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의 교우관계
올해 입학 한 우리 첫째, 하늘이의 학기 초에 있었던 일이다.
워낙 이쁘고 화려한 걸 좋아하는 하늘이는 입학 전 날, 미용실에서 새 빨간색으로 시크릿 투톤 염색을 했다.(태연 머리를 보고 100%로 본인 자의로 이루어진 탈염색이다.)
초1 교실에 염색을 한 애가 있으면 뭐 얼마나 있겠는가. 하늘이 반도 별 다를 것 없었다. 우리 하늘이와 같은 반 여자 친구 A. 단 둘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하늘이는 탈색을 거치고 한 염색이라 색이 쨍했고, A는 탈색 없이 한 염색이라 어두웠던 것.
A는 그게 참으로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입학식 한 날 A는 하늘이에게 “너 왜 염색했어?”라는 말을 시작으로 사사건건 조금씩 아이를 건들기 시작했다. 하루는 하늘이의 지우개로, 또 하루는 하늘이 가방으로, 그다음 날에는 하늘이의 필통으로.
매일같이 잔잔한 에피소드는 있었지만, 내가 바로 확인하고 제지할 수도 없고, 하교 후 아이 통해 전해 듣는 것이 전부인지라, 또 아이가 울거나 등교 거부하는 등 격하게 반응 보였던 것은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는 잘 지내는지라. 이런저런 이유로 그냥 아이를 달래며 넘겼었다.
그러다 3월 17일. 일이 터졌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A가 새치기를 했고, 새치기를 당한 하늘이는 A에게 지적했으며, 그로 기분 상한 A는 하늘이를 때렸다고.
울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기분 나빴다고 얘기하면서도 굉장히 뿌듯한 표정으로 “엄마! 그래도 안 때렸어! 때리는 건 정말 나쁜 거야!”라고, 하늘이는 그렇게 말을 했다.
동시에 어린 시절 내 부친의 가르침이 스쳐갔다. 나의 부친은 “네가 먼저 때리는 건 안되지만, 누가 너를 한 대 때리면 최소한 똑같이 한 대는 때려라. 네가 맞은 것보다 한 대 더 때리는 것 까지도 괜찮다. 책임은 아빠가 진다.”라고 늘 말씀하셨다. 폭력은 안되지만 그렇다고 네가 당했을 때 마냥 당하고만 오지 말고 대차게 반격은 하는, 그래서 네가 절대 쉽게 건들 수 없는, 만만한 아이가 아니란 것을 보이고 오라는 내 부친의 뜻이었겠지. 부친의 말씀에 나의 모친도 별 다른 말은 없으셨던 걸로 보아 나의 부모님 두 분 모두 같은 뜻이었을 거다.
나는 그러한 내 아버지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내가 같이 때리는 것보다 그 아이 집으로 가서 그 아이의 부모님에게 직접 고자질하는 것으로 행동했다. 고자질 후 뿌듯하게 집으로 돌아오면, 그 아이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가 통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다음 날에는 나를 때렸던 그 아이가 연고와 간식을 나에게 건네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걸로 일단락되었다.
폭력은 분명 나쁜 행동이다. 그건 하늘이의 말이 맞다. 때리는 건 나쁜 행동이고 절대적으로 정당화가 될 수는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고, 부모가 된 후 내 교육방침도 그러했다. 나는 체벌도 폭력이라 생각했고, 그 문제로 첫째인 하늘이를 뱃속에 품었을 때부터 남편과 숱하게 언쟁하며 살아왔으니 말 다했지.(남편은 어느 정도 체벌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며, 남편의 그런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수년이 지났지만 좁혀지지 않는다. 아직 두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한 적은 없다.)
하지만 막상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맞고 왔다고 하니, 내 부친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비로소 내 부모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해맑게 웃으며 때리는 건 정말 나쁜 거라 나는 때리지 않았다고, 엄마 필터링을 거쳐 요약하면 그냥 맞기만 하고 왔다는 아이의 말에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속으로 눈물 삼키며 아이에게 잘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내 부친의 가르침을 내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줘야 할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무서울 정도로 내 가치관과 내 마음이 혼란 속에 섞여 회오리를 쳤다.
결국 내가 뱉은 말은 “그랬어? 우리 하늘이가 많이 속상했겠다.” 고작 이것뿐이었다.
그러자 하늘이는 웃으며 이렇게 말을 했다. “그때는 속상했는데 지금은 괜찮아! A는 내 친구 아니니까 속상할 일 없어. 만약 내 친구가 그랬으면 지금도 속상했을 거야. 근데 나는 A랑은 친구 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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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당시 나는 내 친구가 클래스메이트와 친구를 구분 짓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 친구가 정해둔 <친구>라는 라인 안에 내가 들었음에 안도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굉장히 놀라웠고, 동시에 뜻 모를 상처도 받았던 것 같다.
그동안 나는 같은 반이면 친하든 안 친하든 그냥 모두가 <같은 반 친구>라고만 생각 해왔기 때문에. 내 가치관이 충돌한 두 번째 순간이었다. 내 가치관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던 첫 순간이기도 했다.
몇 달 전, 우리의 육아 천재 만재 선생님, 오은영 선생님께서 클래스메이트와 친구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신 걸 보게 되었다. 이미 학창 시절 친구를 통해 두 그룹으로 구분을 지음으로써 마음 편했던 나였던지라 필요성은 느꼈지만, 왜 구분이 필요한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는데 그 부분을 우리의 육아 천재 만재 선생님께서는 말끔히 해소시켜주셨다. 보면서 “잘 보았다가 하늘이와 달이가 교우관계로 고민하면 말해줘야지!” 하고 열심히 메모도 했더란다.
3월 17일. 그날을 돌이켜보면 전혀 필요 없는 것이었다. 멍청하게도 나는 기껏 공부하고 준비한 말을 뒤로하고는 아이를 공감해주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으며, 기특하게도 8세 하늘이는 내가 17세는 되고서야 깨달은 것을 스스로 터득하고, 스스로에게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후에 내가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아이에게 다시 말해주었다.)
아이가 맞고 왔다는 사실에 놀라고, 때리는 것은 정말 나쁜 거라 같이 때리지는 않았다고 뿌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아이에게 또 놀라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교우관계에 대한 가치관과 그러한 상황을 분명히 전달하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던 그런 날이었다.