 합니다

by 오줌보

나는 유튜브를 끼고 산다. 그래서 유튜브 알고리즘만 보면 내가 요즘 어디에 빠져있는지가 보인다. 내 알고리즘 상위는 영어, 반도체, 주식, 격투기 그리고 단연 최상단에는 '글로벌 공대인'과 ,'담낭이'라는 채널이다. 한국인 엔지니어로서 미국에 정착해 일하고 있는 분들이 미국 취업과 정착을 장려하고 도와주고 알려주는 컨텐츠들이다. 그 시작은 출장 경험과 이후 일련의 이벤트로 인해 텍사스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면서였다.


2024년 내가 하던 프로젝트가 드롭되면서 현재 프로젝트로 옮겨왔다. 한국에서 개발 후 미국에 있는 FAB으로 이관하여 생산을 진행 중이기에 팀원들이 순번을 짜서 10주씩 출장을 반복하는 곳이었다. 몇 번의 일정 변경이 있으면서 2025년에 드디어 내 순서가 왔다. 출장지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이었다. 기대가 컸다. 아니 신났다. 매우 매우.


한창 여행에 미쳐있던 시기가 있었다. 아시아를 벗어나는 일은 극히 드물었지만 그래도 야금야금 혼자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일본과 중국에서 시작해 몽골, 러시아를 거쳐 동남아 대부분을 혼자 다녔다. 대만,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스리랑카까지. 유럽이라고는 체코, 헝가리, 크로아티아 정도였다. 그런데 미국은 처음이었다. 아니, 스쿠버 다이빙 때문에 자주 갔던 사이판도 미국령이긴 하지만 본토는 처음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게 미국은 여행지보다는 이민이나 유학처럼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 삶의 터전을 바꾸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컸기에 흥미가 없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L1-B 비자를 위한 패티션이 미국 지사에서 배송되었다. 엄청나게 두꺼웠다. 변호사 수임료부터 해서 듣기로는 이 비자 취득에 돈이 꽤 비싸다고 했다. 회사입장에서는 돈 천만 원이 깨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당시 회사에서는 그냥 ESTA 비자를 받아서 가라는 지침이 있었다. 나는 여러 번 일정이 변경된 덕에 해당 지침이 내려오기 전에 이미 패티션을 신청한 상태였고, 이미 신청해서 패티션까지 준비되고 있는 거면 그냥 L1-B 비자를 취득하란다. (추후 이 차이가 내 출장 생활을 가르게 될 줄은 이때는 몰랐다.) 미국에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닥치니 모든 것이 설레었다. 아메리카 드림. 기회의 땅. 천조국. 마약. 총기. 텍사스. 카우보이. 말. 존 웨인. 미디어의 찌꺼기에서 본 수많은 이미지들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말 타고 출근하겠다는 헛소리도 해댔으니..


꼬불꼬불 대사관 입구까지 사람이 있고 오른쪽 끝에도 이만큼 더 기다리고 있었다. [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2025.5.23]

드디어 비자 인터뷰 당일이 되었다. 마침 비자 관련 이슈로 시끄러웠던 때라 문이 닫히기 전에 빨리 비자를 취득하겠다는 사람이 많아 예약도 힘들었고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는 내가 들은 것보다 훨씬 긴 줄이 아침 7시 반부터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Baby first라고 아이들과 같이 온 가족들은 좀 더 빨리 받아주는 배려가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튼 한여름 더위에 힘든 것도 있었지만 그 보다 짜증 나는 것은 어학원인지 유학원인지에서 나온 듯한 중개인 아줌마들이었다. 줄 중간에 서 있으면서 자기네 학생들이 오면 줄 가운데 새치기를 시켰다. 일행들이 있으니 마치 거기가 당연한 자리라는 듯. 아줌마, 이 뒤에 사람들 땀 흘려가며 기다리는 데 이건 아니잖아요. 참다 참다 그런 컷 인을 7명째 봤을 때 화가 나서 한마디 했다. "아줌마 여기 뒤에 다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입니까? 늦게 오신 분들 뒤로 가서 줄에서 기다리게 하세요". 응 그러거나 말거나 아줌마는 강하다 눈길 한번 안 주고 개무시다. 여기서 더 다퉈봤자 내가 얻을 게 없다. 더워 죽겠는데 1시간 여를 기다려 드디어 대사관 출입을 코앞에 두고 삐-담배와 라이터는 소지 불가능, 보관 불가능, 버리는 곳도 없다. 다른데 쓰레기통을 찾던지 지하철역 보관함에 맡겨두고 다시오란다. 와... 그렇게 다시 줄 끝으로 가면서 입장에만 2시간 넘게 소요되었다. 그리고 비자 접수비 500달러였나를 지불해야 하는데, 폰을 입구에 맡긴 채로 들어온 나는 삼성페이만 믿고 있다가 또다시 지갑을 가지러 나갔다 와야 했다. 휴.. 남들이 가장 걱정하는 비자 인터뷰보다 나에게는 비자 인터뷰를 하기 위한 직전 대기 단계가 가장 곤혹이었다.


