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6
언제나 처음은 어렵다. 막연히 어렵기만 하던 처음은 나이를 먹을수록 이전보다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고, 때문에 무겁기까지 한다.
지금도 그렇다. 제목 하나, 고작 <처음>이라는 한 단어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글의 첫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얼마나 많이 망설였던가. 막상 하고 나면 이 처럼 별 것 아닌 것을.
새로운 처음과 마주하니 숱하게 겪었던 내 인생의 <처음>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 친구랑 단 둘이 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로 놀러 나가던 날, 처음 졸업하던 날, 처음 오디션을 본 날, 처음 축제 무대에 올라섰던 날, 처음 붓을 잡은 날, 성인이 되고 처음 맞은 새해 등등. 그 숱하게 겪어온 나의 <처음>은 대부분이 설렘이 가득한 순간들이었다. 아마 누구나 그랬으리라.
그중 가장 설레었던 나의 처음은 두 아이들을 만났던 날이었다. 나의 첫 아이인 하늘이를 처음 만났던 그날, 갓 태어난 신생아를 처음 봤던 우리 부부는 설레기도 했고, 고깔 머리 형태를 한 아이를 보고 놀라기도 했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말랑한 머리로 좁은 산도를 지나치기 때문에 갓 태어났을 때에는 고깔 형태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간호사의 설명을 듣고서야 조금 놀랐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늘이를 만나기 몇 시간 전에는 어떠했나.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남편 붙잡고 “흥부 미친놈. 지가 낳는 거 아니라고..” 라며 다자녀를 거느린 흥부 욕하기 바빴고, 옆에서 남편은 내 손 꼭 잡으며 맞장구 쳐주기 바빴다.
4년 후, 둘째 달이를 처음 만난 날은 또 어땠던가. 마찬가지로 좁은 산도를 지나쳐 나온 아이지만, 한 번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하늘이랑 똑같다!” 라며 남편과 깔깔거리기 바빴다. 이번엔 담당의도 호탕하게 웃으시며 고생했다고 악수를 건네셨다.
마냥 감격스럽고 아름답기만 했던 첫 만남 들은 아니었지만 아이와 함께 할, 앞으로의 모습을 그리며 가졌던 설렘은 14년에도, 18년에도 변함없었다.
이제는 까마득하게 잊은 나의 처음의 순간들은, 자라나는 나의 두 아이들을 통해 ‘나도 저랬겠지.’라며 상상하곤 한다. 또 <처음>과 부딪히며 넘어지고, 또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래. 다시 해보면 되는 거야.’하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조금 거창한 표현이지만 삶은 언제나 처음의 연속이다. 언제나 있을 오늘은, 언제나 처음인 날이기 때문에. 무겁게만 느껴졌던 <처음>도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편하게 다가온다. 무거울 필요는 없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매 순간 처음을 겪을 것이고, 주변 곳곳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으며, 막상 하고 나면 이 처럼 별 것 아니기에. 지금 이 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