인터뷰 라인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와있었다. 회사에서 출장을 가는 직장인 동료끼리 온 사람들, 아이까지 데리고 이민이나 주재원을 위해 온 가족들, 풍기는 분위기와 어투가 이미 미국인인 검은 머리 외국인 한국인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 어학원이 목적인 듯한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 군인들, Ph.D 준비하는 듯한 척박들, 백인도 있고 흑인도 있었다. 어라, 나는 왜 당연하게도 한국인들만 여기 대사관에 왔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무튼 모두 각자의 이유로 긴장된 얼굴로 줄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하는 사람들의 걱정과 지루함, 기대와 긴장이 공기 중에서 뒤섞이다 해무처럼 낮게 깔려 그 공간을 조용히 덮어 가고 있었다.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기다리는 동안 무사히 패스를 받는 사람이 20%도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어가 아예 안되어서 대사관 내의 한국 통역이 붙는 것도 허다하게 보았고,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를 구사해도 보류 판정이 수두룩했다. 기다리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인터뷰가 대충 들리는데 그게 또 재미있었다. 다양한 사유로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기실 한편에서 지켜보는 옛 시트콤 LA아리랑이었다. 보아하니 어떤 영사가 인터뷰하는지도 운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이미 지쳐서 영혼이 빠져있는 사람, 심드렁 한 사람, 어눌한 한국말로 질문하고 스물 토크로 분위기까지 풀어주는 사람, 범죄자 보듯이 정말 까다롭게 질문하는 사람 등 다양한 대사가 있었기 때문에 휘말리면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끝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특별히 긴장되는 부분은 없었지만 제발 저 사람이 내 인터뷰이는 아니길 바라는 대사가 있긴 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손짓했다.

"NEXT!"

아.. 그리고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질 않지. 브라운 컬리헤어의 시니컬한 그녀는 무미건조한 어투로 질문들을 쏟아 냈다. 내 연봉도 물어보더라. 근데 내 연봉이 달러로 얼마인지 환산해 본 적이 없어서 어버버 하고 있으니까 한심한 표정으로 됐단다. 그럼 왜 물어봤는데? 내가 왜 가야 하는지 무슨 스페셜티를 가지고 가는지부터 가타부타 대화를 하다 보니 분위기가 풀려갔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냐고 물어보니 오늘이 특이한 날이란다. 자기도 아직 점심 전인데 이미 지쳤단다. 저 얼굴 회사에서 많이 봤는데. 그래 대사님도 직장인이지. 힘내자. 그리고 심사 결과는 다행히도 패스였다.


약 일주일 후 마포에 있는 일양택배로 여권을 찾으러 갔다. 하. 미국 비자 스티커가 붙어있다. 어리숙한 범죄자 머그샷 같은 얼굴의 부산 촌놈이 태평양 한번 건너보겠네. 이제 진짜 가는구나.


돌이켜보면, 비자 인터뷰보다 더 미국 같았던 것은 대사관 앞에 길게 늘어진 그 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